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 패전한 프랑스가 '승전국'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은 저항군을 이끈 드골의 리더십 아래 하나의 정치세력을 형성했기 때문이며 우리나라가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고도 전후 '패전국'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은 여러 정치세력으로 분열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노무현 정부시절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는 6월 27일 사단법인 샌드연구소 주최 한반도 정세분석세미나에서 이 같이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외교적 시각에서 본 한반도 문제’ 및 ’6월 한반도 정세분석’을 주제로 발제 및 토론이 진행됐다. 라 교수는 1부 세미나 ’외교적 시각에서 본 한반도 문제’에서 프랑스와 한반도의 상황을 비교했다.
라 교수는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는 승전국으로 남았다고 했다. 그는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전쟁이 끝났을 때 누가 승전국이고 누가 패전국이냐에 따라 엄청나게 지위가 달라진다고 했다. 프랑스의 경우 비쉬 정권이 독일군을 도와 유대인을 박해하고 독일의 전쟁 능력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또 독일이 러시아 침공 때 프랑스 사단이 참여하는 등 전범국 독일과 함께 패전국의 지위를 가지는게 맞지만 결국 승전국의 지위를 얻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연합국에서 프랑스를 필요로 했기 때문인데, 2차 대전 이후에 서방진영의 약해진 세력을 맞추기 위한 외교적인 필요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프랑스는 내부적으로 좌우 이념이 나뉘지 않았으며, 샤를 드골(1890~1970)의 지휘 아래에서 하나로 싸웠다는 점이다. 즉, 연합국이 인정해 줄 주체가 뚜렷하고 강했다. 이런 점은 한국과 프랑스가 대비되는 부분이라고 했다.
라 교수는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는 전부 합쳐서 25만 정도가 참여했지만 실제 큰 성과를 내지 못했으나 신화를 만들어낼 정도로 과장 많이 됐다고 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유명 인물인 앙드레 말로의 일화는 나중에 거짓말로 드러났다며 연합국에 1주일 정도 레지스탕스로 가담한 경력밖에 없다고 했다. 그가 위험할 땐 독일에 협력하다 전세가 기울면서 기회주의적으로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라 교수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역할은 우리 독립운동에 비하면 미미하다고 했다. 라 교수는 한국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보다 더욱 격렬하고 자발적으로 항일운동을 진행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항일운동을 열심히 했지만 너무 제각기 싸웠다고 했다. 미주 지역에 이승만파와 그 반대파 등 2개의 조직, 소련지역에 하나의 조직, 중국에 2개의 조직을 포함해 모두 5개의 조직이 있었는데 전부 세력이 미약했다고 했다. 만주에서 싸우던 김일성은 1930년대 말 소련으로 들어가고 그것도 중국공산당 산하 항일연군의 일부로 활동했지 한국군으로 활동한 건 아니라고 했다. 라 교수는 1941년 이승만이 기다리던 엄청난 찬스가 왔는데 바로 태평양전쟁 발발이라며 일본과 미국이 전쟁을 하면 일본은 끝나게 되는데 우리가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우리 항일운동세력이 정치적으로 힘을 모았다면 명목상으로라도 참전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항일운동의 화력을 하나의 정체(政體) 설립으로는 전환하지 못했으며, 이는 독립운동의 실패, 한반도의 분단 그리고 현 시점까지 통일을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2차 대전 후 전범국으로 분할 점령 통치를 받던 오스트리아의 통일 사례도 들었다, 오스트리아는 2차 대전 이후 4개국의 분할 점령을 받았지만 10년 만에 극복하고 통일을 이뤘는데 그 비결은 초대 대통령 피글이 자신이 속한 국민당이 선거에서 압승을 했지만 단독 내각을 구성하지 않고, 모든 당파를 참여시켜 국민적 통합을 이뤄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점령국들이 10년 만인 1955년 오스트리아 영토에서 물러났다며 ‘최선의 외교정책은 국민적 합의’라는 피글의 말을 인용했다.
그러나 라 교수는 모든 사회의 갈등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구성원들이 그것을 적절하게 관리 및 통제할 수 있다면 갈등은 좋은 기회로 작용되기도 한다고 했다. 현재 남북관계처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갈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며, 시도해야 할 때라고 했다. 또한 통일이 추구하는 이념은 단순히 우리 민족끼리 갈라진 땅 덩어리를 하나로 붙이는 지리적 관점이 아닌, 인류가 함께 공유하는 가치의 실현과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2부 세미나 ‘6월 한반도 정세분석’에서 이승현 샌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는 과정은 대외 협상력 강화를 위한 역할분담과 북미협상을 위한 상황조성 차원에서 국제적인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공개 활동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회의(6.7)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예비회의(6.24)등 총 2회로 나타났다. 김정은 위원장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6.04 – 김여정 담화
6.05 – 장금철 담화
6.07 – 김여정 <대남사업→대적사업 전환 지시>
6.12 – 장금철 담화
6.13 – 김여정 담화 / 외무성북미국장 담화
6.16 –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 총참모부 공개보도
6.17 – 김여정 담화 / 장금철 담화 / 총참모부대변인 담화
6.23 – 김정은 <군사행동계획 보류 지시>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의 두 차례 담화(4일, 13일) 후, 16일에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으며 북한 총참모부에서는 이를 공개 보도했다. 김여정 부부장과 장금철 통일전선부장의 주도로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빌미로 한 군사적인 대적행동 등 대남 강경태세로 전환하였으며, 김정은 위원장의 비준 하에 김정은-김여정-장금철-군부 간 철저한 역할분담이 시행되었고, 이는 대외 협상력 강화 등을 목적으로 대남압박, 한반도 긴장조성을 하려는 의도로 분석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걸출한 영동자를 모신 조선의 미래는 휘황찬란하다(6.2/노동신문) ▲최고 존엄은 우리의 제일 생명(6.22/우리민족끼리) ▲국가 방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시어(6.2/통일신보) ▲우리 식은 주체식이다(6.5/노동신문) 등 김정은과 김부자의 우상화 및 체재선전이 강화됐다.
권정근 외무성 북미국장은 북미 직접 협상을 요구했으며, 비핵화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북한 매체들은 미 전역에서 진행 중인 ‘흑인 사망 항의시위’를 6월 한 달 동안 78건 보도하면서 미국에 대한 비난이 증가했다. 이에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견제를 실시하는 동시에 북한의 한반도 긴장조성에 대한 군사적 조치로 항공모함 2척 7함대를 구역 배치했으며, 정찰 자산 운용을 증가시켰다. 북한의 이와 같은 한반도 및 동북아 긴장감 조성은 대미 협상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으로 분석되며, 트럼프의 정치적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