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시대 경제시스템의 핵심은 사회주의 개념과 시장경제 요소인 책임경영 개념이 융합된 ‘사회주의기업책임경영제’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한기범 전 국정원 1차장은 11월 30일 서울 종로구 샌드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린 ‘11월 SAND한반도 정세 분석 세미나’에서 이 같이 밝혔다. 현재 북한연구소 석좌연구으로 있는 한 전 차장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집권한 김정은은 경제개혁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며 “경제문제를 해결해 인민들이 노동당 만세를 부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김정은은 경제개혁 시도를 자본주의 도입으로 보는 시선 때문에 경제개혁에 소극적인 경제관료와 학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고 한다. 집권 초기 김정은의 적극적인 경제개혁 의지와 관련 지도자로서 민생향상에 대한 책임감, 2009년 11월 화폐개혁 폐해의 교훈 등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최초의 공식 경제개혁인 2002년 김정일의 ‘7·1경제관리 개선조치’를 계기로 가족영농제와 기업의 자율경영이 확대됐다. 그러나 내각 주도의 경제개혁의 성과가 확대되면서 체제위협을 느낀 당이 2005년부터 간섭하면서 개혁조치는 후퇴하게 된다.
개혁초기 내각의 손을 들어 줬던 김정일은 당이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에 나서자 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김정일은 시장경제를 도입하라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를 활용하라고 했을 뿐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경제개혁의 사령탑을 맡았던 박봉주 내각총리는 2007년 실각한다. 한 전 차장은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시대를 거치며 모두 5번의 경제개혁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1960년 ~ 70년대 갑산파가 경제개혁을 시작했고, 1980년대 김정일에 의해 합영법을 도입했다. 1990년 엄청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나선 개발 등 작은 개방조치를 취했다.
2000년대 7.1경제관리조치와 2012년 김정은의 기업개혁 조치가 나왔다. 그는 북한에서 경제개혁 조치가 번번히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치적 반대행위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김일성은 “경제종파가 정치종파가 된다”라고 말하며 경제개혁 주장을 꺼내는 사람들을 제거한바 있다. 김정은은 경제개혁 초기 기업개혁과 소득분배권 확대와 함께 이발소와 목욕탕 요금 인상 등 편의봉사 부문으로 개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이밖에도 포전담당제와 현물분배 방식을 도입 등 농업분야 개혁도 진행했다.
이렇게 집권초기 경제개혁에 적극적이던 김정은은 2012년 9월 ‘중국식 개혁 운운하지 말라’며 반개혁 정책으로 유턴했다. 배경에 대해 다양한 개혁주장이 제기되고 기관마다 이권 다툼이 발생하자 문제점을 파악하고 변덕을 부린 것이다. 그해 11월에는 경제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고 2013년 핵·경제병진 노선 제시 등 개혁이 크게 위축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 전 차장은 2018년 4월 노동당 중앙위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의 승리를 선언하고 ‘새로운 경제전략총노선’을 제시했지만 대북제재로 경제난이 가중되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 경제개혁의 한계에 대해 정치논리와 경제논리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승현 샌드연구소 연구원은 11월 정세분석 발표에서 북한이 대북재제 장기화에 대비하는 한편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와 충성심을 강요하는 양상이 크다고 했다. 또 남방한계선 인근에서 포사격을 하는 등 9.19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남한을 지렛대로 사용해오다가 미국과의 협상이 교착국면에 빠지면서 남한에 대한 압박을 통해 미국을 간접적으로 압박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올 연말까지 북미회담이 열리지 않으면 대화국면이 종료되고 북한이 대미압박에 나설 가능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