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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국제범죄의 온상, 북한 해외주재관

◇들어가며◇

지난 2월 13일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46) 암살사건에는 북한 공작기관은 물론 해외주재관들도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외교관 특권을 이용한 불법 행위로 주목 받아온 북한 해외주재관들이 테러범죄까지 관여하면서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은(2014년 기준) 전세계 160개국과 수교를 맺고 있으며, 47개의 상주대사관과 3개의 총영사관, 4개의 대표부를 갖고 있다. 북한 노동당·군부·내각에 소속된 무역기관들에서 파견한 해외주재관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공안기관인 국가보위성·인민보안성과 정찰총국·문화교류국 등 공작부서에서 파견된 요원들도 해외주재관의 신분으로 체류하고 있다. 북한 외교여권과 공무여권을 소지한 이들은 합법적인 신분을 이용해 해외에서 각종 테러와 불법행위에 가담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당국에 따르면 김정남 암살범인 인도네시아 여성 아이샤를 포섭한 오종길(55)은 인도네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했고, 베트남 국적 암살범 흐엉을 포섭한 리지현(33)은 전 주베트남 북한대사의 아들로 북한대사관 근무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 암살 사건의 중요 용의자로 지목된 리재남(57)은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군 소속 강성무역회사 지사장을 지낸 인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관 보위성 주재관인 현광성도 이번 암살 사건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 위원회 패널 보고서는 “북한의 외교관들, 외교 지부들, 무역 대표들은 체계적으로 불법 거래, 불법 무역, 불법 경제, 불법 물류의 중요한 역할들을 한다”고 밝혔다. 북한 해외주재관 출신의 고위급 탈북민 A씨는 “북한 해외주재관들이 합법적인 신분을 이용해 테러·밀수 등 각종 불법행위에 가담하고 있다”며 “국제범죄의 온상인 이들만 잘 감시해도 북한의 불법행위를 차단할 수 있다”고 했다.

◇금·마약·위조지폐 밀매에 대량살상무기 관련 거래 등 불법 행위 저질러◇

“북한 해외주재관들은 자의반 타의반 마약·금괴·위조지폐·술·담배·상아 밀매는 물론 대량살상무기(WMD) 거래 등 불법행위에 가담하게 됩니다” 전직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민 서준영(가명)씨는 “범죄인줄 알면서도 해야 하는 것이 해외파견 주재관의 숙명”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렇게 북한 해외주재관들이 외교관 특권을 악용해 불법 행위를 하는 현상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쿠바산(産) 시가를 브라질로 밀반입 하거나 모잠비크에서 수시로 코뿔소 뿔 밀매에 나서는 등 러시아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북한 해외주재관들의 불법 행위가 만연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무역 대표부 주재관으로 근무했던 김민철(가명)씨는 “북한-러시아를 오가며 국제우편물을 취급하는 국가보위성 요원은 외교행낭을 이용해 반입한 마약과 금괴를 팔다 걸렸다”며 “비밀을 지키려 감옥에서 매트리스를 찢어 목을 맨 사건도 있다”고 했다.

북한 해외주재관들은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노예 계약을 방조하고, 해외 탈북자들을 협박하기도 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북한군 8총국 소속으로 말레이시아에 파견돼 근무했던 이철훈(가명)씨는 “북한인 한훈일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MKP 그룹'의 최고경영자(CEO)로 30년 넘게 현지에 체류하면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물론 아프리카 지역에 북한 노동자들을 파견하는 노예계약 체결을 담당해왔다”고 전했다. 또 무슬림 국가로 술 판매가 금지된 파키스탄에서 북한 외교관 부부가 길거리에서 술을 팔다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 발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북한의 불법 행위에는 외교관이나 재외 공관이 연루된 특징이 있다”며 “북한의 외교관들, 외교 지부들, 무역 대표들은 체계적으로 불법 거래, 불법 무역, 불법 경제, 불법 물류의 중요한 역할들을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제재 대상인 ‘조선금산무역회사’는 북한 원자력총국으로의 현금 유입 및 핵 기술과 관련한 데이터 수집 등을 담당하는 해외 사무소 역할을 해왔다. 금산무역회사는 인터넷 광고 등을 통해 러시아 모스크바와 중국 단둥에서 유엔이 금지품목으로 정한 바나듐광 등을 거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산무역회사가 기재해 놓은 판매자 주소는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 주소와 똑같았다고 한다. 북한의 불법 무기 거래를 전담, 안보리의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KOMID)’와 ‘조선흥진무역회사’는 기관의 이름을 바꿔 무기 거래 등을 이어갔고, 이 과정에도 외교관이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군 소속으로 베이징에서 주재관으로 근무했던 탈북민 B씨는 “중국과 해외에서 컴퓨터를 대량 구입해 북한에 보냈는데 교육용이 아니라 대량살상무기 제작에 필요한 부품을 얻기 위한 용도라는 얘길 들었다”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무기제작에 필요한 부품 구입이 어렵게 되면서 컴퓨터를 구입해 그 가운데서 필요한 부품을 뜯어 쓴다”고 했다.

북한 방위산업체인 군수공업부 사정에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북한 노동당 군수공업부가 2014년 핵(核)잠수함 제작에 필요한 ‘HY150’ 특수강판을 구입해 보내라는 지시를 모든 해외주재관들에게 내렸다”며 “러시아제·일본제·독일제를 우선으로 구입하되, 구입이 어려울 경우 중국제라도 수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해외서 테러·암살공작에 동원되는 북한 해외주재관들◇

현직 안보부서 관계자는 “이번 김정남 암살에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물론 말레이시아 현지 주재관과 전문가들이 동원됐다”며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 준비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김정남 암살 용의자로 지목한 리지현은 베트남을 방문해 현지 여성을 포섭하는 일을 맡았다.

리지현은 리홍 전 주(駐)베트남 북한 대사의 아들로 10년 가량 베트남에 거주했다. 그는 2009년 11월부터 1년 3개월 간 베트남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했고, 베트남 외교아카데미에서 6개월 간 석사과정을 밟은 현지전문가다. 또 다른 김정남 살해 용의자인 북한 보위성 소속 리재남(57)은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북한군 소속 강성무역회사 지사장을 맡았던 인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 동반 입국, 연예인 지망생으로 알려진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29)을 포섭해 김정남 암살을 사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종길은 2015년까지 주인도네시아 북한대사관에서 2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다 작년에 주캄보디아 대사관으로 자리를 옮긴 외교관 출신이다. 북한 보위성 소속인 현광성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관 2등서기관은 암살범들을 실어나르고 티켓팅을 하는 등 암살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은 김정남 암살 사건의 용의자 8명 가운데 4명이 국가보위성 출신이고, 실제 행동으로 옮긴 두 사람은 외무성 소속이라며 “보위성과 외무성이 직접 주도한 테러사건”이라고 밝혔다.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위성 '해외반탐처(反探處)'는 해외 주재관들을 통해 반북(反北)인사와 탈북민을 찾아내 제거하거나 납치 공작을 한다. 보위성 소속 해외주재관이 2004년 미얀마에서 미국인 대학생 데이비드 스네던을 납치, 북한으로 데려갔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가운데 과거에도 북한 해외주재관들이 우리 정부 요인 암살작전에 투입된 적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외교관 출신 탈북민인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1982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순방했는데 그때 나도 암살 작전에 투입됐던 적이 있다”며 “현지 언어와 지리를 잘 아는 현지 주재관들이 공작작전에 투입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전직 대남공작기관 출신의 탈북민 C씨는 “지난 1983년 버마(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과 수행원들을 겨냥한 ‘아웅산 테러’ 사건때 김정일의 지령을 받은 북한 정찰국 특공대원들이 당시 버마 주재 북한대사의 집에 은신해 있었다”며 “북한 해외주재관들은 국가의 지시를 받아 테러·암살 공작에 동원된다”고 했다.

◇달러 상납강요에 범죄의 길을 걷던 북한 해외주재관들 망명으로 저항◇

북한 해외주재관들이 범죄의 길에 빠져드는 이유는 강력한 통제력에 의한 충성강요와 동조과잉 때문이다. 북한 해외주재관들에게 충성자금 상납은 김정은과 노동당에 대한 개별적 충성심을 평가받는 기준이 된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연간 1만 ~ 1만 5000달러의 충성자금을 상납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해외 주재관들에 대한 외화 상납 독촉이 심해진 것도 이들을 범죄로 내몰고 있다. 여명거리를 비롯한 대형건설 프로젝트나 지난해 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행사 등 체제과시용 사업이 줄을 이으면서, 해외주재관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금을 모아 송금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대북소식통은 “올해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05주년에 맞춰 완공된 ‘여명거리’ 건설공사 때 평소에 비해 3배나 많아진 외화상납을 강요해 북한 해외 주재관들의 불만이 터졌다”고 전했다.

이미 소속기관으로부터 ‘지원금’상납을 독촉 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사관이 별도로 상납지시를 내리자 북한 해외주재관들은 “외무성에 바치고, 소속기관에 바치고 어디서 그 많은 돈이 나오나?”며 일제히 반발했다는 것이다. 북한 해외주재관들은 국내와 달리 각 단위별로 행정적 지도와 지시는 자기의 소속기관으로 부터 받지만 ‘당 조직 생활 지도’는 대사관을 통해 받기 때문에 소속기관과 외무성의 눈치를 본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김일성-김정일 기금위원회’ 등 앵벌이 기관들까지 상납금을 요구하면서 북한 해외주재관들은 ‘삼중고’를 겪는다고 한다. 거듭되는 충성자금 상납 요구와 공포정치에 환멸을 느낀 일부 북한 해외주재관들은 망명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해 한국에 입국한 북한 해외주재관이 2013년 8명, 2014년 18명에 이어 2015년에는 20명에 달한다고 했다.

지난해 7월 가족과 함께 망명한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 고위 탈북자 중 저 말고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한 외교관들은 (동료들의 탈북을) 다 안다. 소문이 다 난다”며 “제가 있던 유럽에서도 저뿐이 아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한국행을 기다리는 (해외주재관들) 사람도 많다”고 했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실제 태 전 공사의 망명(작년 7월)을 전후해 북한 해외주재관들의 망명이 현저하게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소식통은 “한국행을 택한 북한 해외주재관이 작년 한 해에만 두 자릿수”라며 “해외에서 외교관 신분으로 활동하던 노동당 39호실과 무역성 간부, 군부 인사 등을 모두 포함한 수치”라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해외주재관들의 탈북이 급증한 가장 큰 이유는 해외 공관에 가해진 극심한 충성 자금 상납 압박”이라며 “달러를 못 벌면 처벌이 두려워 도망치고, 달러를 벌어도 '북한엔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탈출한다”고 했다.

귀순한 주재관 중에는 수백만 달러의 북한 통치 자금을 챙겨 나와 김정은 정권에 금전적 타격을 입힌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아프리카에서 주재관으로 근무하다 망명한 D씨는 노동당 39호실 소속으로, 북한이 아프리카에 동상을 세워주고 받은 대금 중 일부를 들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화권에 있던 노동당 39호실 간부는 2014년 평양에서 공부하던 자녀가 잠시 유학 나온 틈을 타 수백만 달러의 북한 자금을 빼내 자녀와 함께 귀순했다. 해외주재관으로 파견돼 간첩 파견 등 대남공작을 지휘했던 북한 정찰총국 대좌 출신의 인물도 2014년 말 한국에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유엔의 대북제재로 외화벌이가 어려워지면서 북한 해외주재관들의 불법행위는 더욱 진화·모험화 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전 세계가 북한을 비난하기 때문에 이들도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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