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훈 아주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통일연구소 소장. 세계학연구소 중앙아시아 센터장] ‘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은 직역하면 ‘한국 건너뛰기’라는 뜻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서 한국을 소외시킨 채 논의를 진행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 1998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건너뛰고 곧장 중국만 방문하고 돌아간 상황을 ‘재팬 패스하기(Japan Passing)’ 라고 부른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코리아 패스하기는 이보다 훨씬 역사가 길다. 7년간 임진왜란을 끝내는 중국과 일본의 강화교섭 과정에서 조선은 철저히 배제됐다.
강화를 반대하고 일본 공격을 주장한 선조는 중국 협상 책임자인 송응창에게 조선군대를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훈계를 듣는다. 그후 450여년 뒤 한국전쟁에서 한국은 유엔사령관을 겸임한 미국과 중국,북한이 벌이는 휴전협정에서 또다시 빠졌다. 코리아 패싱 클래식이다. 도대체 코리아 패싱이라는 이 치욕적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당연히 명분과 실력의 부재이다.
우선 명분을 보자. 만약 트럼프와 시진핑이 우리 대통령에게 ‘솔직히 말해 한반도가 왜 통일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한다면 어떨까? 남과 북은 오래전부터 같은 민족이고 같은 핏줄이니 당연히 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네들의 속마음은 어떨까? 국익을, 아니 국익만을 생각하는 주변국들에게 이런 주장이 과연 통할까? 그들 스스로 통일을 원할 이유가 없다면 ‘한반도 현상유지’가 가장 최선의 전략이고 코리아 패싱은 당연한 결과이다. 실력을 보자.
2016년 기준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12위이고 GDP 기준 경제력은 세계 11위이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실력은 상대적이라는데 있다. 마치 팔레스타인인들이 다른 중동지역인들 보다 열심히 일하고 명석하지만 이스라엘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것과 유사한 형국이다. 게다가 북핵위기를 넘어 평화와 통일을 이룰 장기적 전략 부재도 심각하다. 주변국들이 ‘너희들은 어떻게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이룰 것인가?’라고 물어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원론 수준 답변과 ‘그래서 당신네들이 도와줘야 한다’라는 부탁뿐이다.
코리아 패싱은 당연한 결과다. 이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코리아 패싱이란 부끄러운 표현을 사용하는 지도자들과 언론들의 태도이다. 지도자로서 이런 자기비하적인 표현을 공개석상에서 서슴없이 사용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또 한미동맹을 유일무이한 대응전략으로 제시하는 이들을 보면서 조선시대와 구한말 사대주의자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코리아 패싱은 빨간 경고등이다. 해방이후 기적 같은 경제성장과 국력증대를 이루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증거다.
이제 먹고 살 걱정 없고 미국이 혈맹으로 지켜주고 있으니 ‘지금 이대로가 좋사옵나이다’ 라고 할 처지가 아니다. 국제사회는 자신을 스스로 돌볼 능력이 없는 자에게 무한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민족국가의 주권이 국제사회에서 보장되었다지만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합병에서 보듯이 국제사회 힘의 균형은 언제든지 바뀌고 결국 명분과 힘을 가진 세력의 의지가 새로운 국제사회의 질서가 된다. 국제사회에 당당히 제시할 명분과 이를 스스로 이룰 힘을 길러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통해 2차 세계대전의 인류 마지막 숙제를 풀고 통일 한반도를 새롭게 디자인해서 동아시아와 세계가 겪고 있는 시대적 아픔을 풀어내는 새로운 세상의 청사진을 제시할 때 통일은 국제사회에서 명분을 갖게 된다.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복수의 시나리오로 설정해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전략과 전술을 세워야 한다.
요즘은 그렇지 않길 바라지만 필자의 중고교 시절은 학교에 주먹을 꽤 쓰는 형들이 있었다.그런 형들이 지배하는 살벌한 사회에서 덩치 작은 학생이 살아남는 방법은 공부 밖에 없었다. 죽어라 공부해서 똘똘하다고 인정받으면 형들도 건들지 않았다. 코리아 패싱을 코리아 리딩으로 바꾸기 위해 와신상담하는 이 땅의 지도자들을 보고 싶다. (2017년 5월 29일 이데일리에 게재한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