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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지난 8월 25-26일에 캐나다 벤쿠버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 (UBC)에서 개최된 제10차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에 다녀왔다. 국제고려학회와 UBC가 공동 주최한 이번 학술회의는 한국, 북한, 중국, 일본, 캐나다, 미국, 러시아,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이탈리아, 인도 등 13개국 120여명의 학자가 참석하여 8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대규모 학술토론회였다. 북한에서도 조선사회과학원 학자 9명이 참가하여 남북 학자들 간에 활발한 대화와 토론을 주고 받았다.

북한은 2005년 심양대회에 33명의 학자를 보낸데 이어, 2007년 영국대회에 10여명, 2009년 상해대회에 20여명을 보냈고, 이번 벤쿠버 대회에 9명의 학자들을 참석시켰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매우 경색된 상황 속에서 진행된 남북학자들의 만남인지라 반가움이 더하였고 이번 기회를 어떻게든 대화의 마당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다.

역사, 언어, 문학, 사회/교육, 경제, 정치/사회, 예술/민속, 철학/종교 등 8개 분과로 나누어 진행된 회의는 각 분과별로 적게는 5편, 많게는 20편 정도의 논문을 발표하고 참가자 전원이 질의응답에 참여하는 자유롭고 격의 없는 토론회로 진행되었다. 이번 대회에는 북한에서 많은 학자들이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군정치와 주체사상, 라선경제무역지대 등 몇 개의 주제에 국한되었으나, 비교적 격의 없는 토론이 이어진 유익한 회의였다. 한국 측에서는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회원 약 20여 명이 참석하였다.

북한학자들은 평양에서 북경까지 기차로 이동하여 하루밤을 묵은 뒤 홍콩을 경유하여 캐나다로 왔다고 하며, 평양을 떠나 캐나다에 도착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하였다. 먼 길을 오느라 한 사람은 배탈이 나서 결국 논문발표도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북한의 조선사회과학원은 총 10개 연구실에 1,200명의 학자가 근무하고 있다고 하며, 김정영 부원장, 리기성 경제연구실 교수, 고정웅 과학지도국 국장, 강세권 박사 등은 이전 대회에서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에 새로 만난 심승건 과학지도국 부국장과 전인철, 김철, 박영호, 안명국 박사 등은 모두 소장파 학자들이었다.

 2012년 강성대국 실현의 두 가지 전망적 근거

이번에 북한학자들을 만나면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은 북한의 경제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2012년에 달성하겠다고 호언장담한 강성대국의 목표 실현을 위해 내부적으로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2009년까지만 해도 북한은 2012년까지 북한경제가 최고조에 달했던 1986~87년 수준, 1인당 국민소득으로 하면 2천 700달러 수준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2012년까지 몇 달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이러한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텐데, 북한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매우 궁금하였다.

북한학자는 이 난제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당초에 세웠던 강성대국의 목표를 2012년까지 완성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전망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고 수준을 낮추어 설명했다. 즉 실제로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기보다는 강성대국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과 기반을 갖추는 것이 2012년의 목표라는 것이다. “우리가 2012년에 강성대국의 ‘문을 연다’고 했지, 언제 강성대국을 완성한다고 했느냐”라는 논리를 깔고 있는 듯했다.

2년 전의 설명으로부터 한발 물러선 매우 궁색한 변명처럼 들렸으나, 나름대로 강성대국의 문을 열 수 있다는 데 대해 기대감과 비전을 강조하는 대목은 흥미로웠다. 그들이 제시한 기대와 전망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내생산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북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던 에너지와 식량문제를 CNC 기술로 상당부분 해소했다는 주장이다. 과학적 설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으나, 주민 선전용으로만 생각되었던 CNC 기술에 대해 높은 기대감을 갖고 있음은 분명했다. CNC 기술로 석탄가스화에 성공하여 에너지 문제를 해결했고, CNC 기술로 질소비료를 생산하여 작년에 20만톤의 비료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기염을 토했다. 금년 여름에 홍수피해만 없었더라면 본 떼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데 대해 많은 아쉬움을 표시했다.

 
다른 하나는 외부지원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었다. 최근 북·중간의 경제협력이 진행되고 있고 북·러간에도 경제협력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 그러한 확신의 배경이었다. 이들은 이러한 전망이 과거와는 달리 양국간의 협력에 의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확실하다고 믿고 있었다. 지난 6월에 착공식을 가진 황금평·위화도 개발은 2010년 11월 19일 체결된 북중간 협정에 근거한 사업이라는 사실을 사례로 언급하며 나진선봉 개발도 양국간 협정에 근거하여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전망 근거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근래에 중국을 3번이나 왕래하고 지난 8월 말 러시아를 방문한 것도 2012년 이전에 강성대국의 문을 열 수 있는 전망 근거를 갖추기 위한 필사의 행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달라지는 설득의 논리

북한학자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반주민은 차치하고 지금 이처럼 확신에 차 설명하고 있는 학자들과 가까이에 있는 간부·엘리트층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체제유지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길게 보면 북한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주어야 하겠지만, 당장에 간부와 지식인, 엘리트층이 그러한 전망을 갖지 못한다면 체제유지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몇 년간 북한 지도부는 김정은 후계라는 새로운 지도체제를 앞세워 과학기술과 대외 경제협력을 화두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과학기술과 대외 경제협력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는 모르나, 2012년을 몇 달 앞둔 현 시점에서 북한주민들과 간부들이 북한의 미래를 완전히 포기하는 상황은 아니겠구나 하는 판단이 들었다. 비록 3~4년 후에 또 다시 실망할지라도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CNC라는 것과 중국·러시아로부터의 경제지원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더욱이 선전선동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거대담론을 장악하며 상황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정당화와 설득의 논리를 펴온 북한이 이번에도 설득의 기술을 발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산주의 목표 삭제, 선군정치의 뿌리에 대한 설명

북한학자들과 대화의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을 하나 던졌다. 2009년 헌법과 2010년 당규약에서 북한의 국가목표로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삭제한 데 대해 북한 내부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설명을 부탁했다. 내부에서 어떤 논리로 설득했는가 하는 대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뭔가 크게 건질만한 대답을 기대했으나,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공산주의’를 헌법과 당규약에서 삭제한 것은 공산주의 이상을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내용으로 목표를 현실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산사회의 건설은 이상과 이념으로 갖고 있었던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사회주의를 목표로 해왔는데, 이번에 그것을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의 말대로 공산주의 이념과 이상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헌법과 당규약에 공산주의를 모두 삭제할 필요가 있었을까, 공산주의 이념과 이상을 궁극적 목표로 남겨두고 사회주의를 현실적 목표로 추구한다고 수정할 수 있었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를 문헌에서 삭제한 배경에 대해 더 질문하고 따져 묻고 싶었으나, 말싸움이 될까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구태와 관행의 공산주의 목표를 과감히 없애고 현실 사회주의 건설로 방향을 명확히 함으로써 ‘통큰 정치’, ‘실용정치’를 실행해 나가고 있다고 자랑할 수도 있을 법했다. 이러한 현실을 과감히 인정하지 못하고 “공산주의 이념과 이상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는 설명에서 북한체제가 당면한 곤혹스런 모습을 보는듯했다.

또 하나의 관심은 선군정치가 강조되는 현실에서 당과 군대의 관계에 대한 문제였다. 선군정치에 관한 논문은 선군정치의 역사적 뿌리를 언급하면서 항일무장투쟁으로 거슬러 올라갔으며 당조직보다 군대조직을 먼저 결성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즉 선군정치는 당보다 군대를 더 우선시 하는 정치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에 대한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선군정치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선군후로와 같은 이론화를 새롭게 한 내용도 부각시키면서 군대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다른 북한학자는 선군정치를 확대 해석하는데 대해 반대했으며 북한에서 어디까지나 당이 모든 것의 근간이며 군대도 당의 통치를 받는 당국가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선군정치가 강조되면서 당과 군대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아직까지 선군정치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정립된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강대국이 바라는 것이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밤늦도록 북한학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몇 학자들은 사회과학원에서 운영하는 사회과학대학 출신이었는데, 김일성종합대학은 교육성에서 관리하지만 사회과학대학은 당에서 관리하는 당소속 대학이라며 자랑했다. 가족사진을 서로 꺼내어 아이들 자랑도 하고 직장 얘기도 하며 각자 살아온 삶을 나누었다. 삶의 고민은 남이나 북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남북이 정치적 이념을 떠나서 서로 자주 만나고 대화를 하다보면 통일이 되든 뭐가 되든 미래가 열리지 않겠는가 라며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학술회의를 마치고 벤쿠버 공항으로 오는 길에 택시 운전기사와의 대화를 통해 통일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도출신의 기사는 벤쿠버에서의 남북학술회의에 지대한 관심을 표시하며 인도도 ‘통일’(unification)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하였다. “인도가 무슨 통일문제”라는 반문을 하기가 무섭게 인도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세 나라로 분단된 역사를 설명하며 언젠가는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통일비전을 역설하였다. 인도가 통일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들은 지라 그것이 어느 정도 진지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면 탈냉전 이후 독립국으로 나누어진 여러 나라들도 통일문제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택시기사는 남북한의 통일에 대해서도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남북한은 형제나라이지 않은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 “남북한이 서로 싸우는 일은 강대국이 바라는 일이다,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라며 우리에게 호소하듯 말을 쏟아내었다. 이국의 택시기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다니!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남북간의 감정과 긴장이 잔뜩 고조되어 있는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인가! 벤쿠버 시민의 수준이 이처럼 높다는 것인가! 여러 상념이 떠올랐다. 평범한 그 말의 여운은 마지막날 저녁 남북간 협력을 강조하던 북한학자들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그것이 강대국이 바라는 것이다.”

김병로 박사. 서울대통일평화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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