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최고사령관의 위상과 역할 연구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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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김정은의 최고사령관직 승계와 최고사령부의 역할 확대
1. 김정은의 최고사령관직 승계
북한에서 군대의 장악이 권력의 유지 및 강화를 위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김정은은 김정일 사후 군대의 최고직책인 인민군 최고사령관직부터 승계했다. 북한은 김정일 사망 1주일 후인 2011년 12월 24일부터 김정은이 사실상 ‘최고사령관’임을 강조하기 시작하다가 12월 말 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했다. 12월 24일자 로동신문 정론은 “김정은 동지를 우리의 최고사령관으로, 우리의 장군으로 높이 부르며 선군혁명 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김정은이 사실상 최고사령관이며, 곧 공식적으로 최고사령관직에 추대될 것임을 시사했다.
북한은 2011년 12월 29일 김정일 중앙추도대회 때 김정은을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영도자’로 내세우고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체계’ 수립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소집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김정일의 ‘2011년 10월 8일 유훈’에 따라 김정은을 군대의 최고직책인 최고사령관직에 추대함으로써 김정은은 공식적으로 군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사진 3> 김정일 생시 군대에 대한 김정은의 단독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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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2012년 1월 8일 방영한 김정은 우상화 기록영화)
김정은이 북한 지도부에서 김정일의 후계자로 결정된 것은 2008년 말경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 후 이미 2009년 상반기부터 김정은의 영군체계(․국방위원)과 김영철(총참모부 정찰총국장․당중앙군사위원)이 대장으로 진급했고, 주규창(당중앙위원회 기계공업부장․당중앙군사위원․국방위원), 백세봉(제2경제위원장․국방위원), 김송철(근위 서울류경수제105탱크사단장)이 상장으로 진급했다. 당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과거에 장성 계급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박도춘, 주규창, 백세봉 등 군수공업 관련 인사들이 모두 장성 계급을 수여받은 것이다. 2월 15일의 군 인사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군수공업 관련 간부가 세 명이나 대장 또는 상장으로 승진해, 최고사령관인 김정은이 군수공업을 매우 중시하고 있고 이를 직접 관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김정은은 2012년 4월 13일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박순환을 중장으로 진급시키고, 70명의 군 간부들을 소장으로 진급시켰다. 이 같은 조치들은 김정은에 대한 군 간부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직에 임명되고 나서 1992년에 군 간부 96명을 중장 계급으로, 524명을 소장 계급으로 진급시킨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절제된 승진 인사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은도 김정일처럼 군부의 충성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대규모 군 간부 승진 인사를 단행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군 간부들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은 경계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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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맺음말
북한에서 군대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유일적 영도를 보장하는 최고사령관직이 신설된 것은 6․25전쟁 직후였다. 1950년 7월 4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전시상태에서 ‘전반적 무력을 통일적으로 장악지휘하는 기구’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를 조직하고, 김일성을 최고사령관에 임명하는 정령을 발표했다. 이후 김일성은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전쟁 수행을 지휘했지만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중국군이 참전하면서 북한군 전방부대들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조․중 연합사령부에 이양하고 주로 후방 방어 및 전시지원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 결과 김일성이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한국군과 미군에 대한 군사작전을 지휘한 기간은 짧지만 최고사령관직은 군대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유일적 지휘를 보장하는 직책으로 남게 되었다.
1953년 정전 이후 북한 로동신문에서 최고사령부와 최고사령관에 대한 언급은 서서히 줄어들어 최고사령부에 대한 언급은 1956년 2월 이후부터 1976년 8월 이전까지 약 20년간 사라졌고, 최고사령관에 대한 언급도 1955년 5월 이후부터 1968년 2월 이전까지 약 13년 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과연 최고사령부가 해체되었다가 다시 부활했는지, 김일성이 계속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군대를 지휘했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자료들을 통해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로동신문과 김일성 저작집 등을 토대로 분석해볼 때 김일성이 적어도 1968년경부터는 내각 수상직이나 공화국 주석직이 아니라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군대를 지휘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김일성 시대에도 군대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유일적 지도를 위해 최고사령관직이 중요했지만, 김정일 시대에 들어와서는 그의 공개활동의 상당 부분이 군대와 관련되어 최고사령관직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과거 김일성은 1962년에 당중앙위원회 군사위원회가 창설된 후 군대에 대한 당중앙위원회 군사위원회(1982년부터 서서히 ‘당중앙군사위원회’로 불리기 시작함)의 집체적 지휘와 군대에 대한 최고사령관의 유일적 지휘를 병행했다. 그런데 김일성보다 훨씬 권위적이었고 집체적 토론을 싫어했던 김정일은 군대에 대한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집체적 지휘를 거부하고 최고사령관의 유일적 지휘를 절대화했다. 그래서 1980년 당규약이 당중앙위원회 군사위원회에 부여했던 무력에 대한 통솔권이 2010년 개정된 당규약에서는 삭제되었다.
1953년 정전 이후 북한 매체에서 드물게 등장했던 북한군 최고사령부가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수시로 대변인 성명과 성명을 발표하는 등 최고사령부의 기능이 활성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3년 3월에는 김정은이 최고사령부에서 긴급 작전회의를 개최해 북한의 “전략로케트들이 임의의 시각에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도를 비롯한 태평양작전전구안의 미제침략군 기지들, 남조선 주둔 미군기지들을 타격할 수 있게 사격대기상태에 들어갈 것을 지시”하는 대외적으로 초강경 태도를 보였다. 과거 김정일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수세적으로 대응했다면 김정은은 미국 및 남한과의 ‘전면대결전’도 불사하겠다는 초강경 입장을 보임으로써 전쟁수행기구인 최고사령부와 전선군사령부 등의 대남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단기적으로 비현실적인 북한 ‘급변사태’ 대비보다 북한의 점증하는 군사적 위협에 대한 안보적 대응 능력 강화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선군정치에 대한 북한의 문헌을 보면 선군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당과 수령의 영도체계인 ‘선군영도체계’는 ‘최고사령관의 유일적 영도체계’와 ‘국방중시의 국가관리체계’를 포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김정일 시대의 선군영도체계와 관련해 ‘최고사령관의 유일적 영도체계’는 무시하고 ‘국방중시의 국가관리체계’만 강조해온 경향이 있다.
북한에서‘최고사령관의 유일적 영도체계’는 “혁명군대만이 아니라 민간무력도 포함하여 혁명무력 전반을 지휘통솔하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로 간주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방중시의 국가관리체계’는 ‘국방위원회를 기본으로 하는 국가기구체계’로 설명되고 있다. 북한 문헌을 보면 국방위원장이 ‘국가의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군대와 민간무력에 대한 국방위원장의 지휘통솔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고 국방위원회나 국방위원장 명의로 군대에 대한 작전 지시가 내려진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김정일이 ‘국방위원회 위원장’ 명의가 아니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의로 군부대를 시찰했던 것처럼, 현재 김정은도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명의가 아니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의로 군대를 지휘하고 있다. 이는 북한에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직책이 ‘공화국 전반적 무력’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등을 지휘하는 직책이지, 인민군을 지휘하는 직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6.25 전쟁시에도 김일성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직책으로 인민군을 지휘했지, 국가 직책인 ‘공화국 군사위원회 위원장’직으로 군대를 지휘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현재 북한의 국방위원회가 마치 북한군을 지휘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국방부 발간 북한 군사지휘기구도(1절의 <그림 1>)는 다음의 그림과 같이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