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 을미(乙未)년이 밝았다. 남북한으로 분단된 지 70년이 되었지만 한반도 상황은 변한 것이 거의 없다. 남북관계는 장기적인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불신과 갈등의 골이 깊어져 있다. 양측은 남북관계 발전의 필요성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강조하지만, 이를 위한 접점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남북한은 상호 비방과 자기 주장을 관철하는 데 주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남북한의 최고지도자 모두 남북관계의 일대 전환을 강조해 주목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월 1일 0시를 기해 군 장병에게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로 그동안 지속해왔던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하고 분단의 역사를 마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루 앞서 박 대통령은 을미년 신년사를 통해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이끌어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2015년 1월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북남 사이 대화와 협상,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하여 끊어진 민족적 유대와 혈맥을 잇고 북남관계에서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와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등 남북정상회담 개최 용의를 표명한 점이 주목된다. 김 제1위원장은 또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문별 회담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한 날 “김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 간 대화 및 교류에 대해 진전된 자세를 보인 데 대해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고 평가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남북 당국간 대화가 개최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로 보아 조만간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남북한 모두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 분단 70년을 맞는 올해는 남북관계 전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진정성 있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남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거의 동시에 남북관계 전환을 강조한 것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특히, 남북관계 발전은 김정은 정권이 추진하는 각종 정책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 나타난 핵과 병진노선, 미국에 대한 비난 언급은 과거에 비해 감소했고, 그 강도도 약화됐다. 이로 미뤄 북한은 올해 대외관계 개선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도 부담스러워하는 핵·미사일 문제 등의 강경한 대응 방법으로 대외환경을 돌파하기 보다 인권문제 등으로 악화된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 제고와 함께 유연한 방법을 통해 대외관계 개선을 추구하겠다는 의도를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대외경제관계를 다각적으로 발전시키며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를 비롯한 경제개발구 개발사업을 적극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경제개발구 사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외부에서의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돼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북한이 외부 투자를 유치하기가 쉽지 않다. 북한의 경제개발구에 실질적으로 투자할만한 나라가 남한과 중국밖에 없다는 점도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필요로 하는 이유일 것이다. 더욱이 북한이 중국·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해도 남북관계의 개선·진전 없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제정세와 한반도 정세가 상호 연계돼 있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정체가 북한의 대외관계 개선에 장애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해 우리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주도적이고 선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북한이 남북대화에 부담 없이 나설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남북대화가 이뤄진다면 북한의 제안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월등한 국력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주도하며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결국 우리 정부가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관리하고 북한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남북한 상호 간의 비방·중상 및 적대행위 중단과 대북전단 문제, 한미연합군사훈련 문제 등이 어떻게 조정·정리되느냐가 남북관계 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초 남북한 모두가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 조성을 강조했지만, 이 같은 문제들로 인해 결국 간헐적으로만 대화가 이뤄지면서 북한이 강온 양면 전략을 추진했던 것이다.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도 이러한 조건들을 변화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분단 70년을 맞아 우리가 주도해 기존의 틀을 깨고 고개를 넘어 남북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남북한이 대화 재개를 위한 접점을 어떻게 찾는지의 문제와 함께 이 과정에서 5.24조치 및 금강산관광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가 중요한 요건이 될 것이다. 만약 남북대화가 재개된다면 북한은 기존에 밝혀왔던 정치·군사적 대결을 해소하는 이른바 ‘근본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은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을 비롯한 단계적 접근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큰 통일로 나간다는 우리의 기조와는 다르다. 즉, 일시적인 교류·협력과 지원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아내고, 이를 기반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방식으로는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남북한 사이의 현안은 그 문제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근본문제와 함께 해결·추진되어야 한다. 남북 간 현안에만 급급해서는 남북관계의 근본적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 따라서 향후 이뤄질 남북대화는 통준위가 ‘남북 상호 관심사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것처럼, 기존에 남북한이 제시해왔던 모든 사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허심탄회하게 협의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분단 70년을 맞아, 우리가 ‘새로운 남북관계의 틀’을 만들어 미래를 내다보고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을 주도해야 한다. 새롭게 발전된 남북관계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북한과 진지하고 폭넓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