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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김여정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이다. 북한 김씨왕조의 일원이 남한을 방문한 것은 6.25전쟁 이후 처음이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김일성은 1950년 6·25전쟁 때 서울·수안보·전주·광주 등을 몰래 다녀갔다. 김일성은 1994년 7월 25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을 보름 남겨 두고 갑자기 사망하면서 합법적 남한 방문의 꿈이 무산됐다. 남한을 방문하면 전주 김씨 시조묘에 가고 싶다던 김정일은 2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안전을 우려해 남한 땅을 밟지 못하고 죽었다. 김씨왕조의 3대손인 김여정은 이번에 할아버지·아버지가 못다 이룬 남한 방문의 꿈을 이룬 셈이 된다.

그러나 김여정의 남한 방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김여정은 첫 국제무대 데뷔전인 이번 남한 방문시 우리정부의 환대와 미국정부의 냉대를 함께 받았다. 김여정은 방남 기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고 오찬을 함께 한데 이어 이낙연 국무총리,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주재하는 오찬·만찬에도 참석하며 사실상 정상급 대우를 받았다. 남측의 융숭한 대접에 김정은이 “남측이 우리측 성원들의 방문을 각별히 중시하고 편의와 활동을 잘 보장하기 위해 온갖 성의를 다하여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사의를 표했을 정도다.

반면 김여정은 미국 정부 대표단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으로부터 무시와 외면을 받았다. 원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의 만남이 약속됐지만 김여정 측에서 2시간 전에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보여준 냉담한 태도에 북한이 알아서 난처한 상황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천안함을 방문해 북한의 도발을 강조했고, 탈북민들을 만나 북한 인권문제를 부각시켰다. 펜스 부통령은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서 뒷줄에 있던 김여정과 악수도 나누지 않았다. 개막식 전 식사 자리에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 단장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무시했다.

평화공세의 선봉 임무를 띠고 남한에 내려온 김여정은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입장과 북한 정권이 마주한 냉혹한 대북제재의 현실을 직접 목격한 셈이 됐다.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에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미북정상회담을 약속한 것도 김여정의 이런 보고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김여정은 북한에서 김정은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알려졌다. 김여정은 오빠인 김정은에게 미북 관계의 진전이 없이는 온전한 남북관계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의 방남 전 기간 동행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지난 9일 “北 최고지도층에 김여정 부부장 같은 성격의 사람이 있는 게 다행스럽다는 판단을 저희 나름대로 했다”며 “김여정 부부장이 앞으로 남북관계 뿐 아니라 여러가지 북한이 대외적으로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김여정은 김정일과 고용희의 셋째로 오빠인 김정은과 함께 어린 시절을 스위스에서 보냈다. 어릴 때부터 이국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사이어서 김정은이 각별히 총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은 정치와 무관한 평범한 삶을 살고 있기에, 친혈육으로서 김정은의 정치적 동반자는 김여정 밖에 없다는 평가다. 대북소식통은 “북한은 김정은·여정 남매 정권으로 볼 수 있다”며 “역시 혈육 밖에 믿을데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 김씨왕조 패밀리 정치의 기원은 김일성-김영주 형제와 김정일-김경희 남매 ◇

북한 김씨왕조 패밀리 정치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가 있다. 김영주는 김일성의 친동생으로 일제시대 만주에서 일본군 통역관을 지내다 해방 후 서울을 거쳐 평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모스크바 유학을 거쳐 노동당에 들어간 그는 당 중앙위원회 조직비서겸 조직 부장이라는 핵심 요직에 오르는 등 1970년대 초반까지 북한에서 권력 2인자의 자리를 지켰다.

김영주는 형 김일성에게는 든든한 정치적 후원자 였고 조카인 김정일에게는 정치적 은사였다. 1972년 5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회담을 하는 등 ‘7.4 남북공동성명’ 발표에도 관여했다. 김일성의 현장 지도에도 늘 동행했다. 김영주는 김일성에 대해 ‘수령’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당의 유일사상체계10대원칙’을 만드는 등 김일성 우상화에도 주력했다.

이 때문에 김일성은 한때 동생 김영주를 후계자로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김정일이 당 선전선동부에서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시절을 미화하고 김일성의 사상을 ‘주체사상’으로 철학화·이론화 하는 과정을 주도하면서 삼촌과 조카 사이에 충성경쟁이 본격화 됐다. 그러나 김영주는 김일성 우상화 작업에 있어 조카인 김정일을 뛰어 넘지 못했다. 김영주는 중학교 3학년 중퇴생인 김일성이 마르크스-레닌의 사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주체사상을 창시했다는데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김일성의 마음이 김정일 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1974년 김일성이 아들인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삼촌과 조카의 권력투쟁은 막을 내린다. 이후 지방으로 좌천된 김영주는 1993년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마무리 된 시기에 평양으로 복귀했다. 2003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에 임명됐다. 2015년 지방의회 대의원 선거에 참석한 모습이 북한 매체에 공개됐다.

현재 김정은과 김여정의 관계를 보면 과거 김일성과 김영주의 관계를 방불케 한다. 김정은도 자신의 아들이 성장해 권력을 잡을 때까지 김여정을 최측근으로 계속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에게 김영주가 있었다면 김정일에게는 여동생 김경희가 있었다. 김경희는 김정일이 믿고 의지하던 피붙이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김경희는 공개석상에서도 김정일에게 반말을 할 정도로 남매의 사이가 각별했다”고 했다. 김경희는 1960년대 말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모스크바 유학을 다녀왔다. 이후 1970년대 당 국제부에서 근무하다가 경공업 부장을 맡았다.

외부에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뒤에서 김정일을 도왔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김경희는 암행시찰을 통해 파악한 지방 동향을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2008년 여름 김정일이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불편한 몸이 되자 현지지도에 동행하며 직접 챙겼다. 남편인 장성택과 함께 김정은의 후계구도 구축을 주도하기도 했다. 2013년 12월 남편인 장성택이 반당반혁명종파 혐의로 처형 된 후 공식활동을 접고 은거하고 있다.

◇김경희 은퇴 이후 정치무대에 본격 등장 ··· ‘등장 초기부터 광폭 행보’

김여정은 장성택이 처형된 후 권력 공백을 메우며 김정은 정권의 핵심 인사로 부상했다. 장성택이 처형되고 고모인 김경희도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상황에서 김정은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혈육이기 때문이다. 내조형이던 김경희에 비해 김여정의 정치행보는 광폭에 가깝다. 김경희는 40세가 넘어서야 노동당 중앙위원, 당의 정책 결정기구인 정치국에는 64세에야 진입했다.

그러나 김여정은 27세에 당 중앙위원(2016년 5월 당 제7차대회), 28세(2017년 10월 당 중앙위원회 제7기 2차 전원회의)에 당 정치국 후보위원이 됐다.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인 셈이다. 김여정은 등장 초기부터 실세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2012년 7월 김정은이 문수물놀이장 준공식 참석 때 뒤에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이 북한 매체에 공개됐다. 이후 김일성 생일 105주년 기념 열병식 때는 참석자들의 자리를 안내하고, 김정은이 받은 꽃다발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

김정은이 참석하는 행사 때 주석단 뒤에서 자유분방하게 오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정부관계자는 “김정은이 참석하는 1호 행사에서 일반인이 그렇게 행동했다면 처벌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북한 매체가 김여정의 천방지축 행동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낸 것도 김여정의 정치적 위상을 과시하려는 계산된 행위로 보인다”고 했다. 김여정의 파워는 지난 2월 방남시 고위급 대표단 단장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태도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고위급 대표단 단장인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성남공항 귀빈실에서 김여정을 기다리고 의자에 앉을 때 먼저 자리를 권하는 등 깍뜻이 예의를 차쳤다.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이며 올해 90세인 김영남 위원장이 20대의 김여정에게 깍듯하게 대한 것은 그녀가 다름아닌 김씨왕조의 공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번 김여정의 방남에는 김정은의 집사 역할을 수행하는 노동당 서기실장 김창선도 동행했다. 직책상 공개활동을 자제하는 김창선은 김여정의 일정 등을 챙기기 위해 방남한 것으로 보인다.

◇선전선동 업무 및 김정은의 스케줄 관리 등 행사업무 총괄 ··· 사실상 문고리 권력 쥔 2인자◇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직책을 맡고 있는 김여정이 어느 부서를 담당했는지 공개되진 않았지만 김정은이 참석하는1호행사를 주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동선 등 신변안전 관련 업무를 가장 가까운 혈육에게 맡긴 것이다. 또 김여정은 정책과 인사문제를 김정은에게 직접 보고하는 사실상 2인자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여정은 서울에서 귀국 후 김정은에게 방남 관련 보고를 했고, 노동신문에는 남매가 팔짱을 끼고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 방북 시에도 김정은과 회담 및 만찬에 참석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는 김정은이 김여정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으며 격의 없이 의사를 교환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여권의 한 인사는 “김여정이 이번 방남 때도 오빠 못지 않게 상당히 스마트하고 배짱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라며 “김정은이 경제·외교 등 각계 전문가를 김여정에게 붙여 일대일 과외수업을 시키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김여정의 눈에 들어야 김정은을 모실 수 있다”, “김정은 이외의 실세는 김여정 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고 한다. 2인자의 자리에 오른 김여정은 안하무인의 권력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김여정은 최근 간부의 사소한 실수도 수시로 처벌하는 등 권력남용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김여정은 선전선동부 업무를 통해 김정은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 사업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헤어스타일과 복장, 주민들과의 신체접촉 등 서민적 면모 등이 김여정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가 남편의 팔짱을 끼고 나타난 것이나 모란봉 악단의 공연에 미키마우스 등 미국 만화영화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도 모두 김여정의 연출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여정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그의 남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이 권력 핵심에 진입했던 것처럼 김여정의 남편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의 남편은 현재 노동당에서 사법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여정 남매의 패밀리 정치의 한계와 문제점◇

김씨왕조의 패밀리 정치는 김정은·여정 남매정권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고 있다. 20~30대인 김정은·여정 남매는 생물학적 수명이 다 할때까지 종신권력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북한 매체들은 벌써부터 “김일성-김정일 조선을 700년, 7000년 이어가자”고 선동하고 있다. 이미 70여년 간 김씨왕조의 지배를 받아온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선 이 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다.

김정은·여정 남매는 종신권력의 유지·안정을 위해 폭압정치를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핵을 보유한 젊은 두 남매의 패밀리 정치는 대남·대외 관계에서도 불안감을 줄 수 밖에 없다. 국정운영과 외교경험이 부족한 이들의 결심에 따라 중요한 대남·대외 결정이 내려지기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관료 그룹이 조언을 하겠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이들 남매다.

김정은·여정 남매는 해외유학파란 점에서 한 때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집권 초기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무모한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지난해 말까지 광란적인 핵·미사일 개발 폭주를 펼쳤다. 이들이 올해 갑자기 평화공세로 전환한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미국의 군사적 압박으로 초래된 사면초가의 상황을 남북관계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임신한 여동생을 무리하게 남한에 특사로 파견하고, 지난해 12월 아직 ‘대기권 재진입’ 등 기술적 문제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여정 남매가 3대에 걸쳐 완성한 핵무기를 과연 포기할지 여부에 대해선 부정적인 전망이 크다. 김정은이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며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고 하지만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폐기한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없기 때문이다. 5년 전(2013년) 3월 31일은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어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竝進) 노선’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날이다. 김정은이 밝혔다는 ‘비핵화 의지’에 진정성이 있다면 ‘병진노선’은 이제 수명을 다하고 5년 만에 쓰레기통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그러나 노동신문이 ‘우리가 핵을 포기할 것을 바라는 것은 바닷물이 마르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밝힌 것처럼 북한정권이 핵 무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김씨왕조를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얘기로 들린다. 결국 김정은이 밝힌 비핵화는 핵 보유국의 지위를 인정 받은 상태에서 미국과 평화·군축 대화를 모색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들이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을 통한 획기적인 출구전략 마련에 나섰다고 하지만 그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위기모면을 위한 급격한 정책변경으로 내부의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밖에도 김여정이 김정은에 버금가는 권력을 오래동안 행사하다 보면 남매 간 권력 투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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