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차례의 북중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 오는 6월 개최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북한 비핵화와 종전선언 및 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경제건설 총력전’을 선포하면서 본격적인 경제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중국 방문시 ‘덩샤오핑식 개혁개방’을 거론하고, 4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베트남식 모델로 가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북한이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중국·베트남식 개혁·개방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3대세습 정권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중국식,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통제형 단절식’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있다.
◇ 노동당 중앙위 제7기 3차 전원회의 계기 경제발전 드라이브
북한은 지난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 제7기 3차 전원회의를 열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이 당의 전략적 노선”이라고 밝혔다.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올인전략’에로의 노선전환을 선포한 것이다. 이후 열흘(4월 30일) 만에 열린 당·국가·경제·군부의 고위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제발전을 위한 연석회의’를 개최하고 인적· 물적·기술적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강력한 사회주의경제를 건설할데 대한 문제들을 논의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공식선언 한 1978년 제11기 공산당 중앙위 제3차 전체회의에서 나온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집중 노선’과 북한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나온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과학교육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도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정책과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978년 덩샤오핑은 중국 과학교육 담당 부총리를 맡아 대학 입학시험을 부활시키고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개혁을 우선 단행했다. 이는 김정은이 덩샤오핑의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북한에 적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실제로 김정은은 지난3월 말 베이징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의 길을 빨리 걸었어야 했는데···”라고 말하고, 방북 중인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게 “중국 공산당의 경험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박태성 노동당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노동당 ‘친선참관단’을 5월 14일 중국에 파견해 중국의 경제현장을 참관하도록 했다. 이들은 베이징에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촌 등을 둘러 보고 중국 개혁의 상징인 남부의 광둥성(廣東省)일대를 방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2010년 10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 이후 북한 지방당 책임비서들로 구성된 노동당 친선대표단이 베이징과 상하이,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을 방문한 것과 비슷하다. 노동당 참관단이 중국의 경제발전상을 둘러 보고 북한에 어떻게 접목할지를 연구하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이 중국의 경험을 배워 경제회복을 위한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이밖에도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직접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은 ‘베트남은 경제적으로는 중국보다 자본에 대한 통제가 덜하고,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외부에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베트남식 개혁·개방은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시장을 개방하고 해외 자본을 유치해 자본주의를 접목시킨 정책이다. 북한이 베트남식 노선을 택한다는 것은 비핵화를 통해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한 뒤,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을 받고 대외 개방을 통해 경제개발에 전념할 것을 의미한다.
베트남식 개방은 특히 국가가 완전한 장악력을 쥐고 있는 것으로 당의 통제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자본을 획기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북한이 올해 북중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미북 정상회담 개최까지 나서는 이유도 경제발전을 위한 평화적 대외환경 조성때문인 것이다. 미북 정상회담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의 비핵화 합의가 체결되고 이행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북한의 경제개혁도 한층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비핵화 여부에 따른 북한의 번영 구상을 밝힌 점도 북한 경제개혁에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정은 집권 후 생산성 향상 위한 부분적 개혁정책 실시
최근 중국과의 관계 개선 중시 이유는 대북제재 숨통 트기 위한 전략 북한은 과거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기 전에 농업과 공업에서 자율권을 허용한 것처럼 김정은 집권 이후 비슷한 조치들을 시범적으로 취해왔다.
2012년(6·28조치)과 2014년(5·30조치) 기업에 경영의 자율권을 부여하고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개인과 기업소에 협동농장의 토지를 임대해 주는 등 농업개혁을 부분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중국식 경제 특구를 모방해 전국에 경제개발구를 지정했다. 2013년 5월 ‘경제개발구법’을 제정, 순차적으로 경제개발구 설치를 발표함으로써 2016년 12월 기준으로 총 26개를 지정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개발구 정책은 선포된 이후 4차례의 핵 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로 어느 한 곳도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경제특구 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국제질서에 적극 편입하는 외교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경제의 숨통이 막힌 상태다.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 담판을 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엔의 대북제재 상황에서 북중경헙과 지원을 통해 꽉 막힌 경제의 숨통을 트려는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의도는 김정은은 지난 5월 7∼8일 중국 다롄(大連) 방문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김정은은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미국과 비핵화에 대해 포괄적 합의가 이뤄지면 중국이 중간단계에서 경제적 지원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14일 전했다.
시 주석은 이에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해 포괄적으로 타결해야 한다”며 비핵화 요구를 최우선으로 요구하고, 비핵화 합의가 이뤄지면 단계적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북한이 구상하는 개혁·개방은 비핵화가 진전되고 대북제재가 해제돼야 가능하기에 시행까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중국의 지원을 받아 발등에 불부터 끄려는 것이다.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체제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제한적 개혁개방 제한적
북한이 추진하는 개혁·개방이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3대세습의 구조적 한계 등 여러 이유 때문에 폭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덩샤오핑은 집권 이후 ‘마오쩌둥’의 공(功)과(過)를 평가하면서 사상해방을 통한 개혁개방을 이뤘다. 그러나 세습으로 정권을 잡은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기반인 선대의 유산을 비판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평생 김일성·김정일의 주체사상을 붙들고 가야 한다. 또 3대세습 체제유지를 위해 외부로부터의 정보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주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제하며, 모든 주민을 조직화해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이밖에도 중국은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ICBM)을 보유한 상태에서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개혁개방을 이뤘다. 반면 김정은은 북한은 반대로 핵능력을 포기해야만 미·북 수교가 가능하다. 김정은으로선 미국의 체제 보장 약속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태영호 전 주영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지난 4일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식이나 베트남식 개혁개방은 할 수 없는 체제”라며 정보접근과 이동, 비정치의 자유를 준 중국식 개혁개방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개성공단처럼 다른 지역과 차단되고 주민들의 이동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단절식 개혁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중국이나 베트남에 비하면 반쪽짜리 개혁·개방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북 정상회담 앞두고 미국 비난
남북정상회담 이후 주민통제 강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일 ‘자본의 착취적, 략(약)탈적본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논평에서 “자본주의는 번영이 아니라 자멸과 쇠퇴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며 사회주의체제를 강조했다. 앞서 노동신문은 지난 4월 29일 '미국식 민주주의의 허황성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는 제목의 정세논설에서 “미국식 민주주의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를 무자비하게 짓밟는 가장 반동적이고 반인민적인 통치체제이며 침략과 간섭의 도구”라고 주장했다.
미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주민들 속에서 미국에 대한 환상이 싹틀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 경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겠지만 체제 위협을 막기 위해 정치시스템은 사회주의를 유지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대북소식통은 “4·27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 간 평화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발전이 정치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감시·억압기구를 강화하는 등 주민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산림, 물고기, 밀수밀매, 마약근절 등 각종 포고문이 나와 주민들의 활동을 통제한다”고 했다.
특히 올해 3월 19일에 나온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하는자들을 엄격히 처벌함에 대하여’라는 인민보안성 포고문은 주민의 인식변화를 막으려는 북한당국의 의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포고문은 “1. 존엄 높은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를 침해하는 행위를 절대로 하지 말라. 2. 사회의 영상을 흐리게 하는 행위를 절대로 하지 말라. 3. 사회주의 경제제도를 침해하는 행위를 절대로 하지 말라. 4.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철저히 뿌리 뽑기 위한 섬멸전에 한사람이 떨쳐 나서라. 5. 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한 자들은 제때에 법 기관에 자수, 자백하라. 6. 법기관들과 감독통제기관들은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한 자들을 엄격히 처벌한다. 7. 이 포고를 어긴 공민은 직위와 소속, 공로에 관계 없이 단속 체포하여 법적으로 엄격히 처리하며 범죄 및 위법행위에 이용된 돈과 설비, 물자는 몰수하고 봉사기관은 영업을 중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태영호 공사는 “외부 세계와의 교류에 따른 주민들의 사상적 해이를 막기 위해 사상교육과 주민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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