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2013년 1월 12일 통일비전연구회 연구실에서 E.H카의 저서"역사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제2기 13차 통일비전연구회 역사연구 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저자의 분석은 우리에게 역사공부의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요약

1. 저자 E.H 카

 1892년 런던에서 출생한 저자 E. H. 카는 런던의 머천트 테일러즈 스쿨(Merchant Taylors'School)과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College)를 졸업했다. 그 후 1916년에는 외무부에 들어가 1936까지 약 20년 동안 외교관으로 근무했고, 이어 웨일스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국제정치학과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1941년부터 1946년까지는 “런던 타임스”의 부주필로서 언론활동의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1948년에는 국제연합의 <세계 인권선언> 기초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1953년부터 1955년까지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베일리얼 칼리지의 정치학 튜터(Totur)로서 정치학 강의를 하다가, 1955년에는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우(고급연구원)로 있으면서 후진들에게 역사학을 가르쳤다. 1966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베일리얼 칼리지의 명예연구원(Honorary Fellow)이 되었다.


그는 평생의 폭넓은 저술활동을 통해, 국제정치 연구에 학문적 기초를 부여한 것으로서, 국제정치에서 ‘힘’의 요소를 중요시하고 유토피아주의와 현실주의를 융합시킬 필요성을 주장한 “20년간의 위기”, 국제정치에 관한 “평화의 조건”과 “내셔널리즘과 그 이후”, 그의 실용주의적 역사관을 잘 보여주는 “새로운 사회”, 필생의 사업으로 볼 수 있는 “볼셰비키 혁명”과 “소비에트 러시아사” 등 주요 저서를 남겼다. 인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그는 1982년 11월 3일 케임브리지 자택에서 생애를 마감. 특히”역사란 무엇인가?“는 카의 명성을 전 세계적으로 떨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카의 역사관은󰡐역사는 역사가가 몸담고 있는 사회와 시대를 반영하고, 역사 해석은 불변의 객관적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그 사실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2. 요약 및 분석

(1) 역사와 사실

<역사란 무엇인가?>는 저자인 에드워드 카가 1961년에 있었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속 강연에서 발표된 것으로 후에BBC방송이나 주간지 리스너(Listner)를 통해서도 일반에게 보급됐다.
우선 역사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보기에 앞서 액턴과 조지 클라크 교수의 역사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면 그들 사이의 차이를 볼 수 있다.


1896년에 액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세대는 현재로서는 아직 완전한 역사를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상투적인 역사를 처리할 수 있고, 또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에 이르는 도상에서 우리가 지금 도달한 지점을 알려줄 수는 있다. 오늘날에는 어떤 지식이든지 알아낼 수 있으며,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이처럼 액턴은 당시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가로써‘완전한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그로부터 60년 뒤 조지 클라크 교수는 이러한 액턴과 그의 동료들의 믿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평을 했다. “그 후의 역사가들은 자기들의 일이 계속해서 극복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그들 한사람, 또는 몇 사람의 정신을 통해서 전해져 온 역사적 사실이란 그들에 의해 가공된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결코 바뀌지 않을 원소적이며 비인간적인 원자로 구성될 수는 없다고 했다... 탐구의 길은 한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어, 이런 성급한 학자들은 회의주의로 피해버리거나, 모든 역사적 판단에는 인간 관점이란 요소가 포함되기 때문에 하나의 역사적 사실은 또 다른 사실과 유사하며,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존재할 수 없다는 학설로 도피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의 경우가 이렇게 서로 엇갈리는 것은 이 두 발언 사이의 기간 동안에 일어난 전반적인 사회관의 변천을 반영하는 것이다. 액턴이 빅토리아 시대 후기의 적극적인 신념과 냉정한 자신을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조지 클라크는 비트세대의 당혹과 혼란스런 회의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려고 할 때 우리의 대답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의 시대적 관점을 반영하고,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하는 더 광범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답의 한 부분을 형성하는 것이다.


사실을 존중했던 시대에 살았던 근대 역사학의 확립자 랑케(Ranke)는 "역사가란 자기 자신을 죽이고 과거가 본래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가를 밝히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아야 하며 오직 사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함으로써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 그 자체'에 큰 비중을 두었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되는 역사인식론이 그 후에 크로체(B.Croce)나 콜링우드(R.G.Collingwood)에 의해 피력되었다. 그들에 의하면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이다.


"모든 역사적 판단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실천적 요구이기 때문에 모든 역사에는 현대의 역사라는 성격이 부여된다. 서술되는 사건이 아무리 먼 시대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역사가 실제로 반영하는 것은 현재의 요구 및 현재의 상황이며 사건은 다만 그 속에서 메아리칠 따름이다". 그들에 의하면,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문제의 관점 하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서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의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성 역사가들에 비해, 저자는 역사의 중심을 과거에 두는 역사관과 중심을 현재에 두는 역사관의 중간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저자의 역사에 대한 입장을 요약하면,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들과의 관계는 평등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는 사실의 노예도, 주인도 아니다.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므로, 이 상호작용은 또한 현재와 과거의 상호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을 소유하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도 없고 열매도 맺지 않는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생명도 없고 의미도 없다.  역사란 결국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이것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첫 번째 해답이다.

(2) 사회와 개인

역사적 사건의 주체는 사회인가 개인인가?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 유사한 논쟁으로, 확답을 낼 수 없는 난해한 질문이다. 사회와 개인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상호 보완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개인주주의적인 입장을 지닌 과거 역사가들의 주장에 반박하며 개인은 사회와 대립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

우선 사회는 다양한 개인들로 구성되며 개인은 사회에서 분리될 수 없다. 즉 개인과 사회는 서로에게 필수적이고 보완적인 것이지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발전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며 사회의 발전은 개인의 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역사가들은 어느 정도까지 단일한 개인들이며, 어느 정도까지 그들의 사회와 시대의 산물인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과연 역사의 사실은 어느 정도까지 단일한 개인들에 관한 사실이며 어느 정도까지 사회적 사실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역사서에 담겨있는 내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역사가는 자신의 사실과 연구에 대해 어떠한 주관적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이러한 입장 자체에는 특정한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역사가에 대한 것과 함께 그의 연구대상 역시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즉 역사가의 연구대상은 바로 역사상의 사건에 대해 그것이 개인의 행동인가 아니면 사회적 힘의 작용인가라는 물음이다.


또한 저자는 역사의 연구는 원인에 관한 연구라고 한다.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끊임없이 왜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하나의 동일한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을 제시한다. 물론 역사가의 역할은 여기까지가 끝이 아닐 것이다. 역사가는 이렇게 발견한 원인들을 정리하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역사가가 이러한 역사의 원인들을 평가하는 가치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어떤 것이 더 결정적이며 또 어떤 것은 우연으로 평가되는 것일까? 이 장에서는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견해를 서술하고 있다.
역사가의 지식은 개인의 지적 소유물이 아닌 여러 세대에 걸친 사람들이 여러 나라에서 축적해온 것이다. 저자는 1장에서 ‘역사란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의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역사가도 한 개인이다. 따라서 그는 다른 많은 개인들처럼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며 그가 속한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그 사회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대변인인 것이다. 그런 자격으로 그는 역사의 경로인 ‘움직이는 행렬’에 따라 움직여 가면서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접근해가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가는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역사가는 연구하는 입장을 먼저 파악하지 않으면 그 역사가의 연구를 제대로 이해할 수도 평가할 수도 없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그 자체가 역사적인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사람이다.

역사가는 역사를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역사의 산물인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가에게는 역사가의 연구가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바로 그 사회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가를 나타내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가의 문제 접근방식을 간파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의 역사적 및 사회적 환경을 연구해야 한다.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런 이중적 안목으로 역사가를 비중 있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3) 역사와 과학, 도덕과의 관계

과학 발전이 이루어졌던 18세기 말부터 과학이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식까지도 진전시킬 수 있는가 하는 사회과학의 개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19세기 다윈의 과학혁명은 과학이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다룬다는 사실을 밝히며 역사를 과학과 연관시켰다. 방법론적인 면에서도 역사와 과학은 비슷하다. 과학에서의 일반 명제들은 가설일 뿐이며 끊임없는 증명, 수정 그리고 반론을 통해 새로운 발전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과학의 방법은 상호적이다. 이처럼 역사가들이 연구과정에서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와의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역사를 과학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과학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견해들이 있는데, 이에 대한 저자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는 특수와 개별을 취급하고 과학은 일반적인 것, 보편적인 것을 취급한다. 고로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것이다. 즉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를 취급하는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역사는 교훈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화라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에 있는 것이다. 즉, 어떤 한 경우의 사건에서 얻어낸 교훈을 다른 대목의 사건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셋째, 역사는 예언할 수 없다. 그러나 소위 과학적인 법칙이란 것도 하나의 경향성을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역사가에게는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개별적인 예언은 아닐지라도 미래 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넷째, 역사는 불가피하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인간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자연과학 분야도 어느 정도까지는 지각하는 주체(인간)와 지각되는 객체(자연력)간의 상호관계와 의존관계를 내포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역사는 과학과는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내포한다. 그러나 역사와 종교와의 관계에서, 진지한 역사가라면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을 수는 있겠지만 아말렉 인의 살육에 개입하고, 여호수아의 군사력을 돕기 위해 낮시간을 연장시킨다거나 하는 구약성서식의 신을 믿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 역사와 도덕과의 관계에서, 역사가는 과학자와는 달리, 취급하는 자료의 성질상 도덕적 판단의 문제 속에 들어가게 되지만, 이것이 곧 역사가 가치라고 하는 초역사적인 기준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도덕적 판단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닌, 과거의 사건이나 제도, 정책에 대해서이다. 또한 역사에서 도덕적 가치판단에 필요한 선악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은 해답이 나와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을 명제로 하여 판단할 수 있게 하므로 이는 역사적 사유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추상적 도덕 개념들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하므로 역사적 행위 판단을 가능케 할 절대적인 기준은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이 시대에 맞는 용어와 과거의 말들을 비교하며 상대적인 기준을 통해 서로간의 연관성을 찾는다.


역사가 과학이 아니라는 주장은 과거 영국의 계급주의에 기초한다. 과거 영국에서는 역사를 인문학의 일부로 하여 지배계급의 교양을 일컫는 것으로 했던 반면, 과학은 그 계급에 봉사하는 기술자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편견의 산물인 것이다.


과학자, 사회과학자 및 역사가는 모두가 같은 연구의 서로 다른 부문에 속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어느 것이든 인간과 그 환경, 환경에 대한 인간의 작용, 인간에 대한 환경의 작용에 대한 연구인 것이다. 연구의 목적은 동일하다. 곧 자기의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과 지배력을 늘리는 것이다. 역사가와 물리학자는, 설명을 구하는 근본 목적에 있어서나 문제를 제출하고 이에 대답하는 근본 절차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다른 모든 과학자도 그렇지만, 역사가도 줄곧 ‘왜?’하고 묻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4) 역사의 인과관계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과거의 사건에 대해 왜 일어났는지 알아보려 하지도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이므로 역사가는 항상 왜 라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원인의 문제에 대해 역사가는 두 가지 관점을 가진다. 첫째로 한 사건에 대한 몇 가지 원인을 거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 시험을 보는 학생이 러시아 혁명에 대한 원인을 한가지 밖에 제시할 수 없다면 낮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둘째로 원인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상하관계를 설정하고 궁극적인 원인을 찾는 일이다. 러시아 혁명의 원인을 아무리 많이 써도 거기에서 끝난다면 중간 점수를 받을 뿐일 것이다. 아마 시험관은 ‘지식은 충분한데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평할 것이다. 바로 이 과정에서 역사가의 해석이 들어간다.

즉 역사가는 많은 원인의 복합체를 취급하게 된다. 즉, 진정한 역사가라면 자기가 작성한 여러 원인의 목록을 앞에 놓고서, <그것을 정리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원인의 상호관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거기에 상하관계를 설정해야 하겠다. 혹은 "결국에 가서는""궁극적으로는" 어떤 원인과 어떤 종류의 원인을 최종 원인, 즉 모든 원인 중의 원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를 결정지어야 하겠다>는 직업적인 강박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주제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이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할 때 두 개의 매력적인 함정이 있다. 하나는 역사에의 필연, 다른 하나에는 역사에서의 우연이다. 이러한 함정이 나타난 내력은 칼 포버와 벌린 경이 헤겔과 마르크스의 결정론에 대해 비난을 한 것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난 5, 6년동안 그들의 저서가 널리 읽혀졌는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우연을 간과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정론이란 원인에 변화가 없는 한 사건에도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믿음인데, 이는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행동의 문제인 것이다. 카프카의 소설은 어떤 사건도 명백한 원인이 없다. 이로 인해 인간의 인격은 붕괴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격은 사건의 원인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고 이로 인해 행동 지침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원인을 찾는 것이 신에 대한 모독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우리는 행동에 대한 원인을 항상 찾는다. 예를 들어 스미스씨가 평소와는 다르게 우리의 용모나 성격에 대해 험담을 퍼부었다면 그것을 보고 인간의 의지가 자유롭다는 증거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그보다 스미스씨가 왜 그랬는지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역사가도 마찬가지다. 역사가도 보통 사람들처럼 인간의 행위에는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많은 역사가들이 과장된 표현을 쓸 때 불가피 했다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이보다 개연성이 높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인간에겐 자유의지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클레오파트라의 코는 역사는 우연의 연속이라고 보는 이론이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반했던 탓에 역사가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졌었을 지라도 이는 인과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남성이 매혹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며 원인 결과의 연쇄 작용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른바 역사의 우연성은 원인결과의 연속을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는 역사가의 선택과 정리에 의해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실이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정신은 관찰된 사실을 집어놓은 잡동사니 자루를 뒤져 관찰된 의미 있는 사실을 골라내고 서로 연결해서 하나의 틀로 만들어 내고 한편으로는 무의미한 것을 추려내어 지식이라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뜨개질을 완성하는 것이다. 즉 주관적이란 것이다. 예를 들어 존슨이 술을 많이 마시고 트럭을 몰고 가다가 담배를 사려고 길을 가던 로빈슨을 치었다. 이때 사고 원인을 로빈슨이 담배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를 볼 때 역사는 실재에 대한 단순한 지적인 태도가 아니라 인과적인 태도의 선택적 체계가 된다. 다수의 원인과 결과 속에서 의미 있는 원인과 결과를 빼내는 것이다. 로빈슨의 죽음의 원인이 담배를 좋아해서가 될 수는 있겠지만 이는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이기에 배재되어야 한다. 역사에서의 해석은 가치판단과 결합되어 있으며 인과관계는 해석과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역사는 전통의 계승과 더불어 시작되는 것이며 과거의 전통, 관습, 기록을 미래로 운반하는 것이다. 네덜란드 역사가 호이징가가 “역사적 사고란 언제나 목적론적인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역사가는 원인을 찾고 사실에 대한 해석을 해야 한다.


결국 역사란 역사적 의의라는 견지에서 행하여지는 선택과정이다. 역사가는 다수의 인과연쇄 가운데서 역사적으로 의의 있는 것들만을 빼내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 의의에 대한 기준이 되는 것은 자신의 합리적 설명과 해석의 원형 속에 인과연쇄를 맞추어 넣는 역사가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한 것은 미래 세대의 복지를 위한 것이었다. 훌륭한 역사가들은 미래라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역사가는 왜냐 라고 묻는 동시에 어디로 라고 묻는 법이다.

(5) 진보로서의 역사

당시 역사에 대한 견해는 ‘신비주의’와 ‘냉소주의’가 대중적인 역사관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는 ‘신비주의’처럼 역사 밖에서 찾는 것도 아니며 ‘냉소주의’처럼 무의미한 것도 아니라고 당시의 두 견해를 부정하였다.


아시아의 고대문명,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고전문명은 비역사적이었다. 그 당시의 저술가들은 대부분 과거에 대해서나 미래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밝은 미래에 대한 시적인 환상이 과거의 황금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환상의 형태가 된 것으로서, 역사의 과정을 자연의 과정과 동일시한 순환론적인 사고였다. 그 후 중세에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역사는 어떠한 의미와 목적이 있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그 역사는 목적에 도달함으로써 종말 할 것이라고 여겨 현세적인 성격을 잃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역사 그 자체가 변신론이 되어 버린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사고의 중심을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왔고, 미래관을 유대, 기독교적인 낙관적 성격으로 만들었다. 근대 계몽주의 시대의 합리주의자들은 비현실적이던 역사를 세속화시켰다. 따라서 역사는 인간세계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여 진보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진보할 것이라는 믿음은 오랫동안 깊게 믿어져 왔다. 하지만 서구의 쇠퇴로 그 가설은 논박 당했다. 시대가 진보하는지 쇠퇴하는지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이 물음에 앞서 진보라는 것이 지니는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진보는 흔히 진화와 혼동되어 왔으며, 진화가 생물학적인 유전에 기반하고 있는 데 반해 진보는 사회적인 획득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즉 진보는 사회적인 획득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며 진화는 생물학적 유전으로 인해 발생한다. 우리의 반만년 전의 조상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획득형질의 전승으로 여러 세대를 통해 사고의 유효성을 증대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서의 진보는 한 세대에 의해서 획득된 기술이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의 진보는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에서 끝을 맺는가, 역사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진보는 출발점이나 종점 따위를 갖고 있지 않다. 종점이란 역사의 목표가 실현되는 점이므로 이것은 역사가 다시 신학의 성격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진보라는 것을 계속되는 여러 시대의 요구사항과 조건에 의해서 각 시대만의 특정한 내용이 채워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때문에 진보의 목적은 앞으로 계속 펼쳐질 시대를 따라 한없이 먼 곳에 있는 어떤 것이며 그것을 향한 지표는 우리가 계속 전진해야만 시야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역사란 과연 끊임없는 전진의 연속일까? 여기서 우리는 과연 진보라는 것이 무엇이고, 현실을 박차고 보다 더 나은 곳으로 향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다.

(6) 넓어지는 지평선

역사는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자연적 과정(4계절의 순환이라든가, 인간의 일생)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거기에 인간이 의식적으로 관계되고, 또 인간이 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수한 사건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시작된다. 역사는 이성을 발휘하여 환경을 이해하고 작용해 온 인간의 투쟁이고 현대는 이 투쟁을 혁명적으로 확대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이를 테면 이성에 새로운 차원이 더해지고, 역사에도 새로운 차원이 더해져 오늘의 시대는 전례 없이 역사의식과 자기의식이 발달한 시대가 되었다. 자기의식의 발전은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는 인간을 사유와 관찰의 주체이자 동시에 객체로 보았다.


18세기에서 근대 세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헤겔과 마르크스가 등장한다. 헤겔은 역사적 변화와 인간의 자기의식의 발전 속에서 실재의 본질을 볼 수 있었던 최초의 철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으로 너무 소심했고, 또 말년에는 당시의 기성 질서에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의 형이상학적인 명제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는 실패했다. 실제적인 내용은 마르크스가 부여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세계가 합리적인 자연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마르크스는 역사란 객관적이고 경제적 법칙에 합치된 사건의 움직임이고, 이에 대응하여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상의 발전이며, 이에 따르는 계급투쟁이라는 형태의 실천인데, 이것이 혁명의 이론과 실천을 조화롭게 하고 통합한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이성에 새로운 차원을 보탠 또 한 사람의 위대한 현대 사상가로는 프로이트가 있다. 그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기보다 생물적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사회적 환경을 인간 자신에 의해 계속적인 창조와 변경의 과정에 있는 것보다는 역사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다루려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프로이트가 한 일은 인간 행위의 무의식적인 근원을 폭로함으로써 의식이나 합리적 탐구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이해의 폭을 넓혔다. 이것은 이성의 영역의 확대이며, 인간이 자신을, 따라서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지배하는 힘을 증대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혁명적이고 진보적인 성취를 의미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행동의 동기라고 주장하거나 믿는 것에 의해서 실제로 그들의 행동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낡은 환상의 관에 마지막 못을 박았고, 역사가들에게 자기 자신을, 역사에서의 자기 지위를, 자기의 주제와 시기의 선택, 사실의 선택과 해석을 이끌어온 동기를, 자신의 시각을 결정하고 있는 국가적, 사회적 배경을, 자신의 과거관을 형성하는 미래관 등을 음미하라고 권고하는 면에서 중요하다. 


이와 같은 위의 인물들을 통해 자기의식의 시대로의 변모 과정을 알 수 있는데 이로서 역사가는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만 한다. 20세기의 혁명적 변화는 경제학에서도 일어났다고 한다. 자유방임에서 계획으로, 무의식에서 자기의식으로, 객관적 경제 법칙에 대한 믿음에서 인간은 자기의 행위에 의해서 자기 자신의 경제적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저자는 이성의 확대라고 부른다. 이러한 진보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비난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저자는 두 가지 논점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먼저 역사 과정의 모든 혁신과 발명에는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이 함께 존재한다. 인쇄기술 발명이 그릇된 사상의 전파를 돕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고, 자동차의 출현으로 인해 빚어진 교통사고 사망자 명단을 보고 슬퍼하고, 또 일부 과학자들은 그것이 파괴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아니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원자력 개발의 방법과 수단을 발견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러나 일찍이 이러한 불평이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의 진행을 막는 역할을 한 적은 없으며,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것에는 그 교정책도 따르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측면은 세계의 변화하는 모습이다. 지난 400년 동안 영어 사용권 세계의 역사는 가장 막강했지만 현대에 동유럽이나 아시아의 넓은 지역으로 세계를 좌우하는 힘이 이동하고 있었고, 당시 영어 사용권 세계의 지식인들이 변화하고 있는 세계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를 낙관적으로 보며 그것은 계속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도-그것은 움직인다.”(Galileo의 말)

3. 역사에 대한 인식과 그 의미

과연 역사란 무엇이며,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 여러 역사학자들은 물론이고 관심 있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나름의 마침표를 찍어왔다. 어째서 역사란 우리에게 이토록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역사학에 대한 정의와 역할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과 기준에 대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더불어 이는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 과연 어떤 기준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인가 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즉 하나의 역사서에 담긴 역사적 사실과 해석이 얼마나 적절한 과정을 거쳐 쓰여졌는가에 대한 우리의 판단능력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앞서도 살펴봤듯이 이 책에서는 가장 먼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는다. 자자는 우리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때 우리는 스스로의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보다 넓은 범위의 질문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즉, 우리가 지금 역사라고 부르는 것에는 현재의 시대상이 담겨 있으며 이것은 역사학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일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있어 역사란 과연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 우리는 우선 역사가 다루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에서 다루어지는 것들, 즉 역사적 사실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과연 어떤 것들을 사실로 다루어야 하며 또 역사적인 사실에 포함시켜야 할까. 저자에 의하면 역사적 사실이란 단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을 기술하는 데 있어 그 정확성과 객관성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이 역사의 모든 것은 아니다. 역사가가 구체적인 사실들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평가했을 때 비로소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은 이미 초월적인 객관성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성격은 역사의 본질에 대한 판단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즉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 판단주체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모든 객관적인 역사를 배제시키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에 무게중심을 두는 역사관과 현재의 판단주체의 주관성에 무게중심을 두는 역사관 사이에서 어렵게 항해하는 그런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이다. 자신의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다. 자신의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를 도출할 수 있다.

 

 

 

 


 

SITE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