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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지난 2006년 프랑스 파리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딸 장금송의 연인은 ‘평양 카사노바’로 알려진 영화배우 최웅철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고위층 움직임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최웅철은 ‘곡절많은 운명’, ‘밀림이 설레인다’, ‘대홍단책임비서’, 7부작 드라마 ‘교정의 륜리’ 등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인기배우로 키가 크고 잘 생겨 평양여성들의 우상이었다.

배우시절 많은 여성들과 염문설을 뿌리고 다니며 ‘평양카사노바’로 불렸지만 평양연극영화대학 재학시절 사귄 같은 과의 여성과 약혼까지 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의 2인자 장성택의 딸 장금송이 최웅철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최웅철과 같은 과 여성의 약혼관계는 틀어진다. 장금송은 최웅철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러브레터를 보내고 영화촬영소에 찾아가 만나는 등 적극적인 구애를 했다. 결국 최웅철은 약혼녀와 파혼하고 금송과 사귀게 된다.

최웅철 약혼녀의 아버지가 노동당중앙위 선전선동부 과장이었지만 최웅철은 절대권력 김경희 집안의 딸 장금송을 선택한 것이다. 장금송은 나이가 10살이나 많은 최웅철의 자상함과 따뜻한 매너에 푹 빠져 만난지 1년만에 결혼상대라며 부모에게 소개 했다. 장성택과 김경희는 딸이 결혼상대라고 데려온 남자가 ‘평양카사노바’로 알려진 최웅철임을 알고 처음부터 반대했다고 한다. 또 뒷조사를 해본 결과 최웅철의 할아버지가 6·25전쟁시기 행불자로 처리된 ‘문제 있는 집안’임을 알고 둘이 만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금송은 부모의 만류에도 최웅철을 찾아다녔고 김경희는 둘을 떨구어놓기 위해 최웅철을 영화촬영소에서 쫓아내기도 하고 사람을 시켜 차를 몰고 가는 최웅철을 끌어내려 길거리에서 죽도록 때리기도 했다. 이에 장금송은 관저를 지키는 군인들을 동원해 최웅철을 때린 사람들을 찾아내 복수했다는 일화도 있다.

어떻게든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없다고 판단한 김경희는 금송을 강제로 프랑스에 보냈으나 자주 귀국해 김경희에게 최웅철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김경희도 장성택과 어렵사리 결혼했다. 장성택 집안이 상류층이 아니어서 김일성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딸의 의지를 꺾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 김경희는 최웅철과 결혼을 포기하지 않으면 평생 평양에 못 들어올 것이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최웅철을 다른 여성과 강제로 결혼시켰다. 최웅철이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금송은 충격을 받고 이를 비관해 술을 마신 뒤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29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금송의 사체는 그녀를 보살피던 북한인 운전기사와 가정부에 의해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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