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한 지 2년이 지난 현재 북한의 '공식 경제'는 아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지하경제'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식량과 의복 등 생필품을 스스로 구하기 위해 조성된 북한의 시장은 현재 전국에 공인된 것만 300개가 넘는다. 조봉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의 지하경제 규모는 최소 10억달러에서 최대 30억달러 규모로 공식 경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돈이면 뭐든지 가능"
북한 사회에는 "돈이면 뭐든지 된다"는 황금만능 풍조가 퍼지고 있다. 출세 코스인 노동당 입당은 농촌 출신은 미화 300달러, 공장·기업소 노동자나 군인은 500달러 정도를 당 간부에게 뇌물로 주면 된다. 대학 입학도 돈을 통한 부정입학이 가능하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정부 소식통은 "평양의대는 1만달러, 김일성대 법학·경제 등 인기 학부는 5000~1만달러, 김원균 평양음악대 등 예체능 계열은 1만~2만달러 선에서 거래된다"고 말했다. 해외 파견 근로를 위해서는 3000달러 정도가 필요하며 1년 체류 연장 시 추가로 1000달러씩 내야 한다.
범죄를 저질러도 돈으로 해결한다. 탈북자 B씨는 "최근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한국 영화를 보다 걸린 주민이 2년형을 받고 강원도 소재 교화소에 갔지만 돈을 내고 3일 만에 풀려났다"며 "교화소 간부들이 돈을 제일 잘 번다"고 했다. 한 소식통은 "한마디로 출생에서 사망까지 모든 게 돈으로 해결된다는 인식이 퍼졌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는 당·군 기득권층에까지 퍼졌다. 일부 군 간부는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돈을 받고 부하들을 동원해 채권 추심을 대행해주는 경우도 있다. 평북 신의주 출신으로 올 초 탈북한 A씨는 "전주(錢主)가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면 군관들에게 돈을 주고 병사들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군인들이 총을 들고 채무자 집에 들어가 돈을 받아내고, 돈이 없으면 돈 되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들고 나온다"고 했다. 그는 "군인들은 무지막지하기 때문에 해결사 역할을 잘해준다"고 말했다.
국경 지대에서는 탈북을 눈감아주거나 도와주는 일이 군인들의 주요 돈벌이다. 2011년 탈북한 박모씨는 "남포시에서 해안경비대에 북한 돈 500만원을 주고 바다로 나왔다"고 했다. 현재 미화 1달러는 북한 돈 약 7000원에 거래된다. 압록강과 두만강 등에서는 도강비가 미화 40달러 선이고 노약자들은 60달러를 주면 군인들이 업어서 건네준다고 한다.
◇탈북자 대부분 "북한서 장사 경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최근 2년간 탈북자 261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북한 체류 시 장사를 해본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30대의 92.3%, 40대의 88.2%, 50대의 71.9%가 "있다"고 답했다. 노동당원이었다는 사람 중에서도 68.4%가 장사 경험이 있다고 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다양한 형태로 시장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 전 평균 가구 수입은 북한 돈 10만원 미만(16.6%), 30만원 미만(31.7%), 50만원 미만(13.7%), 100만원 미만(13.2%) 등이라고 답했다. 같은 기간 이들이 국가로부터 지급받은 생활비는 월평균 3000~5000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수입은 대부분 시장을 통해 번 돈이었다.
돈벌이 수단으로는 주로 소규모 상점·식당 등을 운영하거나 의류·신발 등을 생산하는 가내수공업, 사설 과외와 개인 의료 등 서비스업이다. 농민들은 뙈기밭에서 콩과 옥수수 재배로 연 700㎏을 수확하고 닭 5마리, 개 1마리를 키우면 북한 돈으로 월 6~8만원 수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개인 소유가 금지된 차량이나 선박을 기관·기업소 명의로 등록해놓고 실제는 자신이 운영해 돈을 벌고 수익의 10~50%를 기관·기업소에 주는 일종의 지입(持入)제 운수업자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들은 밀수 등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또 컴퓨터나 휴대전화 수리도 한 번에 5~10달러 고소득을 올릴 수 있어 선호 직종이 되고 있다. 한 소식통은 "최근에는 장마당 상인들이 전화 배달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황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