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상봉 이틀째인 21일 가족들은 취재진과 당국자 없이 가족끼리 개별 상봉을 했다. 이날 오후 상봉 종료 시각이 다가오자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가족들은 "정들자 이별이라고…. 내일이면 또 못 본다니 기가 막힌다"며 안타까워했다.
◇"北 선산에 유골 뿌려달라"
구급차 간이침대에 누워 금강산까지 간 김섬경(91)씨는 북측에 두고 온 아들과 딸을 만나 "잘 살아줘서 고맙다"며 한없이 울었다. 김씨는 남측에서 함께 간 아들 진황씨에게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내가 죽거든 화장해서 통일되면 고향 선산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건강 악화로 2박3일간의 짧은 일정을 소화하지 못한 채 이날 오후 조기 귀환했다. 가족과 의료진이 결정을 내렸지만, 정작 본인은 이를 몰랐다고 한다.
아들 진황씨는 "지난 추석 때만 상봉했어도 이렇게 쇠약하지 않으셨을 텐데…"라며 "그땐 지팡이 짚고 걸으실 정도로 건강하셨는데 상봉이 무산되면서 상심이 크셨다"고 했다. 김씨가 구급차에 실려 막 금강산을 떠나려고 하자 북측의 딸이 울먹이며 "아버지, 돌아가시지 말고 통일되면 만나요"라고 했다.
◇"통일될 때까지만 잘 기다려줘"
10일 척추 수술을 받고 구급차로 금강산에 도착해 68년 전 헤어진 북측 여동생을 만난 홍신자(여·84)씨는 "평생 한(恨)을 풀었지만, 헤어지려니 너무 슬프다. 잘 산다고는 하지만 동생을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고 간청했다. 홍씨도 이날 건강상의 이유로 조기 귀환했다. 북측의 동생 영옥(82)씨는 헤어지기 전 구급차에서 "통일될 때까지만 잘 기다려줘. 언니, 나 기쁜 마음으로 간다. 아무 걱정하지 마. 언니 나 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렇게 만났으니까 원 없지"라고 했다.
◇영정 사진으로 만난 母女
60여년 전 북에 두고 온 딸을 그리워하다 상봉 직전인 지난 5일 숨을 거둔 고(故) 서정숙(90)씨는 영정 사진의 모습으로 딸을 만났다. 서씨 대신 상봉 행사에 참가한 김용자(68)씨는 19일 어머니 영정 사진을 들고 "엄마, 생전에 그렇게 찾으시던 영실이한테 갑시다"라고 했다. 김씨는 북측 동생 영실(67)씨를 만나 "엄마, 얘가 영실이에요. 잘 보세요"라며 영정 사진을 내밀었다. 그는 "작년 9월에만 상봉했어도 직접 오셨을 텐데…"라며 흐느꼈다.
김씨는 "상봉 전에는 잠도 잘 못 잤는데 영정 사진을 동생에게 전해 준 뒤엔 잘 잤다"면서 "어머니가 같이 오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생전에 이산가족 상봉에서 딸을 만나면 주려고 사두었던 내복과 화장품 등을 동생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일부 북측 가족들은 개별 상봉 때도 계속 체제 선전성 발언을 했다. 북측 남동생과 조카를 만난 최돈명(여·79)씨는 "조카가 내 옷을 만지면서 '이거 정부에서 준 거냐. 우리는 수령님이 이런 거 다 챙겨주셨다'면서 체제 선전만 하는데 듣고 있자니 지치더라"고 했다.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는 여전
이번 상봉에는 납북자 5명이 포함됐지만 국군포로는 한 명도 없었다. 정부는 북한에 500여명의 국군포로가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생사가 확인된 국군포로는 41명뿐이다. 그중 17명만이 남측 가족과 상봉했다.
북한에 억류돼 돌아오지 못한 전후 납북자도 516명에 달한다.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한 전후 납북자는 이번에 형제를 만난 최영철씨와 박양수씨를 포함해 18명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줄곧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까지 '국군포로·납북자'란 표현 대신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이란 애매한 표현을 쓰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그간 남북 간의 정치적 관계에 따라 개최와 취소가 반복됐다. 이번 상봉을 계기로 상봉을 정례화하고 생사확인·서신교환·화상상봉 등의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북에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고 대상자를 남한으로 데려오는 '프라이 카우프'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한편 한 북측 관계자는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땄느냐"고 물은 뒤 "은메달을 땄다"고 하자 "은메달도 대단한 것"이라고 했다. 또 "남한 정부는 언론을 왜 잘 다스리지 못하느냐"며 남측 언론에 불만도 드러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