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2018년도 신년사를 육성으로 1일 오전 9시 30분(평양시 기준 9시) 조선중앙TV를 통해 진행했다. 김정은은 2013년부터 6년째 육성 신년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뿔테 안경에 정장 차림으로 연단에 섰다. 작년까지 검정 계열의 인민복과 정장을 입어 왔던 것과는 달리 이날은 밝은 회색 정장에 회색 넥타이를 맸다. 김정은이 이번 신년사 발표에 있어 이미지 연출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입은 정장은 김일성이 1960년대 내각 수상 시절 입었던 정장과 비슷하다. 북한주민들에게 풍요로운 시절로 기억되는 1960년대 향수를 자극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또 기존 어두운 색의 인민복에서 부드러운 톤의 회색 양복으로 바뀐 것은 신년사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평화 이미지와 핵 무력 완성 이후의 여유로움을 연출하기 위한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올해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은 ‘핵무력 완성’을 명분 삼아 이례적으로 남북관계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며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통해 국면전환과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 있는 핵강국’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전체 구조는 ‘핵무력 완성’ 이후 갖게 된 ‘불가역적’인 전쟁억제력과 ‘전략국가’의 지위를 토대로 경제성과를 올리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남북 간 군사적 긴장해소 및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메시지로 구성되었다. 주목할 부분은 북한의 정권 창건 70주년과 한국의 평창올림픽이라는 남북한 ‘대사’를 명분 삼아 국면전환 의지를 강력하게 밝힌 부분이다. 평창올림픽을 활용한 일종의 ‘평화 마케팅’을 통해 대화모드로 ‘국면전환’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김정은은 이날 신년사에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이와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다”고 했다. 미국에는 ‘핵 위협’ 강도를 높이고, 한국에는 ‘대화·협력’이란 이중적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한·미를 갈라치는 분리 대응 전략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김정은의 평창 올림픽 관련 메시지에 “환영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정은은 이날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된 신년사 육성 연설에서 “지난해 우리가 쟁취한 특출한 성과는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보지 못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했다. 2018년 각 분야의 목표를 언급하며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켓(탄도미사일)들을 대량 생산해 실전 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남·북 관계와 관련 김정은은 “평창 올림픽은 민족 위상의 좋은 계기”라며 “동결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해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의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남조선 당국은 미국의 무모한 북침 핵전쟁 책동에 가담해 정세 격화를 부추길 것이 아니라 긴장 완화를 위한 우리의 성의 있는 노력에 화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또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 연습을 그만둬야 하며 미국의 핵장비들과 침략 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의 행위들을 걷어치워야 한다”고 했다. 이는 한·미군사훈련 중단 등을 요구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평창과 남북 대화에 매달리는 약점을 최대한 활용해 한·미 동맹을 흔드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올해가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 있는 해"라고 했다.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9월 9일)이자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는 해라는 것이다.
특히 평창올림픽에 대해선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덕담'까지 했다. 이어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동시에 김정은은 "남조선 당국은 미국의 무모한 북침 핵전쟁 책동에 가담하지 말라"고 했다.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 연습' 중단, '미국의 핵장비·침략 무력'을 끌어들이는 행위 중단도 요구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올림픽 참가 명분으로 한·미 군사훈련과 미 전략 자산의 순환 배치 중단을 압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또 "북한은 평창올림픽 참가가 남측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 보상으로 대북 경제 제재 해제, 인도적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북한의 군사·경제적 요구는 모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압박 기조를 거스르는 것이다. 한·미 갈등은 물론 남남(南南) 갈등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통상 3월에 시작하는 한·미 연합 키리졸브·독수리 연습은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으로 평창올림픽 기간을 피해 4월 말에 시작될 전망이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동맹국의 요청이니 연기에 응했지만 서운한 상태"라고 했다. 한국이 추가로 연합 훈련이나 전략 자산 전개에 소극적으로 나오면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연합 훈련 연기로는 부족하고 축소·중단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북한연구소는 "북이 핵과 평화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공을 넘김으로써 한·미 간 갈등 유발 전략을 펴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연초 '대남 평화 공세'는 일종의 '연례행사'라 과도한 기대를 갖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은 연초에 도발을 거른 적이 거의 없고, 설사 회담이 열려도 '근본 문제 미해결' 등 갖은 핑계로 대화를 깬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김정은은 2015년 신년사에서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최고위급 회담(정상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해 북한은 목함지뢰·포격 도발을 일으켰다. 2016년 신년사에선 "누구와도 마주 앉아 민족 문제, 통일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닷새 뒤 4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김정은은 이번 신년사에서 "핵탄두들과 탄도로켓(미사일)들을 대량생산해 실전 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 시험 발사(고각)와 실전 발사(정각)를 거친 화성 계열의 중·장거리 미사일들을 본격 양산·배치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이날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회담을 제안했다. 실무 회담이 열리면 선수·대표단 파견뿐 아니라 응원단 문제도 논의될 수 있다.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김일국 북한올림픽위원장 등이 실무 회담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장 위원은 지난 6월 전북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평창올림픽 참가를 제안 받았다. 김정은이 극적 효과를 노리기 위해 파격 인사를 보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은 2014년 10월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때도 북한 내 ‘실세 3인방’이었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을 깜짝 파견했었다. 북측은 이들 방문 계획을 판문점 연락 채널이 아니라 인천에 머물던 북측 관계자를 통해 구두로 전달했다. 이들은 김정은 전용기를 타고 인천에 도착해 12시간 남짓 머물다 돌아갔다. 하지만 북한이 평창 참가를 대가로 한·미 연합훈련과 미 전략자산 전개 중단, 대북 제재 중단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평창을 자기들 선전장으로 활용하면서 자기들 요구 조건을 관철하려 할 거란 얘기다. 위장 평화 공세의 장으로 쓸 수도 있다.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황병서·최룡해 등은 당시 우리 당국자들과 접촉해 남북 간 초(超)고위급 접촉 재개에 합의했다. 남북 간 대화 분위기가 고조되는 듯했지만, 북한은 곧바로 서해 NLL 교전·DMZ 인근 대북 전단 사격 등 도발을 시도했다. 20여일 뒤 북한은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를 문제 삼아 고위급 접촉을 무산시켰다. 다만 이번엔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박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고, 올림픽도 열리는 만큼 선수·대표단 파견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거란 관측이 나온다.
소수 선수·응원단을 파견해 김정은 체제를 선전하고 대북 제재 기조를 약화시키려 할 거란 얘기다. 이날 김정은의 연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노동당’ 49회, ‘인민’ 36회, ‘경제’ 21회였다. 특히 ‘핵’은 22회로 역대 김정은 신년사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됐다. 이 밖에도 ‘미국’(11회), ‘평화’(10회)는 지난해에 비해 2배 증가했다. 김정은은 신년사 첫머리에서 주민과 군 장병들에게 "충심으로 되는 감사와 새해 인사를 삼가 드린다"고 인사말을 건넨 뒤 올해도 고개 숙여 인사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지난해 신년사에서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고 했다. 북한 최고 지도자로서는 극히 이례적으로 자책성 발언을 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는 인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에 우리의 위업은 필승불패라는 확신으로 나는 마음이 든든하다”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향후 북한은 올림픽 참가 및 군사적 충돌 방지를 위한 남북한 당국 회담 및 군사회담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한·미가 여기에 호응해 한미연합훈련을 연기·축소할 경우 2018년 상반기는 유화국면으로 빠르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미북관계에 대한 직접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당분간 남북관계를 통해 대북 압박·제재 국면을 관리하는 데 일차적 목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창올림픽이 국면 관리의 좋은 호재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신년사에서 미국에 대한 비난을 적절한 수준으로 자제한 것은 향후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암묵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8년 상반기 평창올림픽 참가와 성공적 개최를 명분으로 도발을 자제하면서 북·미 대화의 조건을 자연스럽게 충족시킨 후 중·하반기 북·미 당국 간 대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은 ‘세계가 공인하는 전략국가’의 위상에 맞게 ‘국가 창건 70주년’을 성대히 기념할 것을 강조했다. 이에 맞춰 2018년 혁명적 구호를 “혁명적인 총공세로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자”로 제시했다. 핵무력 건설의 역사적 승리를 모든 경제부문으로 확산시키는 ‘혁명적 총공세’를 벌여 나갈 것을 주문하는 구호이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의 3번째 해인 올해에 경제 전반에 활성화의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정권 수립 70주년이니만큼 기존의 정치·군사적인 성과보다는 구체적인 경제성과가 무엇보다 절박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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