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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의 심복으로 알려진 문경덕 전 평양시당 책임비서가 평안북도 도당위원장에 새로 임명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일 김정은이 평북 신도군 주민과 신의주화장품공장 종업원들에게 선물을 보낸 소식을 전하며 선물 전달식에 ‘평안북도 당위원회 위원장 문경덕 동지’가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문경덕이 북한 매체에 등장한 것은 지난해 5월 이후 1년 여만에 처음이다. 문경덕은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천하의 만고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한 직후인 2014년 1월 북한 매체에서 사라졌다. 장성택 인맥으로 몰려 숙청당해 재기가 어려울 것으로 관측됐지만 다시 기용된 것이다. 문경덕은 조선중앙TV가 지난해 5월 22일 방영한 기록영화 ‘국산화의 기치를 들고’에 등장했다. 북·중 경협에 대비하고 정권 수립 70주년(9월 9일)을 앞두고 경제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친중 성향의 문경덕을 재기용한 것으로 보인다.

1957년생인 문경덕은 1980~90년대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 간부 시절 노동당 청년사업부를 관장하던 장성택과 인연을 맺은 뒤 경력의 대부분을 장성택과 함께했다. 2002년 장성택과 함께 경제시찰단 일원으로 한국을 다녀갔고, 2009년 장성택이 공안기관을 총괄하는 당 행정부장이 되자 행정부 부부장이 됐다. 3대 세습 막바지였던 2010년 장성택이 권력을 확대하자 문경덕도 최연소 당 비서(당시 53세)와 평양시당 책임비서에 기용되며 승승장구했다. 잘나갈 때뿐 아니라 장성택이 2004년 실각했다가 2006년 복귀할 때도 비슷한 길을 걷는 등 부침을 함께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장성택 아바타’로 불리던 문경덕이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한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반응이다. 장성택을 보좌하던 당 행정부의 리룡하 제1부부장, 장수길 부부장이 공개 처형을 당하는 등 ‘장성택 인맥’으로 분류돼 목숨을 잃거나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인사가 수백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권력 2인자’ 최룡해 당 부위원장과의 인연이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룡해 역시 ‘범(汎)장성택 인맥’으로 분류되지만 ‘김일성의 빨치산 전우’이자 개국공신인 부친(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후광으로 숙청 회오리를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의 가신으로 있다가 1997년 옥사한 문경덕의 부친 문성술 전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배경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체제위기 극복을 위해 심화조 사건을 만들어 많은 당 관료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처형했던 김정일은 사건 종류 이후 문성술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문경덕은 아버지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출세가도를 달렸었다.

김정은이 문경덕에게 평북도당 위원장이란 중책을 맡긴 데엔 복합적 요인들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전방위 대북 제재의 직격탄을 맞은 평안북도의 재건을 위해 ‘중국통 구원투수’를 등판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북 소식통은 “장성택은 북한 친중파의 거두였고, 문경덕은 그의 최측근이었다”며 “북·중 경협 활성화를 통해 평북의 인민경제를 개선하겠다는 계산이 엿보인다”고 했다.

문경덕은 2010년 10월 조선노동당 친선대표단장 자격으로 시·도지사 전원을 데리고 중국 각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숙청 후 재등용을 통해 충성심을 유도하는 것은 김씨 일가의 오랜 통치 기법”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문경덕의 복권을 통해 북한 고위층에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면 과오가 있더라도 등용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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