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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20∼22일 금강산에서 1회차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열렸다. 남측 상봉단 인원 89명과 이들의 동행가족·지원 인원·취재진 등을 포함해 모두 560여 명이 방북했다. 이산상봉 행사는 지난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 만에 열렸다. 남측 이산가족들은 2박 3일 간 금강산에 체류하며 북측 가족과 모두 6차례, 12시간의 상봉 기회를 가졌다.

방북 첫날인 20일 오후 단체상봉이 열렸다. 20일 오후 3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금강산호텔 상봉장. 백발의 이금섬(92) 할머니가 주위를 살피며 걸어들어오다 “상철아~”라고 외쳤다. 북한에 살고 있는 아들 리상철(71)씨가 일어나 노모의 품에 안겼다. 65년 만에 만난 모자(母子)는 부둥켜안고 오열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6·25전쟁 때 가족들과 피란길에 올라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 남편과 아들 상철씨와 생이별했다고 한다.

상철씨는 울먹이며 북측의 가족사진을 꺼냈다. “아버지 모습입니다, 어머니.” 이 할머니는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채 가족사진을 보며 “애들은 몇이나 뒀니. 아들은 있니”라고 물었다. 행사장에서 ‘상봉이 곧 마무리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상철씨는 “벌써 끝났다고?”라며 아쉬워했다. 이날 오후 2시간 동안 이뤄진 단체상봉에는 남측에서 상봉단 89명과 동반가족 108명 등 197명이, 북측에서는 185명의 가족이 참석했다. 상봉장 여기저기서 가족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감격의 재회를 했다.

유관식(89) 할아버지는 6·25 때 헤어진 아내가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당시 아내 배 속에 있던 딸 유연옥(67)씨는 초로(初老)의 할머니가 돼 아버지 앞에 섰다. 연옥씨가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과 다른 형제 자매들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자 유관식씨는 눈물을 애써 억눌렀다. 평양 인근에서 살았다는 유씨는 1950년 10월 국군이 평양에 입성하자 치안대를 조직해 협력했다. 그러다 12월 중공군이 내려오자 “1주일 만 피란 갔다 오겠다”며 집을 나선 뒤 아내를 다시 보지 못했다.

99세의 한신자씨는 이날 북측의 두 딸 김경실(72)·경영(71)씨를 만났다. 함경남도 흥남 출신인 한씨의 가족은 1·4 후퇴 때 헤어졌다. 테이블에서 기다리던 두 딸은 어머니가 다가오자 일어나서 허리를 90도 숙여 인사하며 울었다. 한씨도 “아이고” 하며 통곡했다. 백내장이 있지만 두 딸을 한눈에 알아봤다고 했다. 세 모녀는 서로의 볼을 비비며 두 손을 꼭 잡았다. 황우석(89)씨는 3살 때 헤어진 북측 딸 황영숙(71)씨의 손을 잡고 “영숙이야?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황해도 연백 출신인 황씨는 1·4후퇴 때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혼자 배를 타고 남쪽에 내려왔다. 그동안 북쪽에 남아 있던 아내와 세 명의 여동생은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남측 상봉단 최고령자인 백성규(101)씨는 이번에 북측 며느리 김명순(71)씨와 손녀 배영옥(48)씨를 만났다. 백씨가 북측에 남겨둔 남동생 둘과 여동생은 이미 세상을 떠났나. 백씨는 이번 상봉을 위해 여름·겨울옷과 내의, 신발 30켤레 등을 선물로 준비했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북측 가족들의 체제선전 때문에 어색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남측 형님 차제근(84)씨를 만난 북측 동생 차제훈(76)씨는 “빨리 통일이 와야지”라는 형의 말에 “미국 놈들을 내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형이 “6·25가 난 것은 김일성이 내려와서 그렇다”고 하자 동생은 “그건 거짓말이라우. 6·25는 미국 놈들이 전쟁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남측 고모 주정례(86)씨를 만난 북측 조카 주영애(52)씨는 김일성 표창장을 보여주면서 자랑했다. 남측 지원요원이 “테이블 아래로 내리는 게 어떠냐”고 하자 주씨는 “최고존엄을 어떻게 내릴 수가 있나”라고 했다.

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는 전시 납북자 5명과 국군 포로 1명의 남북 가족도 극적으로 상봉했다. 납북 당사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남은 가족은 고인(故人)을 떠올리며 함께 눈물 흘렸다. 최기호(83)씨는 1·4 후퇴 당시 납북된 세 살 위 맏형 최영호씨의 자녀들을 만났다. 북측 조카 최선옥(56)·광옥(53)씨가 2002년 세상을 떠난 형님의 사진을 꺼내 보이자, 최씨는 손수건을 눈에 갖다 댄 채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보물이 하나 생겼다”며 사진 속 형의 얼굴을 계속 쓰다듬었다.

최씨는 방북 직전 “어머님이 끼니마다 형의 밥을 상에 올리고 ‘밥공기에 물이 맺히면 네 형은 살아있는 것’이라고 하셨다”며 “형님 사진이라도 꼭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그는 조카들이 가져온 가족사진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연신 “어떻게 살았느냐” “어찌 돌아가셨느냐”고 물었다. “내가 형하고 많이 싸우고 장난도 많이 쳤다”고 하자, 선옥씨는 “그게 좋은 거죠. 우리 자식들도 그리 놀아요”라고 했다. 6·25 때 오빠와 동생, 남편까지 납북된 홍정순(95)씨도 조카 홍선희(74)씨, 림종선(57)씨와 상봉했다. 오빠와 동생은 이미 사망했고, 남편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전쟁 직전 얼굴을 봤던 여섯 살배기 조카 선희씨가 어느덧 머리 희끗한 70대 노인이 돼 있었다. “(조카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고 했던 홍씨는 1·4 후퇴 때 가족이 폐렴으로 숨진 얘기를 전해 듣고선 고개를 떨궜다.

곽호환(84)씨는 전시 납북된 형이 1981년 사망해 북측 조카 2명을 만났다. 이영부(74)씨는 자신이 열 살 때 납북된 아버지와 두 형 대신 북측 조카들과 상봉했다. 남편과 아들 둘을 기다리던 그의 어머니는 생활고로 1962년 30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북에 살던 두 형도 1981년, 2011년 사망했다. 이달영(82)씨는 북측 이복동생 리일영(48)·영희(48)씨를 만났다. 1952년 국군 포로로 잡혀간 아버지가 북에서 낳은 딸들이다. 2000년대 초 이산가족 상봉 때부터 찾았던 아버지는 1987년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동생들 선물로 겨울옷, 영양제를 준비했다”고 했다.

북한은 전시 납북자와 국군 포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2000년 11월 제2차 이산가족 상봉 때부터 ‘특수 이산가족’으로 이들의 상봉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우리 정부는 납북자·포로 400명의 생사를 북측에 의뢰해 133명이 확인됐고, 60가족이 만났다.

21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지원 나온 북측 인사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면서 우리 측 취재진에게 북한산 화장품 구매를 권유하기도 했다. 이날 한 북측 인사는 남측 취재진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며 “왜 떨어지고 있냐”고 물었다.

이어 “선생이 보기에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것 같냐. 이산 상봉하면 지지율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이에 우리 취재진이 “상봉이 긍정적 영향을 미치긴 하겠지만 지지율이 확 뛰지는 않을 것 같다”고 답하자 북측 인사는 “뭘 해야 지지율이 뛰나. 다시 지지율이 오를 것 같나. 언제 오를 것 같나”고 재차 물었다. 우리 취재진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곧 평양에 간다는데 뭐가 좀 잘 풀려야죠”라고 하자 북측 인사들은 “계단식으로 조금씩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올라가는 것처럼 그런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 나라도 있지 않냐”고 했다.

종전 선언 등에 대해 부정적인 미국을 우회적으로 거론한 것으로 해석됐다. 고위급 탈북민 A씨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게 되면 판문점 선언 이행 등 남북 경협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했다. 북측 인사들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한 북측 인사는 남측 취재진에게 “금강산 관광이 다시 열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고 했고, 다른 인사는 “금강산 지역에 중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금강산 관광이 언제쯤 재개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북측 인사들은 이날 ‘탈북 여종업원’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 북측 인사는 우리 취재진에게 “(이산) 상봉하고 여종업원 문제를 연계해서 뭐 그 문제 때문에 상봉이 안 된다 그런 말은 쑥 들어간 거 아니겠습니까”라며 “그 문제는 그냥 그렇게 조용히 지나간 거죠”라고 물었다. 북한은 그동안 관영 매체 등을 통해 수차례 “탈북 여종업원들을 송환하지 않으면 이산가족 상봉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고 해왔다. 이들은 이번 행사에 참석한 남측 취재진 규모가 30명으로 늘어난 것과 관련, “원래 이런 경우에는 (취재진을 늘리는 문제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데 원수님(김정은 국무위원장)께서 남측 편의를 최대한 보장해주라고 하셨다. 그래서 일이 잘됐다”고 했다.

이날 북측 인사들은 남측 취재진에게 “우리 ‘봄향기’ 살결물(스킨)은 세계적이다”라며 구매를 권하기도 했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전 10시 10분쯤부터 두 시간 동안 우리 측 상봉단의 숙소인 금강산 외금강 호텔의 각 객실에서 개별 상봉을 했다. 전날 단체 상봉 때와 달리 비공개로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개별 상봉을 진행하면서 서로 선물이나 사진, 서한 등을 교환했다. 북측 가족들은 각기 준비한 선물과 북측 당국에서 마련해 준 선물을 들고 객실로 들어갔다. 북측에서 준비한 선물 봉투에는 백두산 들쭉술·대평곡주 등 남측에도 이름이 알려진 술이 들어 있었다.

일부 북측 가족은 ‘개성고려인삼 화장품’이라고 쓰인 쇼핑백이나 장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항아리를 들고 있었다. 남북 이산 상봉 행사 마지막 날인 22일 남북 가족들은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에서 마지막 작별 상봉을 했다. 북측의 아들을 만나면 “너도 술 좋아하냐”고 묻겠다고 했던 이기순(91) 씨는 남측에서 가져온 소주를 물컵에 따라 아들 리강선(75)씨와 나눠 마셨다. 모자(母子)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마신 술이었다고 한다. 이금섬(92) 할머니는 북측 아들 이상철(71)씨의 얼굴을 만지면서 뭔가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었다. 집 주소와 전화번호, 가계도 등을 적거나 사진 촬영을 하는 가족도 있었다.

이종훈(89)씨의 북측 조카는 동요 ‘고향의 봄’을 선창했고 주변 가족들도 따라 불렀다. 문현숙(91) 할머니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 간 반지와 시계를 꺼내 북측의 두 여동생에게 채워줬다. 가족들은 “상봉이 모두 끝났습니다”라는 장내 방송이 나오자 다시 오열했다. 버스에 오른 뒤에도 남북 가족들은 버스 차창에 붙어 손을 흔들고 창문을 두드렸다. 한신자(99)씨의 북측 딸 김경실(72)씨와 경영(71)씨는 창문을 격하게 두드리며 “어머니, 어머니”를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씨는 울면서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창문을 두드리며 “울지 마라. 잘 있어라”고 말했다. 남측 상봉단을 태운 버스는 이날 오후 1시 28분쯤 금강산호텔에서 출발, 오후 3시 30분쯤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는 남측 이산가족 89명과 동반 가족 등 197명과 북측 가족 185명이 참여해 2박3일 동안 총 7회, 12시간의 만남을 가졌다. 한편 북측 이산가족 83명이 남측 가족을 만나는 2차 상봉행사는 금강산 관광지구 내에서 24~26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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