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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미국이 21일(현지 시각) 북한 관련 불법 환적 의심 선박과 해운사에 대한 독자 제재 등을 발표하자 북한이 22일 곧바로 개성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에서 철수했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제재 강화'와 '협상 중단 검토'로 맞서온 양측이 정면 충돌로 치달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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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이날 "북측이 오전 연락사무소 남북 대표 간 접촉을 통해 '북측 연락사무소는 상부 지시에 따라 철수한다'는 입장을 남측에 통보하고 연락사무소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연락사무소 철수는 작년 9월 14일 개소식을 연 지 189일 만이다. 북측은 다만 "남측 사무소의 잔류는 상관하지 않겠다"면서 "실무적 문제는 차후 통지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미국뿐 아니라 '중재자'를 자처했던 우리 정부에까지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시험 유예) 중단'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미국은 이날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첫 대북 독자 제재를 발표하며 '최대 압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미 재무부는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혐의로 중국 해운사 '다롄 하이보 국제화물', '랴오닝 단싱 국제운송'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또 북한의 불법 해상 거래와 관련한 주의보를 발령하면서 '루니스(LUNIS)'라는 이름의 한국 선박도 제재 경고 리스트에 올렸다. 이 리스트에 한국 선박이 포함된 것은 처음이다. 최근 대북 제재·압박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한국과 중국을 향해 미국이 동시에 경고 메시지를 꺼내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재무부는 이날 북한과 선박 간 정제유·석탄 불법 환적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각국 선박 95척 명단을 발표했다. 이 선박들이 머문 기항지에는 부산과 여수, 광양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정부는 이날 "북측의 연락사무소 철수 결정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북측이 조속히 복귀해 남북 간 합의대로 연락사무소가 정상 운영되길 바란다"고 했다. 청와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과 이견에다 북한의 외면으로 한국의 '중재자 입지'는 사실상 사라졌다"며 "향후 한반도 정세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22일 개성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인원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킨 것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의 강경 기조에 대한 불만 표시인 동시에 한국 정부에 북한 편을 들라는 노골적 압박으로 해석된다. 4·27 판문점 합의에 따라 작년 9월 문을 연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운영이 사실상 중단됨으로써 남북 관계도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미국의 양해를 얻어 대북 제재 면제 승인을 받은 이산가족 화상 상봉 등 남북 협력 사업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北, 남한에 "미국 눈치 보지 말라"

북한은 이날 공동 연락사무소 인원 철수를 우리 정부에 통보하기 전에 '우리 민족끼리' '메아리' 등 대남·대외 선전 매체를 통해 "(한국 정부는) 푼수에 맞지 않는 속내, 주견과 소신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통일부가 "대북 제재 '틀 안'에서 남북 협력을 추진하고, 남북 대화로 미·북 대화를 견인하겠다"고 청와대에 신년 업무를 보고한 내용을 겨냥했다.


북 매체는 통일부를 향해 "북남 선언에 대한 외면이자 미국과 보수 세력의 압력에 비위를 맞추는 비굴한 처사"라고 했다. "말로는 북남 선언들의 이행을 떠들면서도 실지로는 미국 상전의 눈치만 살피며 북남 관계의 근본적 개선을 위한 아무런 실천적 조치들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한국이 미국 눈치를 보지 말고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 경협에 속도를 내라는 '최대 압박'의 메시지"라고 했다.


북한이 최근 교착 국면에 대한 불만을 남한에 표출할 것이란 전조(前兆)는 일찌감치 감지됐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15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라고 했다. 이날 북 매체는 "미국의 승인과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조선 당국이 어떻게 무슨 힘으로 중재자 역할,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당사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그 주장을 이어갔다.


북한의 연락사무소 인원 철수가 군부 등 내부 강경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앞서 지난 15일 최선희 부상은 '군부가 핵 포기 절대 안 된다는 청원을 김정은 위원장한테 수천 건 보냈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교 소식통은 "비핵화 협상에 대한 군부 반발과 하노이 협상 결렬에 따른 내부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라고 했다.


◇北 '도발'할까… 남한 인력 잔류 용인, 대화 길은 열어

이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를 다음 달 11일 평양에서 개최한다고 보도했다. 연락사무소 인력 철수 이후 북한의 '다음 움직임'에 대한 김정은의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1차장을 지낸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미·북 회담 결렬 이후 처음 나오는 김정은 육성이 향후 비핵화 협상의 중대 기로가 될 것"이라며 "미국에 강력한 경고를 하면서 현재 대미(對美) 관계는 유지할 수 없다는 선언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간 북한은 미·북 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남북 관계를 '희생양' 삼아 대미 압박에 나서왔다. 일각에선 북한이 '제재 해제' 문제가 단시간 내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인공위성 발사체를 빙자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지금처럼 미국의 압박 기조가 유지될 경우 도발이라는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도 있다"며 "그러나 일단은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나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까지는 한·미·중·러 등 국제사회의 반응을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이 "남측 사무소의 잔류는 상관하지 않겠다. 실무적 문제는 차후에 통지하겠다"고 한 것은 남북 간 대화의 길은 열어놓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국정원-통전부' 라인 등 비공식 채널은 여전히 가능한 상태"라며 "북한 의중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북한과 물밑 접촉을 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우리 측 인력이 연락사무소에 계속 남아 있어야 시설 내 전기·수도 등이 계속 가동될 수 있다는 현실적 측면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가동용으로 생산·공급되는 전기·수도 일부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는 4·27 판문점 선언의 합의 사항이다. 작년 9월 14일 개소식을 열고 정식 가동을 시작했다. 각각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인 사무소 청사(면적 4463㎡)와 직원 숙소(1174㎡)가 주 건물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7~9월 연락사무소 개·보수에 남북협력기금 총 97억8000만원을 투입했다. 모든 비용을 남측이 전적으로 부담했다. 사무소 청사에 33억9000만원, 직원 숙소에 21억5000만원을 들였고 식당 등 편의 시설(15억4000만원), 임시 사무소(8억7000만원), 정·배수장 등 지원 시설(16억 6000만원) 개보수에 40억원 넘게 들어갔다. 가동 후 작년 9~12월 운영비로 34억7300만원을 썼고 올해 운영비는 61억6200만원으로 책정됐다. 연락사무소에 쓰이는 전기는 남측에서 배전 방식으로 공급되고 있다. 수도는 전기 공급에 따라 재가동된 개성공단 내 정수장에서 공급되는데 일부는 개성 주민들도 이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락사무소에는 우리 측 인원 20여명이 상시 근무한다. 월요일에 개성으로 출근해 개성의 숙소에서 머물다 금요일에 서울로 퇴근하는 식이다. 북측에서도 20명 내외의 인력이 개성과 평양을 오가며 근무해왔다. 하지만 통일부에 따르면 북측 소장인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황충성·김광성 소장 대리는 '내부 사정'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자리를 비웠다.


작년 9월 개소 이후 천해성 차관과 전종수 간의 소장 회의는 몇 번 이뤄지지 않았다. 올 들어선 지난달 1일 한 번뿐이었다. '개점휴업' 상태였던 셈이다. 북한이 철수를 통보한 이날도 연락사무소에는 우리 측 인력 23명과 지원 시설 관계자 46명 등 모두 69명이 체류했다. 금요일인 관계로 대부분의 인원은 이날 서울로 입경하고 주말엔 연락사무소 인원 9명과 지원 시설 관계자 등 총 25명이 개성에서 근무한다.


우리 정부는 22일 북한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돌연 철수로 당혹감에 휩싸였다. 최근 대북 제재 완화 문제를 놓고 미국과 마찰을 빚어온 가운데 북한까지 등을 돌리면서 우리 정부의 '중재자·촉진자론' 자체가 폐기 위기에 놓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한·미 공조 균열 우려에도 북한을 의식해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를 주장한 우리 정부로선 '출구가 안 보이는 미로'에 빠진 격"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직후 '남북 경협을 통해 미·북 대화를 촉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미 백악관·국무부를 중심으로 "한국이 너무 앞서 나간다"는 비판이 계속 불거져도 청와대는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를 소집해 남북 협력 사업 추진 동향을 점검했다. 하지만 남북의 접촉 창구가 사라지면서 우리 정부의 구상이 좌초될 가능성이 커졌고, 당장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 등 다른 협력 사업들도 차례로 차질을 빚게 됐다. 9·19 군사합의 이행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북한과의 연락 채널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우리 정부의 대미(對美) 외교도 더 큰 위기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재'를 요청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에 가까운 '굿 이너프 딜(괜찮은 거래)'이란 개념까지 꺼내 들었다. 하지만 한국을 향해서도 불만을 표출한 북한이 계속 대화를 거부할 경우, 미측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현 상황이 장기화되면 우리 정부의 촉진자 역할이 불가능해진다"며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북한 설득에 '올인'할 경우엔 한·미 공조가 더 큰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이날 북측의 철수 통보 직전까지 움직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북한은 이날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연락사무소에 도착한 지 15분 만인 오전 9시 15분쯤 돌연 철수를 통보했다. 천 차관은 "아침에 별다른 특별한 상황은 없었다"고 했다. 북측의 철수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구 행사에 동행한 일부 참모진은 서둘러 귀경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공식 입장을 묻는 기자단의 질문에 "청와대의 별도 입장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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