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은 꽃’인가, 고난에 지쳐 시든 풀섶인가?
11월 16일은 북한 ‘어머니 날’이다. 한국에 부모님과 노인을 공경하는 ‘어버이 날’이 있다면 북한에는 ‘어머니 날’이 있다.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제정된 ‘어머니 날’은 올해로 11번째를 맞이한다. 3.8국제부녀절에 이어 ‘어머니 날’까지 제정하면서 북한에는 여성을 위한 두 개의 명절이 있는 셈이 된다. 표면적으론 북한이 여성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북한에서 여성의 정치적 지위는 미약한데 반해, 경제난 속에서 가정의 생계를 전담하거나 건설현장에 동원되는 등 무한 책임과 헌신을 강요당하고 있다. 북한 여성들이 어머니 날을 ‘눈물의 날’로 부르고 여성을 사회의 ‘최하층 노예’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2년 11월 16일 ‘어머니의 날’을 맞으며 북한 여성들이 꽃 매대에서 꽃을 구입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TV)
북한이 어머니 날을 제정하는 등 여성과 관련된 기념일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가? 어머니날은 2012년부터 공식적인 기념일이 됐기 때문에 김정은의 여성 우대 정책을 선전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국제부녀절이나 어머니 날이면 북한 여성들의 행복상을 부각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 여성의 인권 수준이 취약하다는 외부의 비판을 불식하고, 자본주의 나라 여성들이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다는 식의 반(反) 자본주의 선전을 하고 있다.
또 장마당에서 생계활동을 하며 조직과 통제에서 이탈한 여성들을 통제 영역으로 끌어들여 공적 기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여성을 우대하는 모습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를 막으려는데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는 지난 3월 개편한 ‘월드 팩트북’에서 북한의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북한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2022년 1.9명보다 0.01명 줄어든 1.89명으로 세계 126위로 나타났다.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를 뜻하는 조(粗)출생율은 지난해보다 0.15명 감소한 14.06명으로 세계 120위로 하위권이다.

2023년 11월 8일 북한 노동신문은 평양시 아파트 건설에 동원된 여성건설자들의 모습을 보도했다. 이들의 인원은 수백명에 달하며 20개 작업반으로 구성돼 활동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이 때문에 북한은 다자녀 여성에게 ‘모성 영웅’ 칭호를 수여하며 출산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다만 북한 매체는 자녀 출산과 양육과 관련해 남성의 역할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데 이는 양성평등 의식이 여전히 뒤떨어져 있다는 방증이다.
북한의 헌법(77조)에서도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지위와 권리를 가진다’며 ‘남녀평등’을 강조하지만 북한 정치, 사회, 교육, 그리고 가정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통일부가 지난 3월 발간한 ‘2023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북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대학 진학률이 낮고, 입당, 승진, 직업 배치에서도 남성이 우선시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국비 유학생도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만 선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북한이 지난 2021년 1월에 개최한 제8차 노동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 행사 단체 사진에 여성은 극소수만 포착됐고 같은해 3월 열린 제1차 시·군당 책임비서 강습회 단체 사진에는 여성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도 상당히 심각했다. 한 북한이탈주민은 "남편이 술만 마시면 때려 한번 신고한 적이 있는데 처벌규정이 없다면서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돌아가 집안에서 해결하라'고 했다"며 "북한에서는 남자가 여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가정이 많은데 대략 70~80%는 되는 것 같다"고 증언했다.
학교·군대·돌격대·구금시설 등에서는 성폭력이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특히 군대 내에서는 상급자 또는 동료군인에 의한 성범죄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증언자는 "남성 상관에 의한 여군 성폭행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 여군들이 거부할 경우 어렵고 고된 일을 해야 하는 등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간부들의 성적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북한의 여성들은 당의 지시에 따라 건설현장으로 투입되어 고된 중노동에 일상을 보낸다. 지난 8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새로운 평양번영기에 뚜렷한 자욱을 새겨가는 여성 건설자집단’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 건설에 여성 수백명으로 구성된 20개 작업반이 활동하고 있다. 여성 건설자들은 은행, 복지 관련 업무 종사자, 미장공 출신, 당원, 청년동맹원, 직맹원, 처녀와 중년여성까지 다양하게 구성됐다. 김정은 집권 시기 새로 지어진 평양의 새 아파트에 입주한 가정 주부들도 포함됐다.
신문은 여성들이 김정은 위원장과 노동당의 배려에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자원해서 평양시 건설현장으로 달려나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7월 30일 ‘남녀평등권법령발포’의 날에 맞춰 여성건설대를 조직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 매체의 주장과 달리 여성들은 평양시 건설현장에 부족한 인력 보충을 위해 당국에 의해 강제로 동원됐다는 것이 대다 수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여성들은 평양시 아파트 건설장에서 철근가공과 미장, 도장, 건축장식 등 남자들과 같이 험한 건설작업에 동원됐다. 평양 출신으로 2020년 탈북한 이시원(가명)씨는 “평양시 건설현장에 동원된 여성들이 시멘트와 자갈, 모래를 섞는 콘크리트 몰탈 작업, 맞들이로 각종 건설자재를 나르는 작업을 한다”며 “건설현장에서 고된 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남편과 아이들의 밥을 짓고 빨래를 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여성은 혁명의 한 쪽 수레바퀴’로 지칭하는 등 양성평등을 강조하고, 장마당 활성화로 여성의 활발한 경제활동이 이뤄지면서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상승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정권 전반에 구축된 남성 중심의 권력 체계 및 강력한 ‘상명하복’식 관료제 등 여성의 인권을 저해하는 사회 구조적인 근본 요인은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북한은 여성을 꽃이라면서도 여성의 외모, 옷, 미용, 화장 방식까지 통제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에서 여성이 겪고 있는 인권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