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너 마저” 한국~쿠바 수교에 충격 받은 北 : 외교적 고립 심화 될 듯
이승현
SAND연구소 연구위원
한국이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한 미수교국이었던 쿠바와 공식 외교관계를 맺었다.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65년 만에 이뤄진 역사적인 사건이다. 지난 14일 쿠바의 형제국으로 불리던 북한의 반발을 피해 극비리에 발표된 한-쿠바 외교관계 수립 소식은 북한에 큰 충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전체주의와 반미라는 공통분모를 가졌음에도 한국을 선택한 쿠바의 행보로 인해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더 깊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사진 : 지난 14일 전격 수교한 대한민국과 쿠바 국기>
양국 수교로 쿠바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됐다. 70년 간 북한의 형제국으로 불리던 쿠바가 한국과 수교를 했다는 것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북한은 미국의 코앞에서 사회주의 원칙을 지키며 반미 선봉장을 자처해온 쿠바와 피를 나눈 형제 이상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쿠바는 1949년 한국을 승인했지만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으로 집권한 이듬해인 1960년 북한과 국교를 맺으면서 한국과 단교했다. 냉전 시기 양국은 혁명1세대 지도자들인 김일성과 카스트로의 우정과 반미를 기치로 혈맹관계를 이어갔다. 냉전의 종결읖 앞둔 1988년 서울올림픽에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대거 참가했지만 쿠바는 북한과의 의리를 들어 대회를 보이콧 했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쿠바는 핵·미사일 개발 폭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가던 북한을 향해 줄곧 호의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2018년에는 당시 국가평의회 의장이었던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우애를 이어갔다.

<사진 :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이 국가평의회 의장이었던 2018년 11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북한군 명예위병대를 사열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북한도 이에 화답하듯 쿠바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정은은 쿠바의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2021년 4월 라울 카스트로의 뒤를 이어 쿠바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되자 사흘 연속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이듬해 쿠바의 호텔 가스유출 폭발 사고와 원유탱크 폭발 사고 때도 위로 전문을 보냈다.
김정은은 올해 1월 1일에도 디아스카넬 대통령에게 쿠바 혁명 65주년을 축하하는 장문의 축전을 보냈다. 노동신문 등 북한의 주요 매체들은 거의 매일 같이 쿠바의 외교 정책에 지지를 표명하거나 주요 인사들의 발언을 소개하는 데 지면을 할애했다.
한국 정부가 쿠바와의 수교를 극비리에 진행한 것도 북한과 쿠바의 이런 돈독한 관계 때문이다. 북한이 쿠바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서인데 북한은 한-쿠바 수교 논의를 막판까지 몰랐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쿠바의 깜짝 수교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 매체들은 관련 소식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평양 주재 외교단 연회에도 쿠바 대사가 초청됐지만, 소식을 전할 땐 언급되지 않았다. 과거엔 쿠바가 빠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데, 이와 관련해 북한이 한국과 쿠바의 수교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쿠바 수교는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거듭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핵개발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은 경제난으로 지난해 상반기 53개 재외공관 가운데 9개를 축소했다. 이런 가운데 핵심 거점인 쿠바까지 한국과 수교를 하면서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더 심화됐다.
외교가에선 1990년 한-소 수교와 1992년 한중 수교 때만큼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이 쿠바를 각별히 예우하며 공을 들여왔던 만큼 배신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얘기다.
한-쿠바 수교는 신 반미연대를 꿈꾸는 김정은의 외교구상에도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쿠바 수교는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대립각을 세우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북한에 주는 충격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형제국인 쿠바가 김정은이 주도하는 반대한민국 전선에 지지 대신 한국과 수교하며 뒤통수를 친 것이다.
북한이 상당한 충격 속에서 쿠바를 향해 불만을 표출할 가능성도 있지만 다른 우방국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격한 반응은 자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몇 안 남은 우방국을 잃을 정도로 과격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형제국’ 쿠바가 한국과 수교한 이후, 북한은 러시아를 ‘형제국’으로 부르며 교류를 대대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쿠바의 ‘배신’에 따른 충격을 새로운 형제국 러시아와의 밀착으로 만회하려는 의도다. 전통 형제국을 잃은 북한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가는 대목이다.
북한이 느낀 충격과 당혹감은 한-쿠바 수교 발표 이틑날 김정은의 입으로 통하는 김여정 당 부부장이 북일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하며 ‘천년 숙적’이라 부르던 일본에 구애를 한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에 대해 한국의 대통령실은 이번 수교가 과거 동구권 국가를 포함해 대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며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 심리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쿠바가 북한의 극한 반발을 무릅쓰고 한국과 수교를 선택한 것은 북한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쿠바가 한국과 수교한 것은 극심한 경제난 때문이다. 경제난에 수만명의 난민이 쿠바를 떠났고, 2021년 7월엔 쿠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심각한 수준의 경제난 타개를 위해 쿠바는 형제국인 북한을 배신하고 한국과 손을 잡게 된 것이다.
김정은 정권도 만성적인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면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위기를 느낄 것이다. 최근 북한 당국이 제작한 주민교육자료에 따르면 북한 내부에도 반체제 정당을 조직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임금을 착취 당한 중국 파견 해외노동자들이 집단 폭동을 일으키는 등 심각한 민심 이반 사태들이 발생하고 있다.
북한 경제난의 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다. 김정은 정권이 국제사회의 지탄에도 명분 없는 핵기무 개발에 국력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 동족인 한국을 적대국이라며 핵무기 선제 타격을 겁박하고 나섰으니 쿠바가 아무리 형제국이라도 김정은 정권의 폭주를 더 이상 지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형제국 쿠바의 배신은 김정은 정권이 초래한 자업자득인 셈이다.
김정은 정권이 핵개발과 대남군사도발에 매달릴수록 강력한 대북제재와 국제적 고립은 심화될 것이고, 나아가 세습정권의 파멸을 재촉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