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생모 사망 20주기에 흔적 지우기 나선 이유
북한이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모 사망 20주기(5월 24일)가 되는 올해 고용희 관련 영상물 회수·삭제 조치에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선대의 우상화보다 김정은 개인의 우상화를 부각하며 4대세습을 준비하는 가운데 ‘백두혈통’의 정통성에 흠집을 내는 ‘재일교포’ 출신 생모의 흔적 지우기에 나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 당국이 최근 김정은의 생모 관련 영상물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에 대한 회수·삭제 조치에 나섰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이 지난달 31일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관련 영상은 북한 선전 당국이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상반기 간부 대상으로 제작·보급한 고용희 우상화 선전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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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이 2012년 상반기 간부들에 배포한 김정은 생모 고용희 관련 영상물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에 나오는
김정일과 고용희의 모습/영상 캡처
하지만 영상 공개로 고용희가 재일교포 출신이며 김정일의 공식 부인이 아닌점 등이 내부에서 회자되면서 우상화에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우려 때문에 2015~16년 경 영상물 보급이 중단된 바 있다.
그동안 북한은 김정은 생모 관련 영상물 보급을 중단시켰지만 내부에서 조용히 고용희 칭송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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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공개한 영상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에서 고용희가 어린시절 김정은의 그림 공부를 지도하는 모습/영상 캡처
2019년 12월 월간조선이 공개한 북한군 정치장교 학습제강(학습자료)에는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믿음을 받았으면 보답하는 것이 인간의 양심이고 도덕”이라는 ‘평양의 어머니’ 발언이 소개됐다. ‘평양의 어머니’는 북한당국이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학습자료는 “평양어머님의 이 말씀을 놓고 우리 정치 일군들의 사업을 돌이켜볼 때 현실은 어떤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에 대한 충실성을 양심화, 도덕화하지 못하다 보니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뼈저리게 돌이켜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2020년 11월 ‘어머니날’을 맞으며 북한 여성들 속에서 고용희 우상화 노래인 ‘감사 감사의 노래를 삼가 드리옵니다’가 유행했다고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가 보도한 바 있다. 고용희 우상화 노래는 북한 인민군협주단에서 창작했고, 김정일이 살아있었던 2010년대 초엔 ‘군무자축전’ 등에서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북한당국이 고용희의 존재에 대해 비밀에 부치면서도 조심스럽게 우상화 작업에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지난해 11월 어머니 대회에서 고용희 우상화 영상물을 상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11월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 ‘제5차 어머니 대회’에서 고용희 우상화 영상을 특별기획으로 간부들에게 상영했다고 한다. 당시 김정은은 대회 개회사에서 “나 역시 당과 국가사업을 맡아 하면서 힘이 들 때마다 늘 어머니들을 생각하곤 한다”며 “어머니들의 용기와 헌신이 나에게 쓰러져서는 안 될 의무감, 이름할 수 없는 무한대한 책임감과 힘을 안겨주곤 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대회참가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손수건으로 훔치며 어머니의 사랑을 부각하기도 했다. 북한이 그동안 봉인해두었던 고용희 우상화 영상물을 어머니대회에서 다시 공개한 것과 관련해 김정은의 약력이 완성돼 조만간 공개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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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11월 평양에서 열린 ‘제5차 어머니대회’에 참석해 연설을 듣던 중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조선중앙TV
북한이 김정은의 생모를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의 출신 배경 때문이다. 195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고용희는 10살 때 부모를 따라 북한에 정착했다. 북한 최고의 예술단인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발탁돼 활동하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눈에 들어 28년 간 동거하면서 정철·정은·여정 3남매를 낳았다. 그러나 공식부인이 아닌 탓에 일반주민은 물론 김일성에게도 인정 받지 못하고 2004년 유선암으로 사망시까지 은둔생활을 했었다.
스위스에서 김정은·여정 남매를 돌보던 동생 고용숙과 남편 리강의 미국 망명으로 고용희는 재일교포 출신에 탈북자 집안이라는 배경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됐다.
재일교포 출신 생모를 의식해서일가? 북한은 조총련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대우를 부각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노동신문은 총련결성 69주년을 맞으며 ‘애국의 한길을 꿋꿋이 이어가는 주체형의 해외교포조직’ 기사에서 김정일이 총련 일군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언제나 동무들과 함께 있다고, 우리는 운명을 같이 해야 할 한집안 식솔”이라고 한 발언을 소개했다. 또 이 기사에서 김정은은 총련에 대해 “이역에 사는 우리 인민”이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김정은은 집권 첫해인 2012년 5월 ‘11월 16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고 공휴일로 선포하기도 했다.
고용희 관련 영상물 봉인을 해제했던 북한이 6개월 만에 다시 회수·삭제 조치에 나선 것은 김정은의 약력을 공식 소개할 준비가 덜 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대북소식통은 “아무리 미화해도 의혹이 끊이지 않는 김정은 생모에 대한 우상화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1월 8일 김정은의 40세 생일을 맞으며 충성의 선서모임을 진행하는 등 독자적인 우상화 행보에 나섰지만 재일교포 출신인 생모의 약력을 공개할 경우 백두혈통의 정통성에 흠집이 갈 것을 우려한 조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