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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최근 북한에서 리영호 해임에 이어 현영철 총참모장과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강등되고 내각의 상들이 잇달아 교체되면서 북한의 군부 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서 권력 구조 개편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군부 인사를 포함한 고위층에 대한 경질과 교체의 배경에는 북한이 최근 강조하는 당의 기초축성사업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 10월부터 북한매체들은 1970년대 정신과 당의 기초축성시기 간부들의 충성심을 따라 배울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월 1일 정론 “조선의 기상”에서 우리가 창조해야 할 시대정신은 1970년대의 시대정신의 계승이라며 “위대한 영도자를 대대로 모시어 자기의 운명과 미래를 확신하는 인민이 어떤 힘과 기상을 폭발할 수 있는지, 자기 영도자의 뜻을 심장으로 따르고 온 넋으로 받들 때 어떤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지 70년대는 역사에 증명”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70년대 정신의 본질은 한마디로 자기 수령, 자기 영도자에 대한 충정이며 이는 당의 기초축성기시 간부들의 사상정신적 풍모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즉 당의 기초축성시기에 김정일을 받들고 일한 간부들처럼 사고하고 활동한다면 김정은이 제시한 “생눈길 정신”을 관철하는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당의 기초축성시기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일은 당의 조직 사상적 장악을 위해 당 간부들이 배낭을 메고 아래에 내려가 지도하는 하부지도체계인 항일유격대식 사업방법과 생활총화체계를 도입했다.1974년 2월 13일 당중앙위원회 제5기 8차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은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일에게 이제부터 당조직사업과 당사상사업도 다 맡아볼 것과 당사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김정일에게 집중시켜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당권을 넘겨주었다. 

김정일은 1974년 2월 19일 전국당선전일군 강습회에서 김일성주의를 공식화하고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당의 최고강령으로 천명, 1974년 4월 14일 중앙당, 국가, 경제기관, 근로단체, 인민무력, 사회안전, 과학, 교육, 문화예술, 출판보도 일군들 앞에서 “전당과 온 사회에 유일사상체계를 더욱 튼튼히 세우자”라는 연설을 통해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을 제정하여 당의 조직사상적 기반을 새롭게 구축했다.

김정일은 당과 수령에게 충실한 사람들로 당중앙위원회를 꾸리고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당생활지도부서로서 당생활지도를 강화할 수 있도록 사업체계를 새롭게 세웠다. 당사업과 활동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를 통하여 김정일에게 집중될 수 있도록 당내부사업이 강화되었다.

이어 1974년 7월초부터 8월초까지 전국당조직일군강습회 진행하여 전당의 주체사상화의 과업과 방도로 전당과 온 사회의 유일사상화, 당사업과 당활동의 유일지도체제화를 강조하고 전당의 간부화, 당대열을 계급적으로 정치사상적으로 주체형의 정수부대로 만들 것을 강조했다. 또한 1974년말부터 1976년까지 유일사상체계확립의 제원칙에 대한 재접수, 재토의사업을 통해 전당적인 일대 사상전을 진행하고 당의 유일적지도체제를 세우기 위한 사업과 출판보도 사업 및 신문의 사설까지 장악통제 했다.

당을 장악한 김정일의 다음 목표는 全軍을 주체사상화 하는 것으로 이는 군대를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만드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1975년 1월 1일 인민군총정치국 간부들과의 담화에서 전군주체사상화를 軍건설의 총적임무로 선포, 1977년 8월 20일 군대안의 당조직과 정치기관들의 기본임무는 전군에 당의 유일사상체계, 당의 유일적지도체계를 확고히 세워 군대를 강유력한 당의 군대로 만드는 것이라며 총정치국에 대한 당중앙의 지도와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체계와 질서를 세웠다. 1978년부터 인민군간부들에 대한 당 강습을 진행, 1979년 12월 인민군당 제6기 20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인민군대안에 당의 영도를 세우는 전환의 계기마련, 1980년 설날 총정치국책임일군을 불러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울 것을 지시했다.  1976년 1월 1일 인민군대에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한목숨 바쳐 싸우자”구호 제시, 1979년 6월 인민군대가 오중흡동지의 모범을 따라배우는 운동전개할 것 지시, 1979년 4월 25일을 인민군창건절로 제정하는 등 軍 장악활동을 진행했다.

북한은 70년대 당의 기초를 축성하는 사업에서 거둔 성과로 광범한 인민대중이 김정일의 두리에 튼튼히 뭉치고 당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가 더욱 두터워졌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1980년 12월 3일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평양시당위원회 책임일군 협의회에서 당의 기초축성사업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아직 만세를 부르기는 이르다며 간부대열 재정비 사업을 지시했다.

당사업경력만 따지면서 젊은 사람들을 대담하게 등용하지 않는 경향을 극복하고 젊고 능력있는 일군들을 대담하게 간부로 등용하여 그들을 체계적으로 키우도록 조치함으로서 중앙과 지방까지 간부대열을 김정일에게 충성하는 젊은 인물들로 등용하는 사업이 마무리 되었으며 1984년 3월 6일 김정일은 이제는 당의 기초를 쌓는 사업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고 총화했다. 당의 기초축성사업을 통해 전당과 온 사회에 김정일의 사상과 영도의 유일성이 확고히 보장되고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는 당대열의 사상의지적단결이 반석같이 다져졌다고 북한은 평가하고 있다.

김정은이 70년대의 정신을 중시하고 당의 기초축성사업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위에서 열거한 김정일의 당권장악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것이다. 군부와 내각의 고위인물들에 대한 강등과 교체사업 역시 간부대열을 김정은에 충성하는 젊은 인물들로 재정비 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즉 김정은을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사상적 통일과 영도의 유일성을 보장하고 나아가 군에 대한 당의 지배력을 확대강화 하려는 것이다. 리영호 해임, 현영철, 김영철에 대한 강등 역시 김정은의 군 장악력을 과시하기 위한 제스처로 유일적영군체계 확립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20일자 노동신문 1면에 김정은의 534부대 기마중대 현지시찰 사진에서 최룡해가 현영철의 뒷자리에 선 것도 최고위층이라도 수령인 김정은 앞에서는 평범한 혁명전사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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