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교육 기원과 진화
북한에서 사교육의 기원은 사회교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74년 5월에 나온 당중앙 정치위원회의 결론 “학교교육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몇 가지 과업에 대하여”와 1975년 학생들이 지덕체를 겸비할데 대한 김일성의 <교시>, 사회교육을 강화할 데 대한 김일성의 <교시>에서는 청소년들에 대한 교양사업을 강화하고 기초과학교육을 비롯한 과학기술교육과 외국어 교육을 강화하고 체육교육을 강화하며 특히 사회교육을 널리 장려할데 대하여 강조되었다.이에 따라 북한에서는 전국적인 학과경연과 발표회가 수시로 조직되었으며 국가적으로 “만경대 달리기”와 같은 집단달리기 행사가 광범히 진행되었다. 또한 “배움의 천리길”답사 행군과 같은 사회교육 프로그램들을 만들었고 그 참가기준을 전국적으로 김일성 김정일에게 충실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교들과 학생들을 특별히 선발하여 참가하도록 했다. 평양시를 비롯한 큰 도시들에 학생소년궁전과 학생소년회관을 세우고 운영하여 학교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이 취미와 소질에 따라 과외소조활동에 참가하도록 했다.
국가에서는 “로동당의 기치따라”를 비롯해 “혁명의 태양이 솟아오른 만경대”등 집단체조를 통해 학생들의 예능실기와 체육을 장려했고 평양뿐이 아니라 전국적인 집단체조 경연대회를 조직하여 “은혜로운 해빛아래 꽃피는 평남도”와 같은 우수한 작품들이 출품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에서는 점차 예능교육이 강화되기 시작했고 학교마다 물리소조, 수학소조, 생물소조, 음악소조, 체육소조, 토끼소조, 등 다 과목 소조가 무어지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방과 후 3~4시간 혹은 늦은 밤 시간까지 진행되었다. 특히 교육 및 생활환경이 비교적 좋은 학교나 학생들은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각종 예술 공연과 서예활동, 체육경기에 참가해 이름을 알리게 되자 학부모들은 저저마다 자기자식을 과외소조에 넣어 예능 및 체육 분야의 전문적인 기량과 기능을 키우게 하였다.
모든 학생들은 한 가지 이상의 악기는 무조건 다를 줄 알아야 된다는 김정일의 교육지시가 80년대에 전달되면서 대학입학시험에서 점수가 모자라면 악기라든가, 성악, 체육활동 등 특기를 고려해주는 입시편법도 나오기 시작했다. 대학들도 해마다 진행되는 전국대학생예술소조 경연에 공모해 대학의 이미지를 올리고 업적을 평가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70년대까지만 해도 개별적인 학생들의 기량을 높이기 위한 특별교육은 사교육의 성격보다 교사들의 충성심 학교의 명예와 연관된 공적인 교육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 개별학생들의 기량을 키우기 위한 교육은 어떤 물질적 대가보다는 정치적 평가를 위해 진행되는 경향이 강했다.
□ 80~90년대 수도 평양에서 사교육 열풍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별적 학생들의 기량을 키우기 위한 교육은 점차 대가성 교육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북한에서 급속히 확대되기 시작한 외화사용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생활격차 또 그로 인해 파생된 물질에 대한 관심 증가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북한에서 사교육은 예능교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문학예술에 관심이 높았던 김정일은 각도마다 예술전문학교를 내왔고 예술인들에 대한 대우를 특별히 높여주었다. 국가의 예술인에 대한 우대정책은 부모들로 하여금 자식들을 예술가로 키워 장래를 보장해주어야 하겠다는 욕망을 가지게 하였다. 남보다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부모들에 의해 사교육이 발생나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전문적인 기량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가 자기 자식에 대한 지도를 부탁하게 되었고 또 그에 대해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사교육이 제일 먼저 성행한 곳은 평양이었다. 평양에서는 80~90년대에는 주로 손풍금이나 바이올린, 첼로 나팔 등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성악도 한때 많이 유행되었고 무용, 예술체조, 기계체조가 인기를 끌었다. 체육부문에서는 축구와 송구를 비롯한 구기운동, 마라톤이 학생들의 관심을 모았다. 부모들은 체육부문의 전문가로 키워 자식들은 4.25 체육단에 보내고 국가선수로 키워 국제경기에서 금메달을 따오게 하는 것을 최대의 낙으로 생각했다. 특히 김정일은 그 때까지 김일성이 부인하던 수재론을 부활시켰고 평양 제1고등중학교에 이어 연이어 각도 1고등중학교를 내오고 수재들을 특별히 교육하는 체계를 세웠다. 이에 따라 부모들은 예능교육뿐 아니라 자식들을 1고등에 보내기 위해 수학 외국어 등의 기초과목교육을 특별히 시키게 되었다. 특히 자기자식의 천재성을 조기에 발견하고 그를 발전시키려고 개별교육을 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만경대1고등학교 김서일 학생이다. 전국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으며 세계적인 올림픽대회 수학경연에서 연속 2번이나 1등을 하여 17살에 박사가 되었다.
□ 기타 도시와 농촌, 군인가족
사교육은 청진, 함흥, 원산을 비롯한 지방 도시들도 마찬가지이다. 청진의 경우 제일 관심가지는 것은 악기다. 선호도로 보면 손풍금이 제일 인기가 높고 다음 바이올린이나 첼로, 피리, 등 순위로 내려가며 성악과 무용도 선호한다. 80년대에 인기 있는 학교는 예술전문학교와 외국어학원이었다. 청진예술전문학교 만 보더라도 지망생이 너무 많아 입시경쟁률이 10:1 20;1에 이르렀다. 청진예전에 시험 치러 온 학생들의 가정환경을 분석해본데 의하면 농장관리위원장이 제일 직급이 낮았다. 도당이나 도 보위부, 안전부, 시 당, 인민위원회 간부들의 자녀가 많았다. 재일교포자녀들, 소련벌목공의 자녀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학교운영자금을 직접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을 전제로 입학시켰다.
예술분야 다음으로 인기 있는 사교육은 외국어교육이다. 80년대에는 영어교사가 흔치않아 외국에서 유학한 대상들이나 사범대학 졸업한 영어교사들이 학교에서 인기를 끌었다. 농촌에서는 주로 관리위원장이나 리 당 비서, 작업반장 자녀들이 학교 외에 교육을 받기 위해 방학이나 주말이면 도시로 나와 특별히 개인과외를 받았다.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기초과학교육을 받게 했다. 군인가족들이 의외로 사교육열풍이 높았다. 군부대는 외진 곳에 주둔하다나니 일반적으로 교육환경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대 도시주변에 위치한 군부대와 평양시에 주둔한 군부대내 가족들은 오히려 일반 도시학생보다 사교육열의가 더 높았다. 군인세대는 일반인들보다 생활수준이 높았다. 때문에 자녀들의 사교육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었다. 때문에 자녀들을 도시에 직접 내보내거나 선생님을 모셔다 개별지도를 받게 하였다.
□ 2000년대 사교육 열풍
90년대 어려운 경제상황은 북한의 학교교육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공교육이 유명무실해지고 아이들의 교육을 국가에만 의존할 수 없는 현실이 북한에 펼쳐지고 있다. 또한 생활격차와 수재교육의 등장으로 교육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다. 북한도 남한처럼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조건에서 자식에게 쏟는 부모의 정성과 노력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의 미래를 위해 자식의 교육에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거기다가 기술과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도 나름대로 자기 밥벌이 수단을 따로 마련하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 때문에 북한에도 사교육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존재하게 되었고 사교육시장이 광범하게 형성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예체능에 집중되었던 사교육은 수학, 물리, IT 등 기초과목과 외국어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어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영어열풍 중국어바람도 불고 있다. 지금은 대학에 가려면 1고등중학교에 가야하고 그러자면 당연히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전에는 입당을 중시했기 때문에 군복무를 희망했지만 지금은 군복무 입당보다 전문지식을 중시하고 있고 더욱이 나라의 장래를 희망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조건에서 더욱더 사교육에 힘을 넣고 있다.
□ 80~90년대 사교육 내용: 예체능 분야
이 시기에는 예술분야에 대한 개인교육이 대다수였다. 김정일이 예술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이 분야 종사자들에게 최고의 생활조건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자식들을 전문적으로 키워 예술분야에 종사시킬 목적으로 선호하였다. 또한 전 사회적으로 김일성·김정일 생일과 김정숙 생일이면 다채로운 예술 활동을 벌릴 데 대한 지시를 집행해야 했기 때문에 당적으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전공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배치나 직장생활에서 유리하였다. 학생들은 이름난 영화배우나 가수들을 전문적으로 키우는 영화 및 방송음악대학을 제일 선호했고 다음 평양음악무용대학 입학을 지망했다. 이 대학들은 전문적인 기량과 지식이 있어야 입학할 수 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조직되는 각종 예술경연이나 활동에서 실력을 쌓아야 했다. 선호하는 악기는 피아노, 손풍금, 바이올린, 첼로, 피리, 드럼이며 90년대에는 전자피아노 등 전자악기도 유행됐다. 학생들은 학교음악선생이 아니라 도, 시, 군 예술단이나 중앙기관에서 근무하다 과오로 지방에 내려온 전문가들을 찾아가 배웠다.
학교에서의 예술교육도 이전과는 달리 공교육보다 사교육의 형태로 변질되어 갔는데 학교에서는 능력이 아니라 부모들이 고이는 뇌물에 따라 학생들을 소조에 받아들이고 또 소조에서 훈련시키는 기간 선생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청진시 라남고등중학교는 전국적으로 기계체조 1위이며 설맞이 공연에 매번 참가한 경력이 있다. 학교 기계체조 선생님이 중앙에서 근무하다 좌천된 인재이로서 능력이 있었다. 때문에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소조에 받아달라고 찾아가군했는데 물론 대가성이였다. 체육부문에서는 제일 선호된 종목은 빙상피겨이다. 돈 있는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아끼지 않았다. 3살부터 기초적인 무용동작을 배워주기 시작해 하루에 5~6시간의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는데 사례비 역시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80~90년대에는 개인교사에게 돈을 직접 주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도시에서는 부식물이나 땔감, 옷감 정도에 따라 TV나 냉장고, 3면 경대 같은 가전제품을 가져다 주었다. 수학, 물리, 화학, 외국어 같은 기초과학교육은 이 시기까지만 해도 주로 학교에서 방과 후 소조활동으로 많이 대치했다. 대학입시가 박두하면 학교별로 소조를 조직하고 과목지도교사가 지도하는 방법으로 학생들의 과외교육을 지도했다. 체육부문에 아들을 진출시켜 국내경기나 국제경기에 내보려고 계획한 가정은 집안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하기도 했다.
□ 2000년대 사교육 내용: 기초과학, 예체능
2000년대에 들어와 사교육의 내용이 바뀌고 있다. 사교육의 내용을 순위로 본다면 수학, 물리, 화학, 생물, IT에 관심이 높고 다음 태권도, 미술, 예능부문이다. 사교육비용은 평양과 지방도시, 농촌과 군인가족에 따라 다르다. 컴퓨터의 경우 6개월만 개별교육을 시키면 자기마음대로 각종 프로그램을 인식시키고 파워포인트와 액셀은 물론, 포토샵까지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수학은 보통 주에 4일정도 과외를 받는데 교육형식은 많은 문제풀이과제를 주고 그 풀이과정을 지도한다. 교과과정이 아닌 “꼴꼴이 문제”, “415 문제풀이” 등이 소학교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중학교졸업생들은 이과대학입시문제와 모스크바대학시험문제 등이 문제풀이문제로 선호되고 있다.
영어 과외는 일반학교 교육과정이 아닌 전문적인 영어교육과정을 배워주고 있다고 한다. 최근 특별히 관심이 커지는 분야가 태권도과목이라고 한다. 체육위원회소속으로 각 도마다 구락부를 만들고 태권도교육을 장려하고 있다. 또한 시마다 소년궁전형식의 구락부가 있어 어느 종목보다 그 선호도가 높으며 학생들도 수학, 컴퓨터보다 테권도를 더 좋아한다. 최근 80~90년대에 별로 인기 없던 미술이 고가비용의 과외비를 요구하는 예능과목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요즘 북한사회는 결혼기념일, 돌, 환갑, 생일 등 기념하는 문화가 생겨 한 폭의 비싼 그림을 집에 거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또한 중국인들의 북한그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주 극소수가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있다.
평양시에서는 미술 창작사에 근무하던 교사의 개인과외사례비는 보통 200달러정도, 북한 돈으로 60만정도의 고비용이다. 손풍금 과외경우 고도로 전문화되어 손풍금과외 전문 그룹이 생기고 있으며 새로 나오는 독주곡이나 외국곡파일 등을 시디로 구워 학생들에게 1만원씩 보급하고 있다. 손풍금 부품, 손풍금 구입, 단속에 대한 대응에서도 서로 간 네트워크를 형성해 협력하고 있다.
□ 최근 당국의 사교육 통제정책
북한은 사교육의 확산을 막기 위해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막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국의 도, 시, 군, 구에 세워진 1고등학교를 없앨 데 대한 지침을 내렸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과 집행자들의 이해관계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사교육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을 하지만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어서 몇 사람을 처벌하는 것으로 끝나며 다시 사교육이 진행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사교육자들은 단속기관들에서 정보를 입수하고 통제기간에도 6~7명 정도 모이는 과외는 당분간 피하고 개인 교사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그날 과정안을 집행한다.
단속기관이나 간부들이 오히려 과외열의가 더 높기 때문에 과외교사들은 단속기관 사람들의 자식을 자기의 제자로 받아 단속에 대비하기도 한다. 어느 큰 도시에서는 이과대학 교수로 있다가 지방에 내려와 엄청 큰 집을 가지고 과외를 한 교수가 있었다. 대학입시에 나오는 수학문제풀이를 위해 돈 많고 파워 있는 집 자녀들을 30명 모아놓고 잘 가르쳐주어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단속하고 처벌하자고 하니 학생들이 모두 다치기 어려운 법 기관과 간부자제였다. 신소가 올라가고 소문이 커져 하는 수 없이 이과대학교수를 멀리 농촌에 쫒아버렸는데 1년 후 과외 받던 부모들이 손을 써서 다시 도시로 들어왔다고 한다.
□ 북한 사교육의 전망
사교육은 현재 북한사회에서 필수적인 교육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 학교교육에 의존하지 않으며 사교육을 받아야 대학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확산되게 될 것이다. 북한은 몇 프로 안 되는 수재라도 양성해 현재 북한이 처한 상황을 헤쳐가려고 최근 들어 인력양성에 집중하고 있고 이러한 사회적분위기는 사교육열의를 부추기고 있다. 특히 IT전문가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보장되고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기 때문에 1고등중학교 입학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리고 있다. 좀 사는 집들은 5만 원이 한 달 식량가격이지만 그보다 몇 배인 15~20만 원을 교육애 투자하고 있다. 지어는 외국의 개인교사까지 고용하여 월 과외비로 수백 달러를 쓰고 있는 가정도 있다.
통일비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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