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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통일비전연구회 제2기 22차 역사연구회가 2013년 9월 14일 "사회주의경제개혁과 체제이행의 정치적 조건 : 구소련, 동유럽, 중국의 경험과 북한의 이행 가능성"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논문의 저자인 서울대 경제학부 김병연 교수님의 지도 밑에 개최된 연구회에서는 발표에 이어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저자는 논문에서 북한정권이 자본주의에로의 체제이행을 시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그 이유는 경제개혁의 정치적 조건을 구성하는 세 요인, 즉 최고지도자, 핵심지지층, 일반대중 모두에게 경제개혁의 정치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있는 까닭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최근의 북한의 경제개혁 정책은 북한정권이 실제 일어나고 있는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하여 권력유지에 위해가 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경제현실화 조치로 평가되며 북한이 중국처럼 근본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할 수 없는 이유는 최고권력자의 권력유지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내용 : 사회주의 경제개혁과 체제이행의 정치적 조건 : 구소련, 동유럽, 중국의 경험과 북한의 이행 가능성

(김병연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1. 서 론

본 연구는 경제개혁과 체제이행의 정치적 조건을 구소련, 동유럽, 그리고 중국의 경험을 통해 살펴보고 그것이 북한의 경제개혁과 체제전환의 가능성에 주는 함의를 논의하고 있음. 저자는 주요한 경제개혁 혹은 체제이행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정치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함을 발견했음.

즉 새로운 집권자가 탄생하여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구체제를 탈피하려는 욕구가 강할수록 경제개혁의 가능성이나 그 강도도 증가하고, 핵심권력층의 선호와 일반 대중의 지지 혹은 항거도 정치적 조건의 하나이나 반면 경제위기 자체만으로 체제이행을 유도하지 못함을 밝혔음. 따라서 현재의 북한의 정치적 조건으로 볼 때 자본주의로의 체제이행이 시도될 가능성은 대단히 낮은 것으로 평가됨.

2. 사회주의 경제개혁과 체제이행의 정치적 조건

2002년 북한의 7.1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포함하는 최근의 북한경제개혁의 방향과 정책결정자의 의도를 둘러싸고 한국내 연구자들의 의견은 서로 대립되었음.

2-1. 일부 연구자들은 북한의 조치를 시장경제로 향하는 중국식 개혁개방의 신호로 해석.

이들에 따르면 북한의 공장가동률이 20~30%에 머물고 상당수의 인민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위기 상황에 들어선지 10년이상이 지났지만 경제가 회복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자 북한의 정책결정자들은 계획경제의 틀을 벗어나는 중국식사회주의를 조심스럽게 실험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 따라서 북한이 채택하는 정책의 방향은 기실 자본주의화이며 그들이 내놓고 있는 정책도 중국의 초기 개혁단계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임. 설사 최고정책 결정권자가 자본주의화를 의도하지 않은채 개혁정책을 입안, 집행했다 하더라도 이러한 정책들이 누적되면 대중들의 삶은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더욱 노출되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밑에서부터 자연적으로 일어나리라는 파단임.

2-2. 반면 다른 학자들은 북한의 최근경제개혁은 계획경제체제의 회복에 주안점을 둔, 사회주의 틀 내에서의 일종의 개선조치에 그치는 것으로 해석.

이들은 북한의 경제개혁에는 사회주의체제를 변화시킬 만한 급진적 정책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계획경제부문의 회복이 그 정책의 목표라는 것임. 예를 들어 국유기업에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고 배급제를 점진적으로 폐지해나가며, 생필품의 가격과 노동자의 임금을 현실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7.1경제관리개선 조치는 자본주의자체의 도입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일부 요소를 사회주의에 부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며 그 근복 목적도 공식계획경제부문의 확대와 그 부문의 생산성 향상이라는 주장임.

2-3 이들 주장의 제한성

그러나 이들은 북한의 개혁조치의 내용들을 서술하고 그 의미와 파급효과들을 예상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음. 그러나 이 접근법은 북한의 개혁조치를 북한식 사회주의의 변화라는 좁은 범위안에서만 해석하는 한계가 있음. 주지하다시피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구소련에서 시작하여 구동유럽, 개혁이전의 중국등에서 실험되었음. 그리고 사회주의 경제체제 내에서도 계획과 통제의 정도,생산수단의 국유의 범위에 따라 상당히 다양한 소체제가 존재했음. 북한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극단적인 형태의 사회주의를 시행해 온 국가였음.

이와 같은 체제를 일종의 전형적인 사회주의체제로 간주하고 최근의 북한의 경제개혁조치를 평가한다면 최근의 북한의 변화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낳을 것임. 또 다른 연구들은 북한의 경제개혁조치의 내용을 중국의 그것과 비교함으로서 유사성과 상이점을 밝히려고 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국가간 비교분석을 통하여 북한경제체제의 특징과 경제개혁 정책의 효과를 파악하는데 유용할 수 있을 것임. 그러나 이 분석방법도 과연 북한이 자본주의화를 시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데는 유용성이 떨어짐.

이 연구는 어떠한 정치적변화가 주요한 경제개혁을 시도하게 만들었는지 개략적인 인과관계를 파악해보려는시도임. kornai(1992)는 사회주의에서의 개혁이란 "사회주의 정치구조, 재산권, 경제조정메커니즘 가운데 적어도 하나에 부분적이며 제한되어 있으면서도 근본적인변화를 야기한 것, 그러나 체제의 완전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함. 논문은 이 정의를 따르면서도 경제개혁에 초점을 맞추어 개혁을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조정메커니즘 혹은 재산권에 상당한 변화를 야기시킨 정책의 도입으로 정의함.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특징 중 하나는 경제가 정치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임. 여기서 kornai가 언급하는 정치란 권력구조와 결부되어 있으며 마르크스 레닌의 그리고 관료의 통제력이 권력구조를 이루는 구성요소이다. 그리고 이 세가지 권력의 상대적 경중은 국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음. 특히 북한은 이중 최고권력자인 김정일의 의도와 판단이 체제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것임. 따라서 경제개혁이나 이행의 중요한 선생조건으로서 최고권력자에 관한 변화여부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함. 또한 최고권력자와 체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핵심권력층 내지 핵심지지층에서의 변화도 경제개혁의 또 하나의 정치적 조건으로 간주될 수 있음. 또한 독재정권이라도 최고권력자의 권력유지를 위협하는 수준의 일반대중들의 반란 혹은 저항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임.

3. 경제개혁, 체제이행의 정치적 조건

경제체제를 막론하고 주요한 경제개혁이 시도되거나 지속되기 위해서 충족시켜야 할 정치적 조건 혹은 제약이 있는데 권력을 가진 자의 동의 혹은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임. 왜냐하면 권력이란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목적에 합하는 결과를 성취하기 위한 능력을 의미하며 권력을 가진 자나 집단은 자신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경제개혁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저지할 것이기 때문임.

3-1. 자본주의에서의 정치적 조건

자본주의에서의 정치적 조건 혹은 제약은 주로 국민이 부과함. 즉 주요한 경제개혁이 시도되거나 지속되기 위해서는 국민다수의 지지를 필요로함. 정치경제학에서는 경제개혁이 자신에게 미칠 이익과 손실을 계산하여 경제개혁을 지지 혹은 반대할 것인지 결정한다고 가정함. 따라서 국민의 다수가 경제개혁의 승자가 되었거나 승자가 되리라는 예상이 없으면 그 경제개혁은 실행되지 못함.

3-2. 사회주의국가에서의 정치적 조건

사회주의국가 혹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도 권력을 가진 자의 개혁으로 인한 이해득실이 경제개혁의 시도와 지속적 추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임.  경제개혁의 실시결과 자신의 순이익을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한다면 최고결정권자는 그 개혁을 시도하지 않을 것임. 여기서 최고결정권자가 자발적으로 개혁을 시도하는가 아니면 강요되어서 개혁을 시도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음.

국민다수의 강력한 개혁요구를 무시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의 이해득실과 개혁했을 때의 이해득실을 비교하여 전자의 순이익이 크다고 판단되면 권위주의국가에서의 최고권력자도 자신의 선호와 관계없이 이해득실에 따라 개혁을 시도할 수 있을 것임. 사회주의체제의 독재자가 추구한 목적이 자신의 이익추구라는 사실은 최근 소련의 문서보관서 자료를 토대로 한 연구성과에서도 드러남. Gregory는 독재자의 유형을 과학적 계획가형, 안정적 강도형, 이기적 독재자형, 그리고 중재자적 독재자형으로 나눈 후 상세한 자료를 토대로 스탈린의 독재유형은 안정적 강도형 내지 이기적 독재자형이며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독재자의 일반적인 유형으로 견론지었음. 

이와함께 파키스탄에서 자연재해 후 발생한 기아의 원인이 자연재해 그 자체이기보다는 기아의 예방과 대처가 정치적으로 크게 중요하지 않은 독재권력에 기인한다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Amartya Sen(1999)의 관찰내용은 흥미로움. " 민주주의와 기아의 부재 간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아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가지만 권력자들의 목숨은 빼앗지 않는다. 왕들과 대통령들, 그리고 관료들과 군림자들, 군의 지도자들, 사령관들은 결코 기아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다. 선거도 없고, 야동도 존재하지 않으며 검열없이 표현되는 공개적인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다면 권력가진 자들이 기아를 예방하지 못한 실패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할 필요도 없다. 반대로 민주주의를 기아를 예방하지 못한 대가를 정치권력자와 지도자들도 치르도록 만드는 체제이다."

이상의 논의들은 사회주의 경제에서 주요한 경제개혁이 시도되기 전에 반드시 중요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함. 그리고 정치적변화와 경제개혁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음을 암시함. 즉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최고권력자가 자신이 바뀌거나 동일한 권력자라면 기존의 경제정책을 크게 변화시킬 정도로 그의 산술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건이 사전에 발생했다는 것임. 이와 같이 정치적 변화란 최고권력자의 변화를 포함함. 새로이 등장한 최고권력자는 자신의 헤게모니 강화를 위하여 이전의 권력자를 비판하고 일반대중이 바라는 경제개혁을 시도할 유인이 증가하게 됨. 특히 권력승계가 치열한 권력투쟁이나 혁명 등의 단절적과정을 경험할 수록 기존의 경제정책 노선과 차별화되는 정책을 추구할 가능성이 증대함. 또한 사회주의 핵심지지층인 엘리트군인들과 고위관료, 지식인들의 선호, 그리고 일반대중의 강력한 요구가 개혁과 이행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 

즉 최고권력자가 바뀐 경우, 새로이 등장한 권력자가 이전의 권력자와 갈등관계가 심했을수록, 핵심계층이 변화를 바라면 바랄수록 그리고 대중들의 변화욕구가 체제를 위협할 수준까지 강도높은 것이면 그 강도에 비례하여 경제개혁의 가능성과 급진성은 증가하게 될 것임. 그리고 이 강도가 아주 강하며 체제이행으로 이어질 것임. 만약 최고권력자가 바뀌지 않고 주요한 경제개혁이 시도된 경우라면 핵심계층 혹은 일반대중, 혹은 그 양자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워낙 거세 최고권력자의 이해득실 계산에서 현상유지의 순이익이 개혁의 순이익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일 것임. 마지막으로 어떤 체제가 극심한 외부압력에 노출되어 있을 때 국내적 요인들은 변화 없이도 최고결정권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경제개혁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임.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다음과 같은 가설로 정리해 볼 수 있음.

H1: 경제개혁 혹은 체제이행으로 자신의 권력이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고 믿는 자가 최고권력자가 될 때 개혁과 이행의 가능성은 증가한다.

H2: 기존의 권력자가 경제개혁이나 체제이행을 시도할 확률은 어떤 중요한 사건의 발생으로 인하여 권력의 유지가 어려워지거나 혹은 그 사건이 핵심권력층이나 일반대중의 동요를 야기시켜 권력의 유지를 어렵게 할수록 증가한다.

H3: 일반대중들의 동요와 항거를 유발할 정도의 심각한 정치적 혹은 경제적 위기는 권력자의 권력유지가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의 경제개혁의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H4: 개혁 혹은 이행을 원하는 최고권력자의 등장과 일반대중과 핵심권력층의 변화에 대한 지지가 높을 수록 개혁의 가능성과 강도,체제이행의 확률이 증가한다.

4. 사회주의에서의 개혁과 이행의 경험과 정치적 조건

 4-1 소련의 경제개혁과 정치적 조건

소련경제체제는 사회주의경제체제의 전형임. 소련은 70년 역사가운데 여러번의 경제개혁을 시도했는데 특히 자본주의적 요소를 대폭도입한 경제개혁으로 1921년~1928년의 신경제정책, 1965년의 경제개혁, 1985년~1991년의 페레스트로이카임.

- 1921년~1928년 신경제 정책
소련의 전시공산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 볼셰비키와 멘셰비기 간의 갈등으로 야기된 내전동안 볼셰비키정부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동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한 물자만 남기고 농산물을 강제로 징발했음. 생산력의 급감 및 국민소득의 감소 등으로 정부는 전쟁자금조달을 위하여 재정적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재정적자는 중앙은행의 화폐발행권으로 충당되었고 결과 극심한 초인플레이션 발생했고, 생산력은 급속하게 하락했음. 1921년의 국민총생산은 1917년 10월 혁명 전의 수준에 비하여 불과 3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음.

이에 농민들의 반란과 군인들까지 가세하면서 위기를 느낀 소련권력자들은 체제유지의 차원에서 경제개혁을 시도할 이유를 갖게 됐음. 즉 농민의 반란에 사회주의핵심계층인 군인들의 무장봉기가 겹치면서 권력자의 이해득실 계산의 행렬이 바뀐 것임. 신경제 정책의 경우는 가설H2와 H3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음. 신경제정책은 농민들에게 자신들의 잉여농산물을 마음대로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소규모의 작업장, 유통업증 등을 사유화 했음. 국가소유의 기업들도 이윤과 손실의 원리에 따라 경영되도록 지도됐으며 임금의 능력과 성과에 따른 차별적 지급도 인정되었음. 기업들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고용, 해고할 수 있게 허락했음. 즉 신경제정책 체제는 일종의 혼합경제로서 국가소유가 지배적인 공업부문과 개인소유가 지배적인 농업부문이시장매커니즘을 통해 작동되도록 의도되었음. 그리고 개인과 기업의 인센티브를 강화하였을 뿐 아니라 계획경제의 상당한 부분을 포기하고 농업과 소규모 공업의 사유화까지 시도한 시장사회주의적 성격의 체제임. 신경제정책은 경제성장의 측면에서 획기적인성장을 이룩하였음.

1928년까지 농업과 공업생산력은 전시경제체제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며 소련의 국민소득은 1913년의 수준을 넘어섰음. 그러나 성과에도 불구하고 신경제정책은 소련의 정치권자의 입장에서 볼 이데올로기적인 타협이자 기껏해야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로 간주되었음. 특히 농산물 판매량이 신경제정책 시행 후기로 갈수록 감소하게 되고 이러한 식량부족이 가져올 폭동의 가능성, 또한 소득의 불평등의 심화와 부농과 부유한 중개상인의 등장, 실업의 급증 등은 1924년 레닌의 사후 권력을 잡게 된 스탈린으로 하여금 보다 순수한 사회주의로 회귀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 되었음. 이러한 경제개혁이 가지고 온 성과와 그 진전 상황에 관계없이 사회주의 경제는 최고권력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체제의 널뛰기도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함.

-1965년 경제개혁

1964년 흐루시초프를 축출하고 소련의 공산당 제1서기장이 된 브레즈네프는 총리 코시긴과 함께 1965년 경제개혁정책을 추진함. 1965년 경제개혁은 자본주의의 인센티브 요인의 도입에 주된 촛점을 맞춘 보다 보수적인 개혁이 될 수 밖에 없었음. 스탈린식 경제체제는 경제발전의 초기단계, 즉 경제구조가 그리 복잡하지 않고 상당한 실업이 존재하며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단계에서는 경제성장을 효과적으로 앞당길 수 있음. 그러나 이러한 경제의 외연적 성장단계를 지나 내연적 성장단계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경제성장 전략에의 수정이 불가피해졌음. 경제구조가 복잡, 다기해져서 계획의 득보다는 실이 증가하게 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임.

따라서 스탈린식 외연적 경제성장은 장기적으로 한계에 도달할 가능성이 매우 큼. 실제로 스탈린식소련경제는 시간이 지날 수록 경제성장률이 둔화되었음. 소련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1951년부터 1960년까지 10.3%의 성장을 기록했던 소련경제는 1961년~1964년에 이르러서는 성장률이 6.5%로 둔화되었음. 1965년에 시도된 경제개혁은 첫째 기업에게 부과되었던 50개가량의 계획목표들이 9개 내외로 줄게 되었고 그 목표들도 기업이윤에 촛점이 맞추어졌음. 즉 이전의 목표생산량 위주의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에서 개별기업들의 이윤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경계계획의 내용이 바뀌었음. 둘째 기업들은 중앙에서 정한 목표이윤을 초과하는 이윤을 기초로 하여 근로자들과 그 기업을 위한 기금을 조성할 수 있었음. 그리고 기금으로 근로자를 위한 상여금, 복지향상,기업의 자체투자를 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음. 1965년의 경제개혁은 신경제저액보다 보수적인, 그러나 이전 스탈린식 경제정책보다는 개혁적인 경제실험으로 볼 수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가설 H1을 지지한다고 평가할 수 있음.

-페레스트로이카

1985년 공산당 제1서기장이 된 고르바쵸브가 물려받은 것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노쇠한 사회주의 경제였음. 미국 CIA추정치에 따르면 소련경제는 1975년~1980년, 1981년~1985년 동안 각각 2.6%, 2.0%의 연평균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음. 더욱이 1970년대 후반부터 음(마이너스)을 기록한 총요소생산성은 198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 음의 성장을 기록했음. 초기 고르바쵸브의 개혁의 핵심은 노동규율의 확립과 관료들의 태만과 부패의 제거였음. 이를 위해 의사결정구조를 기업과 지방 등 하부조직으로 이양시키기를 원했지만 이러한 개방정책은 권력자들과 관료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음.

이러한 저항에 고르바쵸브는 일반대중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서 맞서고자 했음. 그러나 경제침체가 계속되고 그가 시도했던 일련의 경제개혁, 그 중에서도 투자를 통한 경제성장은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했으며 1987년 도입된 국유기업에 관한 법은 임금상승을 유발,소비재부족 현상을 심화시켰음. 더욱이 일부 공유기업과 소규모의 사유기업 설립을 인정하고 국유기업의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투입요소 구매와 생산물 판매를 허락함에 따라 계획에 의거한 경제조정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렵게 되었음.이와같이 성장이 정체되고 소비재부족이 극심해짐에 따라 일반대중도 고르바쵸브로부터 등을 돌렸음.

고르바쵸브는 현재의 경제를 개혁하지 않고 그냥두면 자신의 장기적인 권력유지에 해가 된다고 생각했고 사회에서 점차 세력을 얻고 있는 급진적 민주화 지지세력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음. 그러나 경제를 회생하기 위한 본격적인 경제개혁은 기득권층을 구성하는 권력자와 고위관료들이 반대한다는 것이었음.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연령이 높아 은퇴직전에 이르게 되었고 따라서 이들을 축출하는 것이 그리 높은 비용을 치루지 않고서도 가능해졌다고 판단했음. 대신 젊은 엘리트를 기용하는 것이 자신의 권력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으며 이를 위한 기치로서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내세웠음.  고르바쵸브의 페레스트로이카라는 개혁시도는 가설 H1을 지지하는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음.

 5. 동유럽의 경제개혁과 정치적 조건
  5-1 헝가리의 신경제매커니즘

1956년 헝가리와 동독, 폴란드, 체코 등에스는 민주화운동과 반소련 운동이 벌어졌음. 1956년 10월의 헝가리혁명은 3000명의 사상자와 이십만명의 헝가리인들이 국경을 넘어 망명하는 사태를 초래했음. 헝가리인들의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짓밟은 소련군의 도움으로 집권한 새 지도자 Janos Kadar는 국민지지 획득의 방편으로 신경제매커니즘으로 알려진 시장사회주의 정책을 시행했음. 이는 H1과 H3의 가설에 해당함. 신경제정책은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유지한 채 정부의 중앙계획 기능을 포기, 시장이 자원배분의 매커니즘으로 자리잡도록 의도한 정책임.

따라서 기업은 중앙계획기구가 정한 목표생산량 달성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경영할 유인이 생기데 외었음.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와 경제에 미칠 부정적영향을 고려하여 가격자유화의 정도는 산업에 따라 다르게 정하였음. 또한 기업 도산의 허용이나 경쟁 촉진 등에 있어서도 개혁 이전과 비교하여 두드러진 차이가 없었음. 더 나아가서 정부는 조세 등의 방법으로 이윤을 많이 낸 기업으로부터 그렇지 않은 기업으로 자원을 이전시켰음.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시장과 정부라는 두 주인을 섬겨야 했고 이러한 이중적 의존은 경제효율성을 저하시켰음. 그리고 전체적으로 시장사회주의를도입한 헝가리의 경제서장률도 정통적 사회주의를 고수한 다른 동유럽 국가와 비교해서도 우월성이 발견되지 않았음.

5-2 유고슬라비아의 자주관리제도 

유고는 동유럽에서 소련군으 개입 없이 거의 독자적으로 사회주의정권을 세운 유일한 나라로 소련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웠음. 티토는 스탈린이 동유럽국가를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스탈린을 비판하고 소련정책에 반발했음. 소련이 무력시위를 벌이자 이에 대항해 나토국가들과의 연대성을 강화하는 한편 스탈린적 사회주의에 대비되는 마르크스에 충실한정통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명문을 내세웠는데 자주관리제도로 불리는 이 정책은 가설 H2를 지지하는 사례임. 이러한 명분에서 시작된 체제가 바로 유고슬라비아의 자주 혹은 노동자관리 경제체제임.

이 체제는 기업을 국유가 아닌 노동자들의 공유로 바꾸고 사회주의경제에서의 계획 기능을 포기하는 것이었음. 즉 유고의 체제는 구소련이나 동유럽의 어느 경제체제보다 자본주의적 요소를 많이 도입한 경제체제였음. 그러나 자주관리경제체제는 다른 사회주의 경제체제보다 더 나은 경제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음. 기업내에서도 노동자간의 이해관계의 대립과 그에 따른 협상에 높은 비용이 지불되었고 노동자의 수와 1인당 이윤이 반비례함에 따라 실업이 증가했음. 예를 들어 1952년 2.2%의 실업률은 1967년 7.6%로 그리고 1980년에는 12%로 실업이 증가하여 실업이 거의 없는 통상적인 사회주의경제와 비교하여 유고는 가장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음. 1980년까지 연평균 5%가량을 기록한 성장률도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음의 성장을 기록하는 등 경제체제의 불안정성을 보여주었음.

6. 중국의 체제이행과 정치적 조건

중국은 정치권력에 있어서의 주요한 변화가 경제개혁의 수준을 넘어선 체제이행을 가져온 전형적인 국가임. 제2의 자본주의노선가라는 지목을 받아 문화혁명의 피해자였던 등소평은 집권 후 자신의 권력을 유지, 공고화하기 위해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 문화혁명과 70년대중반까지의 정치적 혼란동안 중국의 엘리트계층은 경제정책의 근본적 방향수정에 대한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음. 무엇보다 이들 계층이 문화혁명의 주된 피해자가 되었기 때문이었음. 또한 군의 지지뿐만 아니라 더 이상의 혼란없이 경제성장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기 원하는 일반국민들의 경제개혁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여 등소평은 점진적인, 그란 뚜렷한 자본주의화를 모색했음.

즉 중국에서는 과거의 체제에서 탄압을 받았던 지도자의 경험, 권력계층의 개혁에의 지지, 일반민중의 실용주의 노선에 대한 열망 등이 어우러져 체제이행을 시도하게 되었으며 이는 가설 H1과 H4를 지지하는 사례로서 평가될 수 있음. 학자들은 중국은 붕괴없는 자본주의화에 성공했고 구소련은 실패했느냐를 두고 열띤 토론을 진행했음. 우선 점진적 이행론자들은 개혁이후 중국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의 점진적인 체제전환 정책에 기인한다고 주장함. 즉 점진적 자새적 사유화를 통한 비국유기업의 대량 창출, 국유기업간 그리고 국유기업과 비국유기업 간 경쟁의 증대, 시장경제식 인센티브의 부여 등 중국개혁의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중국의 체제전환을 성공시킨 주된 요인이라 주장함.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하나의 패키지로서 시장경제로의 이행이란 자본주의적 요소를 사회주의에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자체를 시장경제로 대체하는 것임. 즉 물질적 인센티브 제공, 시장의 확대 등 자본주의적 요소를 취사선택하여 사회주의에 도입하는 것은 경제개혁은 될 수 있겠지만 체제이행은 될 수 없음. 중국은 점진적이기는 하나 사유와, 경쟁의 촉진, 시장가격의 도입과 확산, 분권화, 계획의 포기, 물질적 인센티브의 도입 등을 일괄적으로 추구한 유일한 경우임. 특히 중국이 사회주의 내에서의 경제개혁을 넘어서 자본주의에로의 경제이행을 실행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앞에서 논의한 정치적 조건이 체제이행이라는 모험의 시도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임.

7. 사회주의 경제에서 여섯가지 주요한 경제개혁 사례의 공통적인 특징 

첫째 주요한 경제개혁 혹은 체제이행의 이전에 최고권력자의 변화가 선행되든지 아니면 일반대중의 무력 항거나 체제의 존립을 위협하는 외적 압력이 있었음.이러한 무력항거나 외적압력은 최고권력자의 권력유지를 위한 전략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임.

둘째 경제침체나 심지어는 경제 위기마저도 경제개혁의 선행조건을 아니라는 사실임. 이는 경제위기는 일반대중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독재정권 하에서는 핵심계층만 동요하지 않으면 최고권력자의 권력유지는 가능하기 때문임. 이는 사회적으로 최적인 상황과 독재자 개인에게 최적인 상황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

즉 민주주의에서는 유권자의 표가 중요하기 때문에 권력자는 국민다수에 영향을 미치는 경기침체나 경제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독재권력 하에서는 경제적 요인들이 대중의 무력 항거나 군, 엘리트 등 핵심계층의 동요를 통해 권력의 위기로만 연결되지 않으면 개혁의 중요한 이유가 되지 않음. 그러나 신경제정책의 도입에서 시사하는 것처럼 심각한 경제위기가 최고권력자의 권력유지 가능성을 저하시킬 때 이는 경제개혁을 촉진하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음.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최고권력자가 경제개혁을 넘어선 경제이행까지 추진한 예는 없음.

셋째 : 경제개혁의 강도는 최고 권력자의 구체제와의 단절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핵심계층의 지지가 높으면 높을 수록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임. 특히 중국의 경제개혁은 여기에다 일반 대중의 지지까지 더해져서 강력한 경제개혁을 시도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만들었음. 즉 구체제의 붕괴없이 자본주의로의 자연스로운 이행을 위해서는 H4의 가설이 시사하는 것처럼 경제이행과 자신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최고권력자의 등장과 아울러 일반대중과 핵심권력층이 그러한 변화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임. 

8. 북한의 변화와 정치적 조건

북한의 심각한 경제위기가 정치적 조건에 영향을 미쳐 경제개혁을 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음. 경제위기로 인하여 대중의 불만이 급증하고 사회적 동요가 심해지만 권력자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경제개혁을 시도할 유인이 증가하게 됨. 현재 북한의 여러 경제개혁 조치들은 권력자의 이러한 판단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음. 즉 현재 북한의 정치적 조건은 H2와 H3의 가설들이 시사하는 상태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음. 그러나 정치적 조건이 충족되어 개혁을 시도한 소련의 신경제정책에 비해 일반대중의 저항이나 핵심권력층의 이반의 강도는 낮은 것으로 평가됨. 따라서 경제개혁의 강도도 소련의 신경제정책보다 낮을 것으로 짐작됨.

8-1. 북한의 경우는 주요한 경제이행을 위한 정치적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을가?

북한은 정치권력의 단절을 경험하지 않았음. 그리고 핵심권력계층은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일반대중의 체제에 대한 저항은 소규모이거나 미미한 것으로 보임. 미국 등의 외적 압력이 있으나 그리 강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적 압력이 반드시 그들이 의도한 효과를 미칠지는 상당히 불확실함. 이런 관찰은 경제위가와 연결시켜 북한의 체제이행을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음을 시사함.

즉 북한의 정치적 요인을 고려할 때 북한이 사회주으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시도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게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보임. 즉 H4가설과 중국의 경험이 시사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경제이행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조건은 최고권력자, 핵심권력층, 그리고 일반대중의 이해관계가 밀접히 연관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현재 북한에서는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있음.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데에는 두 유형이 있음. 첫번째는 구소련, 동유럽의 경우처럼 사회주의의 붕괴 후 자본주의로 이행한 경우임. 이 경우의 공통된 특징은최고 권력자와 핵심 권력층은 이행에 반대,혹은 저항하였으나 밑에서부터의 선택과 요구에 떠밀려 자본주의에로의 이행이 시도되었다는 것임.

그리고 이행과정에서 최고권력자는 권력을 잃고 신변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음. 두번째는 중국과 같이 권력층이 자본주의에로의 이행을 결단한 경우임.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 중국은 사회주의 경제의 붕괴를 겪지 않고 자본주의로의 제체전환을 감행했음. 

8-2 북한경제는 거의 붕괴직전, 혹은 붕괴하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수준임.

따라서 북한권력자들이 스스로 자본주의에로의 이행을 시도할 것이라는 판단도 있음. 그러나 이러한 파단은 자본주의의 이행은 현재의 권력층의 이익에 부합되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음. 즉 김정일이 극단적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해왔던 김일성과 그동안의 자신의 지도이념을 부정하고 체제전환을 추구하게 되면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는 셈이 됨. 이는 틀릴 수가 없는 신과 같은 지도자 상을 주민들의 가슴 속에서 지워내는 위험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을 것임. 그뿐만 아니라 체제전환의 결과, 사회가 개방되고 경제가 개혁되면 현재의 권력층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세력들이 성장하게 될 것임. 북한주민들도 그들이 겪어왔던 고통이 김일성, 김정일 노선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이 직멶게 될 위협은배가될 것임. 현재 북한은 경제적 위기에 처해있지만 정치적인 위기는 겪지 않고 있음.

따라서 앞에서의 사례연구를 토대로 해 볼 때 북한이 체제개혁의 수준을 넘어서 중국식체제전환의 가능성은 대단히 낮은 것으로 평가됨. 북한이 2002년 경제개혁조치보다 진일보한 개혁조치를 펴고 있다고 보도한 언론내용을 보면 국정가격을 없애고, 기업이나 국영상점이 시장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며 중요기간 산업을 제외하고 기업의 생산과 판매를 기업의 자율에 맡기며 일정한 세금을 납부한 후 남은 이윤의 처분도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임. 또 원부자재의 구매를 계획이 아닌 현금거래고 가능하도록 원부자재 시장을 허용했다고 함. 이는 헝가리의 분분적인 가격자유화라는 시장사회주의적 개혁과 계획영영의 축소라는 소련 신경제정책의 요소, 원부자재 시장의 허용이라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개혁과 공통점이 있음. 

그러나 북한에서 시도되었거나 시도되고 있는 거의 모든 개혁은 구소련과 동유럽에서 시도되었으나 이 시도는 자체적인 체제전환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체제붕괴를 가속화시키는 경향을 보였음. 즉 자본주의는 패키지 전환을 요구하는 반면 사회주의 내에서의 개혁정책은 실물부분, 즉 산출량의 증가를 가져오지 못하여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함. 산출량의 지속적 증가는 중국에서와 같이 사유화와 전면적 개혁없이는 기대할 수 없는 것임을 구소련, 동유럽의 경제개혁 경험이 보여주고 있음. 특히 중국은 경제개혁을 도입할 당시인 1970년대 말, 농업인구가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였던 농업국가에서 체제전환을 시도했던 반면 북한은 현재 농업인구가 전체 인구의 40% 미만임. 이는 중국과 달리 농업에서의 부가가치 창출과 자본축적이 제한되어 있음을 의미함. 반면 공업 생산량의 증가를 위해서는 대규모의 투자가 요구되며 기존의 비효율적인 기업들이 퇴출되고 더 효율적인 새로운 기업들, 특히 사기업들이 성장해야 함. 그러나 문제는 현 체제하에서는 외부로부터의 대규모 자본유입이 어렵고 사유기업의 성장도 권력자의 체제전환에 대한 헌신이 없으면 기대할 수 없다는 점임.
 

8-3. 그러면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의 자본주의로의 전환없이 체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북한경제체제의 전환없이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체제지속 확률은 매우 낮음. 북한정권이 경제적 위기를 정치적 제체위기와 분리시키는 정책을 편다고 하더라도 위기가 지속되고 심화될수록 그러한 정책의 폭은 제한될 것이기 때문임. 예를 들면 북한은 소비재 부족, 재정적자, 인플레이션이라는 세 가지 북한경제의 주요문제 중에서 소비재 부족현상은 공급의 증가없이는 해결할 수 없으므로 소비재부족이 정권의 주요지지세력, 즉 핵심계층의 지지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그 개선을 포기할 각오를 하고 있을 수도 있음.

북한 정권은 이와 관련하여 핵심계층 이외의 인민들은 스스로 식량문제를 해결하라는 식의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러나 재정수입은 기간 및 국방산업의 지원 목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기업들의 번수입지표지표(번수입지표는 기업소에서 생산한 제품을 판매, 실현한 총수입에서 인건비를 제외한 생산비를 공제한 것을 말한다. 이 번수입에서 국가에 내는 세금성격의 국가기업 이득금이 지출된다.)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함. 또 인플레이션은 정권의 주요지지 세력인 고정수입자들의 생활을 위협하므로 정권유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음.

이는 북한에 상당한 기근이 있다 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붕괴로 이르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함. 그러나 재화부족 현상의 타개, 즉 공급의 증가 업시는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을 지속적으로 피할 수 없다는 것임. 이와 같이 경제적 위기는 정치적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경제적 위기가 깊어질수록 이 가능성은 더욱 증가될 것임. 특히 최근의 경제개혁은 북한주민들을 자본주의 정신에 더욱 노출시키고 자신의이익을 추구한다는 자본주의이데올로기를 당연하게 수용하는 결과를 낳을 것임. 즉 사회주의 이념이 밑에서부터 잠식되는 현상이 가속화 될 것임. 그러나 이 과정이 체제의 붕괴로 연결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음. 구소련이나 도유럽에서도 이미 1960년대부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비공식부문의 성장, 그리고 부패의 만연으로 인하여 확산되었지만 체제의 붕괴는 그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이루어졌던 것임.

9. 결 론 

북한의 현정권이 자본주의로의 체제이행을 시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음. 경제개혁의 정치적조건을 구상하는 세 요인, 최고지도자, 핵심지지층, 일반대중 모두에게 경제개혁의 정치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있는 까닭임. 이러한 상태에서 최근의 북한의 경제개혁 정책은 북한정권이 실제 일어나고 있는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하여 권력유지에 위해가 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경제현실화 조치로 평가됨. 북한이 중국의 자본주의화를 뒤따르고 있다는 주장도 근거가 매우 빈약함. 먼저 정치적 조건이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야 함.

중국은 최고권력자의 변화와 그 권력자와 자신의 헤게모니 강화를 위해 급진적 개혁을 추진할 필요성을 절감한 반면 북한에서의 급진적 개혁은 최고권력자의 권력유지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큼. 즉 독재자가 이타적 사회계획가가 아닌 이상, 사회가 바라는 것을 자신의 이익, 특히 자신의 권력유지와 신변의 위협까지 감수하면서 추구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경험적 사실에 비추어서도 맞지 않음. 또하 중국에서는 문화혁명의 피해자이었던 핵심지지층이 전폭적으로 등소평의 개혁을 지지한 반면 북한의 핵심지지층은 기존 체제의 수혜자임. 기득권자인 그들이 급진적 체제개혁 이후 패자가 될 가능성이 많음을 예상하면허도 개혁을 지지할 것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름. 북한의 현재까지의 개혁정책은 구소련, 동유럽에서 있었던 여러개혁 조치와 유사함. 비교적 그 강독 약한 개혁인 1965년 경제개혁의 요소부터 시작하여 헝가리의 신경제매커니즘이나 유고슬라비아의 자주관리경제체제와 같은 시장사회주의의 정책까지 포괄되어 있음.

그러나 결국 구소련과 동유럽의 국가들은 자발적인 경제이행에 실패했으며 이 정책들은 경제성장에 있어서도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음. 그 이유는 자본주의에로의 전환이란 사유화와 자유화를 축으로 하는 총제적 전환을 요구하는 반면 구소련, 동유럽의 경제개혁은 사회주의 체제내에서의 자본주의의 요소를 도입하는 혼합형 경제개혁이었기 때문임. 그러나 이러한 혼합형 경제를 채택하여 자본주의로 순조롭게 이행한 사회주의 경제는 존재하지 않았음. 북한도 이러한 겅혐의 법칙에 예외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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