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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김정일과 사진찍고 도강자 잡아 화선입당한 북한 경비대원이 중국에 노예로 팔려간 사연 

경비대원이 올해 4월 친척을 찾으러 갈 수 있게 도와주면 돈을 중국돈 5000위안을 주겠다는 말에 함께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인신매매꾼들에게 속아 노예로 팔렸갔다고 함. 국경경비대에서 10년만기 제대되었다가 올해 3월 전쟁이 난다며 부대복귀 명령이 내려져 함북온성 소재 경비대에 돌아갔음. 5월 정세가 완화돼 집에 가려고 함북 라남역에서 기차를 대기중 중국에 가도록 돠오주면 5000위안을 주겠다는 60대노인의 말을 듣고 대낮에 국경을 넘어 탈북. 인신매매꾼들이 두사람을 흑룡강성 탄광에 팔아먹었음. 1인당 몸 값이 2마위안. 너희들은 팔려온 노예라며 탄광에서 일을 시켰다고 함. 기회를 봐서 몰래 도망쳐 대도시 할빈에 나와 한국브로커를 만나 한국입국. 당시 김영남이가 보위부를 데리고 중국에 들어와 연변에서부터 색출소동을 벌렸음.

김정일과 사진찍고 도강자 잡아 전도유망했던 경비대원
2005년 5월 김정일이 나선주던 경비대 14여단방문시 모범훈련병 자격으로 김정일과 단독사진을 찍었음. 2006년에 27여단으로 갔다가 사관학교에 추천받아 2009년에 부분대장이 됐음. 2009년 12월 탈북하려던 일가족  4명을 잡은 공로로 화선입당하고 하사에서 중사로 진급, 분대장으로 승진했음. 하지만 직책이 올라갈수록 아침사업보고, 저녘사업보고를 해야 함. 당원된거 후회를 많이 했음. 당원인 분대장끼리 서로 모여서 당생활을 하는데 할 게 없어서 힘들었음. 전문학교에 추천을 받아서 나왔음.

청진에서 사리원까지 가는데 25일, 열차에서 굶어죽은 신혼부부
황해남도 옹진에서는 어머니가 딸을 잡아 먹어

올해 2월 1일, 제대명령을 받고 청진에서 나진-사리원행을 타고 갔는데 폭설이 내려 청진까지 가는데 열흘이 걸렸음. 전기가 없어 철도 정전시간은 새볔5시부터 오전 9시까지.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정전시키고 교대로 전기를 줌. 사리원까지 25일걸리면서 기차에서 굶어죽은 사람만 5명이었음. 사리원 여자, 남자가 결혼하러 가다가 굶어 죽었음. 사리원에 도착해서 군인숙박소에 가서 잣는데 냉방이어서 잠을 못잤음. 10년만에 황해도 옹진에 있는 고모집에 내려가니까 밥 한끼 해줄게 없어 눈물만 지었음. 보리에다 풀을 섞어서 먹었음. 250만원을 주었음. 돈은 있는데 금으로 재산을 갖고 있음. 2010년도 화폐개혁 때 100만원 두만강에 버 고모가 6명 있는데 돌아보니까 사는 형편이 막연함. 작년 12월에는 황해남도 옹진군 장성리에서 먹을 게 없어서 엄마가 제 딸을 잡아 먹었다고 함. 옹진군에 있는 집들이 내려앉기 직전임. 먹고 살기 힘든데 집을 언제 신경을 쓰기도 힘듬.

김정은이가 배급을 준다고 하지만 등치고 간 빼먹는다.

군량미를 작년 가을에 세대별로 100kg씩 걷어가더니 올해 2월에 세대별로 1인당 50kg씩 내라고 지시가 내려왔음. 세대에 4명~5명도 있는데 곱절로 식량을 뺏어가려고 이런 방법 생각해냈음. 배급을 주는 척 하더니 인민군대가 굶어 죽는다며 강제로 식량공출.기차 타고 가면서 보니까 함흥부터 역마다 철도수송이 안되니까 밭에서 거둔 식량을 모두 역전에서 오랫동안 놔두어 썩히고 있었음. 역전마다 벼를 말리느라 콘크리트에 내놨는데 벼가 새까맣게 변해있었음. 군대에서 해 먹는 밥에서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함. 전사아이들은 배가 고프니까 먹지만 고참들은 밥을 먹지 않음.

보위부로 넘어가면서 굶주리는 경비대

작년 4월부터 국경경비대가 무력부에서 보위부로 넘어갔음. 보위부로 넘어가면 모든 식량부터 부식물까지 자체로 해야 하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졌음. 또  250g씩 지급되던 간식도 중단됐음. 명절날 주는 고기공급도 중단됐음, 자체로 돼지와 염소를 길러서 고기문제 해결하라는 지시내려왔음. 국가보위부로 넘어가면서 군복이 위장복으로 변해 좋았지만 2년에 한번씩 공급함. 1년만 입으면 군복이 헌 옷이 되는데 국가보위부 후방부를 건설하면 해결해준다고 하지만 어렵다고 봄. 3~4년은 기다려야 부족한 물자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함.

인기있던 경비대 이젠 옛말얘기. 기피부대로 인력부족.
경비대에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인력부족을 겪고 있음. 한 개 소대인원이 원래 28명인데 현재는 20명도 안 됨. 20명이서 근무를 돌리려면 인력이 부족함. 군인 1명당 25KM를 담당하는데 많이 어려움. 순찰근무 4명, 보초장 근무 2명, 잠복근무 저녁 5시에 새벽5시, 겨울에는 저녘 5시에서 밤 12시에 끝남. 순찰근무가 돌고. 감시근무는 산봉우리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감시함. 핸드폰이란 자체도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유선전화를 사용함. 사회나가서 전화를 하면 체신소를 거쳐 대대에 들어감. 국경경비대 인기가 많았지만 현재는 인기가 식었음. 경비대원은 제대 후에도 처벌을 받기 때문임. 군복무시절에 넘겨준 탈북자가 후에라도 잡히면 조사과정에 어느 구간을 통해서 언제 탈북했는지를 알아내서 당시 근무일지를 찾아내 근무자가 제대했음에도 거주지까지 찾아가 체포해 감옥에 보냄. 경비대원들은 제대후에도 걱정을 많이 하면서 불안하게 살아감. 요즘은 부모들이 자녀를 국경경비대에 내보내려고 하지 않음.

아버지를 잡아 바치고 화선입당 한 경비대원

아들이 제 아버지를 잡았음. 2011년 11월. 평안남도가 고향인데 아버지가 중국 좀 다녀오겠다고 경비대원 아들을 찾아왔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직접 포승에 묶어가지고 부대에 데려갔음. 조국을 반역하는 반역자는 아버지라도 체포해야 한다며 부대에 인계했는데 경비대 모범사례로 20살의 나이에 입당을 하고 분대장까지 고속승진을 했음. 북한영화 민족의 태양에서 치안대인 아버지를 빨치산 아들이 권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이 있는데 경비대에 영화를 보여주면서 빨치산대원을 따라배우라는 교양을 많이 함. 전체 경비대원들 앞에서  토론을 했는데 “나의 아버지이지만 최고사령관동지를 배반하고 당과 조국을 배반하고 도망가는 자들은 용서할 수 없었다”고 했음. 27여단 1대대 1중대 3소대에서 실제로 있은 일이라고 함. 2012년에는 회령에서 자기 고모를 잡아서 넘긴 경비대원도 있음. 11대대까지 있었는데 회령이 2연대, 무산이 3연대, 샛별이 1연대, 온성.은덕대대와 샛별대대는 여단직속임.

국경경비 강화 위해 여단산하에 연대조직

작년 12월에 여단 산하에 연대를 만들었음.원래는 여단 산하에 11개 대대로 구성됐는데 3개연대로 조직개편을 했음. 1대대지휘부가 온성에 있고 2연대 지휘부가 무산에 있고 회령에 2연대가 있음. 27여단은 청진 신진동에 있음. 여단장은 직급이 소장이고 여단정치부장이 대좌, 참모장도 대좌임. 국경은 막기 힘들다고 봄. 국경연선에 철조망 친다는 말은 통신선을 땅에다 20CM높이로 낮게 4줄로 설치했는데 그것을 철조망으로 오해하고 있음. 명절 전후 3일 일주일에 근무가 강화됨. 분대장들까지 나가서 근무를 서게 됨. 지휘관들이 순찰을 함. 잠복초소와 잠복초소 사이가 150메터임. 밤에는 10메터도 보기 힘듬. 잠복초소 중간에 모닥판을 설치했음. 경비대군인들이 모닥에 찔리는 경우가 있음. 함정은 2메터 이상인데 함정안에다가 죽창을 빼곡이 박아놔 빠지면 찔려 죽게 만들었음. 그리고 가시방망이를 사방에 매달아 사실상 지뢰만 없을 따름이지 위험한 지역임. 또 쥐덧, 실선 등을 보이지 않게 설치해서 경보장치와 연결했음. 근무나가서 담배도 못 피우고 전지불도 못 가져감.

중국군에 조롱당하는 북한경비대

2011년 겨울에 두만강 수색을 나갔다가 통돼지 한 마리가 두만강 얼음판 위에 있어서 소대에 가져왔는데 중국변방대 군인들이 대형확성기로 “북한군 거지들”,“병에 걸려 죽은 돼지도 처먹냐”라고 하면서 비난했음. 사진까지 찍어서 풍선에 매달아 우리 측으로 보냈음. 여단지휘부에 보고돼 소대장이 11구류에 들어갔음. 열하루동안 앉아만 있는 고통스러운 고문임. 누우면 금을 그어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함. 군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11일 구류임. 중국애들은 북한경비대가 잘 먹지 못하고 거지 같다고 계속 시비를 걸어옴. 심심하니까 고무풍선에다 쪽지를 써서 날려보내고 기구에다가 옷가지들을 매달아서 보내기도 함. 그러다가 경비대원이 중국땅에 넘어가면 중국변방대 군인들이 죽도록 매를 때려서 돌려보냄. 작년 1월에 우리분대 전사가 중국에 넘어가 잡혔는데 전기곤봉에 매를 맞아서 장애인이 되어 제대가 됐음. 그래도 중국에 말 한마디 할 수 없음. 경비대 군인들은 중국군인들에게 적대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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