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노동당 1비서의 생모 고영희가 과거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시절 자기를 구박했던 예술단 간부를 김정일에게 고자질해 지방으로 쫓아낸 일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희의 만수대 예술단 시절의 행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대북소식통은 최근 “고영희가 무용수 시절 일본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구박을 많이 받았다”며 “김정일의 부인이 된 후 자기를 괴롭힌 간부를 쫓아냈다”고 증언했다.
고영희는 1952년 6월 26일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나 10살 되던 해인 1962년 부모를 따라 북한으로 들어갔다.당시 수많은 재일 교포들이 북한 정권의 선전에 속아 북송선을 탔다. 그러나 이들 중 북한의 비참한 현실에 충격을 받아 북한 당국에 불만을 표현했던 상당수는 정치범수용소에 재판도 없이 수감되거나 산간오지로 추방됐다. 그들은 일본의 간첩이라는 오해와 ‘쪽바리’,‘째포’로 불리며 북한에서 2등국민 취급을 받았다. 고영희 가족도 차별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영희의 예술단 활동은 이 때문에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어눌한 발음에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데다 동작이 느려 예술단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영희는 단체무용조에 소속돼 훈련을 받았다. 일체성을 요구하는 단체무용은 한사람이 잘못하면 집단 체벌을 받는데 실수가 잦았던 고영희 때문에 동료들까지 벌을 받았다.
고영희를 제일 심하게 구박한 사람은 당시 만수대예술단 부총국장이던 송영철이다. 송영철은 2번이나 김일성을 접견한, 당시 잘 나가는 예술가였다. 단체무용을 담당했던 그는 단원들에게 엄격했고 요구 수준이 높았다. 한명이라도 동작이 틀리면 단체로 체벌을 줬고 고쳐질 때까지 반복동작을 시켰다. 화가 나면 욕설을 퍼붓고 폭력까지 행사했다.
고영희는 송영철에게 특히 많이 맞았다. 송영철은 고영희가 실수할 때마다 뺨따귀를 때리거나 북채로 머리를 때리면서 “돌대가리 같은 째포간나”라고 욕을 했다고 한다. 고영희가 동작을 틀리는 날이면 무용팀 전체가 귀가하지 못하고 반복훈련을 해야 했다. 송영철의 압박과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에 무용팀의 미운 오리가 된 고영희는 여러번 예술단을 그만둘 생각을 했다. 이런 어려움에 처한 고영희를 구원해 준 것은 김정일이었다.
만수대예술단을 방문해 무용을 관람한 김정일은 고영희가 제일 세련돼 보이고 춤을 잘 춘다고 칭찬했다. 지도자의 칭찬 한마디에 고영희의 운명이 바뀌었다. 더는 욕 먹는 일이 없어졌고 무명에서 단번에 주연급 스타로 떠올랐다. 공훈배우가 됐고 화보에도 자주 등장했다. 그 후 김정일은 고영희가 출연하는 공연이 없어도 예술단을 찾아와 고영희의 훈련모습을 지켜보군 했다.
김정일의 관심을 받으며 ‘귀한 몸’이 된 고영희는 1975년 만수대예술단에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김정일과 본격적인 동거를 시작한 것이다. 고영희가 사라지고 1개월 후 만수대예술단 부총국장 송영철은 영문도 모른 채 직위에서 해임되고 평안남도 안주탄광의 보일러공으로 추방됐다.
김일성과 기념사진을 2차례나 찍은 접견자에다 고위층과의 인맥이 두터웠던 송영철은 어떻게든 복귀해 보려고 여기저기 청탁을 넣었다. 그러나 평양에서 고위간부로 있는 친구로부터 “너 이xx.그러게 고영희는 왜 때렸어? 지금 지도자 동지의 부인이 됐다. 넌 평생 거기서 썩어라. 나도 어쩔 수 없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친구의 얘기인즉 김정일에게 시집간 고영희가 만수대예술단 시절 자기를 괴롭혔던 송영철을 고자질했고 김정일이 당장 그놈을 쫓아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자기가 쫓겨난 이유를 알게 된 송영철은 복귀를 포기하고 평생을 고영희에 대한 분노를 안고 탄광 보일러공으로 살았다. 2009년 퇴직한 송영철은 평안남도 안주시의 길거리에서 우산 수리와 구두닦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2012년 어느날 송영철은 동업자의 집에서 우연히 고영희 관련 우상화 기록영화 ‘선군조선의 어머니’를 보게 되었다. 고영희의 얼굴을 본 송영철은 수십년간 쌓인 분노가 치밀어올라 동업자에게 “저 고영희 돌대가리 같은 x 때문에 내 일생이 이렇게 됐다”며 비난했다.
송영철의 통해 김정은의 생모 이름이 고영희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동업자는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었다. 송영철은 “고영희는 만수대예술단에서 무용할 때 머리가 둔해서 나한테 참 많이도 맞았다. 쟤 때문에 내가 평생을 보일러공으로 썩었다. 김정은이 얼굴을 보니 에미를 닮아 우둔해 보인다”며 자신의 스토리를 얘기했다. 그 후 술만 마시면 고영희를 비난하던 송영철은 평안남도 안주시 보위부에 체포돼 비밀처형됐다고 한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