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20일 3년4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금강산호텔은 이산가족 300여명이 쏟아내는 60여년 설움으로 울음바다가 됐다. 딸을 만난 어머니는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했고, 남북의 형제·자매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93세 아버지 "죽지 말자"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온 박운형(93)씨는 북한에 두고 온 딸 명옥(68)씨와 두 여동생을 만났다. 헤어질 때 다섯 살이었던 딸은 어느새 칠순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돼 있었다. 박씨는 딸의 손을 꼭 붙잡고 "통일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죽지 말고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1·4 후퇴 때 남으로 내려와 아들이 태어난 줄도 몰랐다던 강능환씨는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을 한눈에 알아봤다. 강씨는 "늙었구나. 한번 안아보자"며 난생처음 보는 아들을 얼싸안고 한참을 울었다.

20대에 헤어져 생사도 몰랐던 남측 강완구(81)씨는 형 정구(86)씨를 60년 만에 서로를 안고 오열했다. 경기도 연천군 휴전선 인근에 살았던 이 형제들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동생은 국군으로, 형은 인민군으로 징집됐다. 전쟁 탓에 형제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9월에야 서로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영실(여·87)씨는 어렵게 금강산까지 갔지만 치매로 64년 만에 만난 북측의 딸을 알아보지 못했다. 딸 명숙씨가 "엄마랑 나랑 서로 보고 싶어서 찾았잖아요"라고 말했지만, 이씨는 계속해서 "예. 그래요"라고만 대답했다. 명숙씨가 계속 귀에 대고 말을 해도 이씨는 딸을 알아보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남측 동반 가족인 딸 성숙씨는 북측 가족에게 "치매가 많이 진행돼서 잘 모른다"고 설명했다.

김영환(89)씨는 60여년 만에 북한에 두고 온 아내 김명옥(86)씨와 만났지만 미안함 때문에 말을 하지 못했다. 김씨는 전쟁이 끝나고 남한에서 새로 가정을 꾸렸지만, 부인은 북한에서 홀로 아들을 키웠다고 했다. 북측 아들은 "어머니가 귀가 안 좋다"고 했다.

이날 김섬경(91)씨와 홍신자(83)씨는 구급차를 타고 금강산에 갔다. 김씨는 "금강산에서 죽더라도 아들과 딸을 만나겠다"고 했다. 김씨와 홍씨는 구급차에서 북측 가족을 만났다. 김씨와 홍씨는 건강상의 문제로 21일 오전 개별 상봉만 마치고 구급차로 귀환하기로 했다.

◇6·25 납북자 가족도 이복형제 만나

이날 상봉에서는 6·25 전시 납북자 3명(사망)의 남측 가족도 북측의 이복동생 등을 만났다.

전시 납북자 가족인 최병관(67)씨는 "인민군 의용군으로 끌려간 아버지 소식을 전혀 몰랐는데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북에 이복동생들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며 "어머니는 재혼하셨지만 아버지 원망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상봉장에 들어선 최씨는 북한의 이복동생 병덕(46), 경희(여·55)씨와 얼싸안고 흐느꼈다. 동생 병덕씨는 북에서 가져온 가족사진을 형에게 내보이며 가족을 소개했다. 병관씨는 "그래도 이렇게 사셨으니까 외로움이 덜했을 것"이라며 "이런 가정을 꾸리지 못했으면 얼마나 외로웠겠나"고 했다.

아버지가 의용군으로 끌려간 최남순(여·64)씨는 북측의 이복 남매를 만났지만 진짜 가족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최씨는 상봉 전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어머니는 그동안 다시 결혼을 안 하시고 아버지가 어딘가 살아계실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북측에서 온 이복동생 세 명과 마주한 최남순씨는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북에서 온 이복동생 최경찬(52), 경철(45), 덕순(55)씨가 아버지 사진을 건네고 아버지 얘기를 했지만, 자신이 알던 아버지 모습이나 사연과 달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씨는 "이렇게 만났으니 의형제라고 생각하고 상봉 행사가 끝날 때까지 같이 만나자"고 제안했고, 북측 상대 3명도 "예" "예"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일부 북측 가족들은 체제 선전성 발언을 많이 했다. 김철림(94)씨의 북측 여동생은 "장군님이 우릴 데려왔다. 이게 다 장군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이라고 했다. 손기호(91)씨의 북측 딸은 "우리 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 민족끼리 통일해야 한다"고 했다. 일부 북측 가족들은 북한에서 받은 훈장과 선물 명세를 가져와 자랑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SITE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