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청년대장의 노래' 2009년 2월부터 공개. 국정원에선 홍보 노래 나올 때 김정은이라고 평가.
김정일 쓰러진 상황에서 방침이 계속 안 나왔고, 조금씩 건강 문제가 내부적으로 이슈가 됐다. 김정일 자체가 예민한 사람이어서 아프고 나선 여러가지로 혼선이 많았다. 20일 동안 김정일의 방침이 내려오지 않으면서 지방 간부들도 알게 됐다. 김정은 후계로 추대하는 것도 상당히 예민해서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김정일이 2008년 아팠다가 처음 요양 나와서 축구경기를 보는데 선수들이 김정일이 온 걸 모르고 축구 하다가 서로 욕을 했다. 김정일이 그걸 보다가 짜증이 나서 "축구는 발로 하는 거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김정일 왔다고 알려줘라"고 말했다. 앓는 사람이 밖에 나오니 신경질이 나고 트집 잡은 것이다.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근로단체부가 비상이 걸려서 동원됐고 결국 대학 책임비서는 다 잘렸다. 나라가 방침에 따라 굴러가다가 김정일이 아프고 나니 혼선이 많이 생겼다. 오늘은 하라고 했다가 내일은 하지 말라는 식으로 엉망이 됐다. 김정은에 대한 선전도 김정일에게 후계자 선전을 하겠다는 얘길 못했다. 당시 김평해가 평북도당 책임비서였는데 후계자 문제를 김정일에게 가장 먼저 건의했다. 장성택이 했다고 하는데 김평해가 했다. 당과 군대 인민들 원하니 김정은을 후계자로 추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김정일에게 올렸는데 그 기안자 이름이 김평해였다. 김정은 발걸음 노래 보급할 때 휘파람 처럼 흥얼흥얼 거리도록 해라고 지시했다. 노래를 당간부들부터 먼저 불렀다. 김정일 막판에 지방 간부들 못 챙긴 걸 안타깝게 여겼다. 그때 실권이 중앙간부에서 지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넘어갔다. 자강도당 책임비서였던 박도춘도 그때 치고 올라온 것이다. 최룡해 황해북도당 책임비서, 태종수 함경남도당 책임비서들을 많이 챙겨줬다. 2009년 10월에 김영춘, 김격식,김일철 3명이 지위가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