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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이번 방중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면서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와 미국 등 국제사회가 생각하는 비핵화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 드러났다. 중국 매체들의 발표에 따르면 김정은은 “한국과 미국이 나의 노력에 선의로 답해 평화·안정의 분위기를 만들고 평화 실현을 위해 단계적 동시 조치를 취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계적 동시 조치는 비핵화 과정을 여러 단계로 나눠서 한미의 양보와 보상을 받아낸다는 것이다.

북핵 폐기에 결국 실패했던 과거 6자회담의 ‘행동 대 행동’과 비슷한 논리다. 이는 리비아식 핵폐기 방식을 거론한 미국의 입장과 차이가 크게 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을 허락한 것은 톱다운 방식으로 빠른 시일에 핵폐기를 완성하겠다는 것인데 북한의 단계적 조치는 그야 말로 ‘비핵화’에 원론적인 합의를 한 뒤 그 이행 과정을 핵 포기 의사 천명, 미사일 모라토리엄, 핵시설 동결, 사찰 수용, 핵 폐기 등으로 최대한 나누고 단계마다 경제 지원과 체제 보장 조치 등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즉 이런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북한의 핵 개발에 시간만 벌어줄 위험성이 포함돼 있다.  북한은 과거 비핵화 협상 때마다 단계적 해결 방안을 내세워 왔다. 북한이 한 단계씩 비핵화 관련 조치를 할 때마다 한·미가 즉각적으로 보상을 제공하는 ‘행동 대 행동’ 방식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9·19 공동성명이나 2·29 합의 모두 북한의 합의 파기로 실패했다. 북한은 2003년 8월 북핵 6자 회담이 개시될 때부터 ‘동시 행동’ 원칙을 주장했다. 미국의 북한 체제 보장, 경제 지원이 북한의 핵 포기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선(先) 핵폐기’를 요구하자 북한은 “동시 행동이 아니면 행동 대 행동도 가능하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지만 북한이 핵 신고서 검증 조치를 거부하면서 실패했다.

 이어 모든 6자회담 합의 사항의 파기와 핵시설 원상 복구를 선언했다. 2009년 4월 장거리미사일 발사,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했다. 2012년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는 대가로 미국이 식량 지원을 하기로 한 2·29합의도 북한의 합의 미이행으로 깨졌다. 북한은 그해 4월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하고 장거리 로켓을 쏘아 올린 뒤 헌법 전문에 핵 보유국임을 명시했다. 이듬해 2월엔 제3차 핵실험을 했다. 미국은 이후 ‘단계적 동시 조치’는 북한에 시간만 벌어줄 뿐 비핵화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 같은 김정은의 구상은 비핵화와 종전 선언, 평화 체제 등을 일괄 타결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대북 해법과 간극이 크다. 또 리비아식의 선(先)비핵화를 원하는 미국과도 정면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김정은이 ‘평화·안정 분위기 조성’과 ‘선의의 응답’을 언급한 것은 먼저 한·미에 연합 훈련 중단이나 대북 제재 완화 등을 요구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또 북한의 ‘단계적’ 방식은 남북, 미·북, 남·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일괄 타결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구상과도 다르다.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하나씩 푸는 방식이 아니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終戰)선언, 평화협정, 제재 완화 등을 한꺼번에 풀겠다는 취지와도 다른 것이다. 김정은의 구상은 중국이 주장해 온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군사훈련 동시 중단), ‘쌍궤병행’(북한의 비핵화와 평화협정 협상 병행)과 유사점이 있지만 6자회담 개최 등 구체적 핵 폐기 방법을 두고 이견(異見)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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