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주째 한·미를 향해 종전(終戰)선언 채택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미국은 종전을 선언하는 데서 마땅한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종전선언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첫 공정이며 북미 간 신뢰조성을 위한 필수적 요구라는 것이다. 종전선언은 전쟁 당사국 간에 전쟁상태가 완전히 종료됐음을 확인하는 공동의 의사 표명이자 국제사회에 공표하는 행위로 평화협상을 위한 전 단계다. 즉, 종전을 선언한다는 것은 기존의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전선언 체결은 4·27남북정상회담과 6·12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도 포함됐다. 이 때문에 북한은 미국이 제공할 체제안전 보장 방안으로 종전선언을 첫 시발점으로 보고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비핵화 진전 없이는 종전선언도 어렵다’며 북한의 책임 있는 비핵화 후속조치 이행을 우선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한국이 미국에 종전선언을 요구하려면 최소한 북한에 대해서도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압박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북미 간 비핵화와 종전선언 문제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한반도 정세국면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종전선언 문제가 속도를 내지 못하자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직접 중재자 역할에 나섰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5일 기자들과 만나 “가급적 조기에,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하는 게 우리 정부의 바람”이라며 “형식, 시기 모두 다 열어놓은 상태로 논의를 관련 당사국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종전선언이 남북 간 합의한 사항으로 연내 조기 추진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연내 종전선언은 4.27 남북정상회담 결과물인 판문점 선언에도 명시된 만큼, 문 대통령은 이를 일관되게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5월 27일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도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이 추진됐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드러낸 바 있다.
종전선언에는 중국도 참여할 전망이다. 정부는 이르면 8월 안에 남·북·미·중 4자가 ‘종전(終戰)선언’을 채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반도 영향력 약화를 우려한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주요 당사국이자 정전협정 서명 당사국으로서 계속 마땅한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중국을 배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종전선언에 중국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북한 요청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부장 겸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가 25일 평양에 도착한 것도 종전선언에 중국이 참여하는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도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에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비핵화에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대북 군사 옵션 포기를 뜻하는 종전선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미국 조야의 우려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중국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 것은 북한 체제안전 보장의 정치적 부담과 책임을 중국과 분담하는 게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9월 하순 유엔 총회를 염두에 뒀던 정부가 종전선언 시기를 당기려는 시도는 무엇보다 교착 조짐을 보이는 북미 협상에 동력을 불어넣는 일이 시급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정권 수립 70주년인 9월 9일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북한으로서도 9월 종전선언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북한이 최근 반대급부로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서해위성발사장)과 평양 인근의 미사일 시험장에대한 폐쇄 조치를 시작한 정황이 포착되는 만큼 조기(早期) 종전선언에 북미가 공감대를 형성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정전협정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7·27을 전승절로 기념하면서도 미국에 대한 비난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외교가에선 남·북·미·중 외교장관이 모이는 내달 초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4자 간 실무 조율이 이뤄질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비핵화 이전 종전선언부터 하는 것은 한국의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에도 先 종전선언 및 後 비핵화 조치의 순서를 두고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3자 또는 4자 정상의 종전선언을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간다’고 밝히자 당시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종전을 선언하려면 여러 조치와 정치·군사·법적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며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반대했다. 미국 부시 행정부도 “북핵이 폐기된다면 평화협정 체결, 종전이 가능하다”며 평화협정과 분리된 종전선언에 반대했다.
현재는 북핵 위험이 11년 전보다 강해졌고,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먼저 추진할 경우 대북 군사압박과 군사옵션 사용 등 대북군사 압박이라는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즉 미국이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아무리 법적 효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 할지라도 종전과 평화체제에 대해 국제적으로 약속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시행하기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무거운 짐을 털어 버리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다음으로 종전선언을 할 경우 북한의 유엔군사령부 해체와 미군철수 주장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멘토들인 문정인 특보와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이 이미 그러한 주장을 한 바 있다. 유엔군 사령부는 6·25전쟁 때문에 생겨난 조직이고 주한미군도 유엔군의 자격으로 주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요코스카의 미 7함대사령부 등 핵심 주일기지들도 유엔사의 후방기지로 사용하는 법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결국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당연히 유엔사의 존재 이유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NLL도 유엔사가 그은 해상경계선이다. 북한은 당연히 “종전이 되었으니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라 요구할 것이고 더불어 유엔사가 그린 NLL(북방한계선)도 무효”라고 주장할 것이다.
북한은 전략국가론을 내세우며 은근히 핵보유국의 지위를 과시하고 있다. 재미 친북학자 한호석 박사는 최근 조선반도 비핵화는 핵페기가 아닌 핵군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북한의 CVID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종전선언을 해 버리게 되면 우리의 국방력 이 약화될 우려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