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1일 0시 13분(현지 시각) 베트남 하노이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라며 "구체적으로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17년 채택된 5건"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날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배경과 관련, "북한은 모든 제재의 해제를 원했다"고 밝힌 지 10시간 만에 이를 반박한 것이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북한이 전면적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이라고 전날 발표를 재확인했다.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도 필리핀에서 "나는 그들(북한)이 말장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5개 제재는 대북 제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제재"라고 했다. 북한이 미국에 회담 결렬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제재 해제의 범위를 자신들의 실제 요구보다 축소해 여론을 호도한다는 지적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월 28일 오후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전용차를 타고 하노이 숙소로 돌아가면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이날 회견에서 "국무위원장 동지(김정은)께서 앞으로 조(북)·미 거래에 대해 의욕을 잃지 않으시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또 이날 오후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의 거래 계산법에 대해 굉장히 의아함을 느끼고 계신다"며 "이런 회담을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외교가에선 "미·북 간 대화가 당분간 재개되기 힘든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리용호가 언급한 결의 5건은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본격화한 북한 핵·미사일 폭주에 대응해 안보리가 구축한 고강도 대북 제재망의 골간을 이룬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이 5건이 전체 제재(효과)의 99% 이상"이라고 했다.
리용호는 또 "미국 측은 영변 지구 핵 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며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미·북 정상회담 핵 담판을 결렬시킨 뒤 귀국길에서 "미국은 갈등을 추구하지 않지만 만약 우리 자신을 방어해야 할 상황이 된다면 우리는 싸울 것이고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8일(현지 시각) 하노이 정상회담 후 워싱턴DC로 귀환하는 도중 급유하느라 들른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미군 기지에서 장병에게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알래스카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미국으로 발사할 경우 중간에서 격추하는 역할을 하는 군사 요충지다. 이에 대해 AP통신은 "북한을 대놓고 지칭하지 않았지만 (북한을 포함한) 미국의 적들에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 내부에서 '대미 협상 회의론'이 급속히 커지는 분위기다. 북한 외교 수장인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 1일 새벽과 오후에 걸쳐 작심한 듯 내뱉은 말들이 이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최선희는 리용호가 이날 새벽 긴급 소집한 기자회견이 끝난 뒤 "(우리의) 제안을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이라며 "이런 기회가 다시 미국 측에 차려지겠는지(마련될지) 장담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어 "미국 측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김정은)께서 앞으로의 조(북)·미 거래에 대해서 좀 의욕을 잃지 않으셨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최선희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회담이 어렵겠다'는 김정은의 육성(肉聲)을 전달한 것"이라고 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 3월 1일 새벽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선희는 이날 오후 숙소에서 다시 한국 기자들을 만나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의 거래 방식, 거래 계산법에 대해 굉장히 의아함을 느끼고 계시고 생각이 좀 달라지신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런 회담을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신년사로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상응 조치가 없으면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입장도 표시했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뭐가 돼도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핵개발을 앞세운 강경 노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다. 그는 "우리 딴에는 최상의 안을 내놨다고 생각했는데 잘 안 됐다" "(미국에서) 잘못된 화답이 왔다"고도 했다.
앞서 리용호도 이날 새벽 기자회견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5건의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해제를 맞바꾸자'는 자신들의 대미(對美) 제안에 대해 "현 단계에 우리가 내짚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라고 했다. 이어 "이런 원칙적 입장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 미국 측이 협상을 다시 제기해오는 경우에도 우리 방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영변 핵 폐기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마지노선임을 강조하며 배수진을 친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수주 내 실무 협상이 재개되지 않으면 협상의 동력 자체가 상실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다만 북한이 미·북 협상의 판을 완전히 엎었다고 보긴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전방위 국제 제재에 난타당한 북한이 제재를 해제할 유일한 수단은 미국과의 협상뿐"이라며 "일종의 블러핑(거짓 베팅)일 수 있다"고 했다.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열린 양측 기자회견에선 회담 핵심 의제였던 '대북 제재'에 관한 입장 차가 확연히 드러났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한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를 놓고 '일부 해제다'(북한)와 '그 정도면 전면 해제다'(미국)는 입장으로 나뉘어 공방을 벌이는 형국이다.
리용호는 1일 새벽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요구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 ~2017년 채택된 5건, 그중에 민수(民需)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북한이 전면 해제를 주장했다"고 재반박했다.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도 북측의 요구를 '말장난'으로 규정하며 "북측이 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무기를 제외한 모든 제재를 아우르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북한이 이런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는 영변 단지 일부의 폐쇄였다"고 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통 크게 하라. 올인하라"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는 2006년 7월(1695호)부터 2017년 12월(2397호)까지 총 11건이다. 종전엔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물품 수입 금지 같은 '한정적 제재'에 머물렀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이어진 2016년부턴 북한 경제 자체를 봉쇄하는 '포괄적 제재'로 강력해졌다.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채택된 안보리 결의 2270호(2016년 3월)에선 북한의 최대 수출 품목인 석탄을 비롯해 철·철광 등과 관련해 '민생 목적'을 제외한 수출이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이후 5차 핵실험 후 채택된 2321호(2016년 11월)는 석탄 등 수출 제한을 대폭 강화했고, 2371호(2017년 8월)에서 이를 전면 제한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2375호(2017년 9월)는 유류 공급 제한이 핵심이다. 대북 유류 공급 30% 감축과 함께 대북 투자·합작사업을 금지했고, 북한의 대표 수출품이던 의류 완제품 수출도 막았다. 북한의 화성 15호 시험 발사의 대응 조치인 2397호(2017년 12월)는 대북 정유 제품 공급량의 연간 상한선을 200만 배럴에서 50만 배럴로 감축했고, 해외 파견 노동자의 24개월 이내 송환 등을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북한은 지난해 대중(對中) 수출이 88% 급감했다. 일반적 무역까지 불법화한 초강력 제재였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리용호는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취해나가는 데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안전 담보 문제이지만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제재 해제 요구를 '미측을 배려한 양보'라고 한 것이다. 리용호는 또 "안보리 제재 5건도 100%가 아니라 군수용을 제외한 민수·민생용만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이 역시 '아전인수식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안보리 결의 2270호의 경우, 북한산 석탄 등 수입을 금지하면서 '민생 목적'은 예외로 규정했었다. 하지만 중국·러시아가 이런 예외 규정을 들어 북한산 석탄 수입을 오히려 더 늘려 '제재의 구멍'으로 악용됐다. 특히 북한의 '돈줄'이자 주요 제재 품목인 석탄·석유 등 물자,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가 본국으로 보내는 임금 등은 민수·민생 용도인지 군사적 용도로 쓰이는지 감시하기 어렵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 경제 특성상 석탄·석유 등 각종 물자를 민수용·군사용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며 "북은 사실상 대북 제재의 99% 해제를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28일 미·북 정상회담 결렬 11시간 만에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날 오후 11시 20분쯤(현지 시각) 김정은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 호텔 앞에 대기하던 본지 취재진 등 각국 기자 10여 명은 북측이 곧 '긴급 기자회견'을 열 것이란 소식을 들었다. 곧이어 북측 관계자가 나와 신원·소속 등을 확인한 뒤 한 명씩 호텔로 들여보냈다.
호텔 1층에 마련된 회견장엔 참석 인원이 약 40명으로 제한됐다. 0시 13분쯤 회견장에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나타났다. 리용호는 A4 용지 두 장짜리 입장문을 꺼내 굳은 얼굴로 한 문장씩 읽어내려갔고, 옆에 선 남성이 영어로 통역했다. '북한이 전면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을 정면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리용호가 약 7분간의 입장문 발표를 마치고 일어서자 기자들 질문이 쏟아졌다. 리용호는 최선희를 향해 "질문 좀…"이라고 말한 뒤 회견장 밖에서 기다렸다. 최선희는 세 걸음 앞으로 나와 몰려든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최선희는 "미측이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이라며 "우리는 인민 생활, 경제 발전 관련 사항들의 해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긴장한 듯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언급하면서 "2270호, 2375호, 2…"라며 더듬기도 했다.
북한에서 사망한 오토 웜비어 등 인권 문제에 관한 질문엔 "회담 관련 질문만 해달라"며 답하지 않았다. 회견 후 본지 기자가 북측 관계자에게 '기자회견이 위원장 지시였느냐'고 묻자 "우린 모든 것이 다 (위원장) 지시"라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튿날인 1일 오후 3시(현지 시각)까지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의 멜리아 호텔에 머물다 약 26시간 만에 밖으로 나왔다. 당초 다음 날 오후까지 진행될 예정이던 베트남 공식 친선 방문 일정은 대폭 축소해 귀환 일정도 앞당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중심지(하이퐁)와 관광 명소(할롱베이) 시찰 계획도 거론됐으나 미·북 정상회담 결렬 후 취소된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선 "김정은이 의욕을 상실한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1일 오전 9시 하노이 시내 동다 지역의 '베트남·북한 우정 유치원'. 얼굴에 베트남 국기와 인공기를 그린 아이들이 한복 차림을 하고 아리랑 반주에 맞춰 공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 유치원은 1978년 베트남이 북한의 원조를 받아 세웠다. 김일성 이름을 딴 학급이 있는 등 오랜 사회주의 우방인 베트남과 북한의 친선 관계를 상징한다. 미·북 정상회담지로 하노이가 결정된 이후 김정은이 이 유치원을 '깜짝 방문'할 것이란 관측이 파다했다. 유치원 관계자도 "공식 통보는 없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나 수행 간부들이 찾을 것이란 기대가 크다"고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이날 이 유치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오전 내내 호텔에 머물던 김정은은 오후 3시 30분 주석궁 앞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왔다. 이때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환영식에 참석한 뒤 국기를 흔드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약 15분간 의장대를 사열(査閱)하는 동안 지친 듯 굳은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 이어 진행된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과의 양자 회담에서 김정은은 "우리 활동을 위해, 우리 편의를 위해 성심성의껏 모든 것을 다해 보장해준 데 대해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일 오전에 잡혀 있던 베트남 권력 서열 2위 응우옌쑤언푹 총리, 서열 3위 응우옌티낌응언 국회의장과의 면담은 이날로 앞당겼다. 오후 6시 30분부터는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베트남 정부가 마련한 환영 만찬에 수행단과 함께 참석했다. 이날 김정은은 최소한의 필수 일정만 외부에서 소화하고 나머지 시간은 호텔에서 보냈다.
앞서 김정은을 수행 중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이날 새벽 긴급 기자회견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을 언급하며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김정은)께서 앞으로 조(북)·미 거래에 대해 의욕을 잃지 않으실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하노이 현지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측은 2일 오후로 예정됐던 김정은의 평양 귀환 일정도 오전으로 앞당겼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2일 오전 전쟁 영웅, 열사 기념비와 호찌민 전 주석의 묘에 헌화한 뒤 10시쯤 중국·베트남 접경인 랑선성 동당역에서 전용 열차를 타고 북한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북한 대표단 일부가 지난 27일 관광지 할롱베이와 산업단지 하이퐁을 방문함에 따라 김정은도 이 지역들을 방문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8일 회담 결렬 후 베트남 정부는 "(김정은의) 공식 친선 방문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꽉 찬 이틀'로 예정됐던 공식 일정은 만 하루도 되지 않아 끝나게 됐다. 김정은이 55년 만에 이뤄진 베트남 공식 친선 방문 일정을 대폭 축소한 것은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의 충격 탓으로 분석된다. 대북 소식통은 "국내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과감한 제재 해제를 얻어내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김정은의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매체들은 1일 미·북 정상회담 결렬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채 회담의 긍정적 의미만 보도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이번 회담은 양국 관계와 한반도 및 세계 평화와 안전에 기여한 의미 있는 계기"라며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 사의를 표하고 새로운 상봉에 약속했으며, 두 정상이 북·미 관계의 획기적 발전에 대한 확신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두 나라 사이에 수십여년간 지속된 불신과 적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해나가는 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회담 결렬 사실과 그에 따른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의 심야 기자회견 내용 등은 반영하지 않았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김정은이 평양을 출발한 다음 날부터 미국과의 회담에서 큰 성과가 있을 것처럼 과잉선전을 했다"며 "미국을 비난할 경우, 합의 무산을 인정하고 최고지도자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격이 되기 때문에 대미 비난을 자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과거에도 실패한 회담을 성공으로 포장한 사례가 있다. 2010년 5월 김정일은 베이징을 방문해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방중 마지막 날(6일) 중국 지도부와 북한 가극단의 홍루몽 공연을 관람하기로 했으나 직전에 취소하고 귀국했다. 정상회담 결과가 북한 입장에서 불만스러웠던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노동신문 등 관영 매체들은 "조·중(북·중) 친선관계를 대를 이어 계승하고 공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서 의미 있는 회담"이라고 평가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아무 합의도 없이 결렬된 것을 두고, 중국에서는 "중국엔 승리가 될 수도 있는 결과"라며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본 정치권과 언론은 "나쁜 합의보다는 차라리 결렬된 게 다행"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일 베이징언어문화대학 국제지역연구소 황진 교수 등을 인용해 "중국은 이번 결과를 반길 수 있다"며 "북·미 간에 비핵화 문제가 너무 빨리 해결되는 것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SCMP는 "중국으로서는 대미 관계에서 북한 카드를 갖고 있는 게 써 버리는 것보다 낫다"고 전망했다. 28일 회담 결렬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안이하게 양보하지 않고 북한이 구체적으로 행동하도록 촉구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도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지 못한 채 제재를 해제하는 등 가장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선 대북(對北) 제재를 풀어야 한다. 하지만 전날 2차 미·북 정상회담은 제재 문제에 대한 양측 간 이견으로 결렬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은 미국에 제재 해제를 계속 설득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주도하는 100년의 질서로 '신(新)한반도 체제'를 준비하겠다"며 "한반도에서 '평화 경제'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비핵화 진전을 조건으로 본격적 남북 경협을 위한 기구인 '남북 경제공동위원회' 구성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2차 미·북 회담에 대해선 "장시간 대화를 나누고 상호 이해와 신뢰를 높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었고 더 높은 합의로 가는 과정"이라며 "미국·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비롯한 경협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문 대통령은 '신한반도 체제'와 관련해 남북과 미·중·일·러 등이 참여하는 '동북아 철도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에너지 공동체, 경제 공동체로 발전하고, 미국을 포함한 '다자(多者) 평화 안보 체제'를 굳건히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미 동맹에 대응해 북·중 밀월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안보 지형을 다자 구도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선결 조건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조치를 촉구하는 언급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