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8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에 대해 “앞으로 미국과의 대화가 재개되는 경우에도 폼페이오가 아닌 우리와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만하고 원숙한 인물이 우리의 대화상대로 나서기 바랄 뿐”이라며 폼페이오 장관의 교체를 요구했다. 북한 외무성 권정근 미국 담당국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폼페이오가 망발과 궤변을 연일 늘어 놓고 있다”며 “하노이 수뇌(정상)회담의 교훈에 비추어보아도 일이 될만 하다가도 폼페오만 끼여들면 일이 꼬이고 결과물이 날아나군 하는데 폼페오가 회담에 관여하면 또 판이 지저분해지고 일이 꼬일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연말까지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한데 이어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교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미북 ‘협상의 틀’ 조차 흔들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권정근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연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보겠다”고 말한 것을 언급한 뒤 “이에 대해 폼페이오 만이 혼자 연말까지 조미(북미) 사이의 실무협상을 끝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해 사람들의 조소를 자아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언급한 내용의 의미와 관련 “미국은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떠민 근원, 비핵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손으로 올해말까지 치워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조선반도정세가 어떻게 번져지겠는지 그 누구도 예측할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빅딜 입장을 고수하면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이 파탄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권정국은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트럼프 대통령사이의 개인적인 관계가 여전히 좋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와 관련 김정은이 협상 판을 흔들러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미국이 제재 완화 불가 기조를 유지하며 ‘일괄타결식 빅딜’을 강조하자 강경 메시지를 통해 국면 전환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AFP 통신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이날 북한의 요구에 즉답을 피한 채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 건설적 협상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보다 지난해 4차례 방북한 폼페이오 장관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협상이 실패로 끝났다”며 “그간의 불만을 한꺼번에 표출하면서 불리해진 협상의 틀을 흔들어보려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지난 9일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이 북한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은 당시 미 의회에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썼던 독재자(tyrant)란 표현을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쓰겠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라고 답했다. 북한은 이를 두고 “우리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망발”이라고 비난했다.
일각에선 북한의 메시지가 실제 폼페이오 장관 교체보다 ‘내부 여론’을 의식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에게 ‘하노이 노딜’의 책임을 씌우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협상 책임자를 문책·교체한 뒤 미측 카운터파트 교체를 요구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북한은 다만 공식 성명·담화가 아닌 미국 담당 국장과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문답 형태를 택했다. 큰 틀의 판을 깨진 않으면서 수위 조절을 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선희 외무성 부상(현 제1부상)은 담화를 통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며 맹비난했다.
그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했다. 이 때문에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우호적 관계는 강조하면서 폼페이오 장관만 문제 삼았다는 분석이다. 북측은 이날도 “다행스러운 것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가 여전히 좋은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북측의 ‘폼페이오 교체’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톱다운식 접근에 앞서 비핵화 실무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볼턴 보좌관도 17일 3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조건으로 “북한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됐다는 ‘진정한 징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현재로선 미측이 북한 요구를 수용해 협상 틀을 바꿀 만한 어떤 동기도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