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중 관영 매체들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일정(20~21일)이 끝난 뒤에도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밀착 의전’을 공개했고, 중국도 시 주석이 환대받은 사실을 강조했다. 북한은 23일 조선중앙TV를 통해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지난 20일 관람했던 집단 체조 ‘불패의 사회주의’ 실황 영상을 공개했다. 가수 출신인 펑 여사의 대표곡 ‘희망의 들판에 서서’를 북한 예술단이 공연한 사실이 새로 알려졌다.
전날엔 시 주석 방북 일정을 70분 분량으로 편집한 기록 영화도 공개했다. 이 영상에선 김정은이 집단 체조 관람 후 시 주석 숙소로 이동해 시 주석 내외를 영접하는 장면이 눈에 띈다. 집단 체조가 오후 9시 40분 시작돼 100분가량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자정 무렵까지 시 주석을 챙긴 것이다. 김정은은 공항에서 시 주석이 떠나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중국 국영 CCTV도 21일 저녁 메인 뉴스 신원롄보에서 전체 43분 중 33분을 시 주석 방북 관련 소식으로 채운 데 이어 22일에도 20분을 관련 장면으로 채웠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3일 북한의 특급 의전을 시시콜콜 되짚는 긴 기사를 썼다. 만 27시간 방북을 나흘째 우려먹은 것이다.
그럼에도 시 주석은 정작 김정은과 주목할 만한 합의를 내놓지는 못했다. ‘외화내빈’이라는 말도 나온다. 베이징 외교가에선 “미국과 무역 전쟁을 벌여 수세에 몰린 시 주석이 북한에서 받은 대대적 환대를 내세워 체면치레에 급급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2일 사설에서 시 주석 방북에 대해 “사실상 쇼 자체가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문제에서 미국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성이 절실했다는 것이다. 쑹타오(宋濤) 중국 대외연락부장은 21일 “시 주석의 방북은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에 새 동력을 불어넣었고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중국의 역할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한편 임천일 북한 외무성 부상은 북·러 차관급 회의 참가차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G20 회의를 앞두고 북·중·러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1일 오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평양 모란봉구역의 조·중우의탑을 참배한 뒤 “조선(북한)이 침략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 치른 용감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했다고 중국 CCTV가 보도했다. 6·25전쟁이 ‘북침’이란 주장을 되풀이하며 북·중 혈맹을 강조한 것이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북·중이 단결해 미국에 함께 맞서겠다는 항미원조(抗美援朝) 메시지를 발신했다”고 했다.
이처럼 미국과의 ‘G20 담판’을 1주일 앞두고 전격 성사된 시 주석의 방북은 ‘혈맹’을 강조하는 양측의 미사여구와 북한의 ‘역대급 환대’로 떠들썩했다. 하지만 실질적 소득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측의 보도가 워낙 딴판이었던 것이다. 전날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과거 1년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많은 조치를 했지만 유관국(미국)의 적극적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 주석은 “북한 안보 우려 해결을 중국이 돕겠다”며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시 주석이 미·북 비핵화 협상에 본격 개입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날 북한 매체들은 이런 내용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외교가에선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북·중의 기대치가 다르다”는 말이 나왔다. 다음 주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담판을 앞둔 중국으로선 북한의 ‘뒷배’를 자처하며 대미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평소보다 적극적인 발언을 쏟아낸 측면이 있다. 북한도 대미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중국을 끌어들이긴 했지만, 자칫 미국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해 대화의 판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피하려 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은 시진핑과 만나면서도 미국을 의식했다”고 했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 입장에서는 회담이 다소 기대에 못 미쳤을 수 있다”며 “김정은이 기대한 경제 지원 부분에서 중국의 반응이 만족스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5차 정상회담엔 1~4차 때와 달리 양측의 경제 관료들이 배석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경협 대화가 오가긴 어려웠을 것이란 관측이다. 북한의 경제난·외화난 타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중국의 대북 투자, 북한 노동자 송출 등은 제재에 저촉돼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선뜻 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방북은 1박 2일, 만 27시간짜리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 짧은 시간을 자신과 시진핑 주석의 ‘브로맨스’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기회로 만들었다. 북한은 시 주석에게 그동안 공개한 적이 없는 새 영빈관을 숙소로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노딜’ 이후 미·북 대화가 교착에 빠지면서 한국의 ‘중재자’ 역할에 기대를 접은 북한이 중국의 지지·후원을 기대하며 ‘시진핑 맞춤용 초특급 의전’을 베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 분위기가 정점에 달한 건 방북 첫날(20일) 밤 5·1경기장에서 열린 매스게임 ‘불패의 사회주의’ 관람 때였다. 원래 ‘인민의 나라’였던 제목과 내용을 대폭 수정한 공연이었다. 두 정상 부부는 오후 9시 40분 관중석을 가득 메운 평양 시민의 ‘만세’ 함성 속에 주석단에 등장했다. 경기장 수용 인원이 15만명임을 고려하면 이날 낮 가두 퍼레이드에 동원된 25만명, 공연 출연 인원까지 합쳐 연인원 40여만명이 단 하루에 동원된 셈이었다. 전체 평양시민의 16%에 해당한다.
공연은 북한 사회주의 성과와 인민의 생활상, 북·중 우호 관계, 시 주석의 방북 환영 등을 테마로 약 1시간 30분간 펼쳐졌다. 카드섹션은 북·중이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 부르는 6·25전쟁 장면과 ‘피로 세운 전우의 정’ 등의 글귀를 보여줬다. 어린이들의 공연 땐 ‘시진핑 할아버지 만나서 반갑습니다’란 뜻의 중국어가 새겨졌다. 공연의 마지막은 카드섹션으로 재현한 시 주석과 김정은 초상화였다. 순간 전 관중이 기립해 박수를 쳤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도 집단 체조 ‘인민의 나라’를 관람했지만 문 대통령 초상화는 없었다. 시진핑 초상화는 주석단 뒤에도 걸려 있었다. 작년 문 대통령이 관람할 때 한반도기가 있던 자리다.
앞서 첫날 오후 7시부터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환영 만찬은 시진핑 주석 내외를 “가장 존중하는 중국 귀빈”이라고 한 김정은의 축사로 시작됐다. 한복 차림의 부인 리설주를 대동한 김정은은 “오늘 시 주석의 방북으로 북·중 우호의 새로운 한 페이지가 열렸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상전벽해의 변화에도 북·중 우의는 더욱 굳건해졌다”고 말했다. 북한은 시 주석의 방북 첫날에만 대형 환영 행사를 세 번 열었다. 공항과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 이어 만찬 직전 김정은 집무실이 있는 노동당 중앙위 본부청사에서도 행사를 했다. 노동당 핵심 엘리트인 정치국 상무위원(3명), 위원(18명), 후보위원(12명) 전원이 도열해 시 주석에게 인사하고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등 역대 중국 최고 지도자들의 방북 때 없던 파격적 예우였다.
지난해 9월 문 대통령 방북 때는 공항에서만 환영 행사가 있었다. 중국 인민일보는 “지난 50년래 외국 정상이 북한 노동신문 1면에 기고문을 실은 것은 시 주석이 처음”이라며 금수산태양궁전 광장 환영식, 25만 환영 인파, 노동당 본부 환영식에 대해 “시 주석의 방문을 고도로 중시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한 의전”이라고 전했다. 방북 마지막 날인 21일 시 주석 부부는 평양 모란봉구역의 조·중우의탑을 참배했다. 김정은 부부는 미리 나와 시 주석 부부를 맞았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중국인민지원군을 기리기 위해 1959년 건립된 조·중우의탑은 북·중 혈맹 관계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두 정상 부부는 이어 시 주석의 숙소인 금수산영빈관으로 옮겨 영내 정원을 산책한 뒤 환담을 겸한 환송 오찬을 가졌다. 시 주석은 이날 오후 3시쯤 전용기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