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리 군의 무기 도입과 연례 군사훈련을 "이중적 행태”라고 비난하며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경고를 무시하지 말라”고 했다. 26일 북한 관영 매체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전날 강원도 원산에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두 발을 쏘는 ‘대남 경고용 무력시위’를 지도한 뒤 “남조선 당국자가 최신 무기 반입이나 군사연습과 같은 자멸적 행위를 중단하고 하루빨리 지난해 4월과 9월과 같은 바른 자세를 되찾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아무리 비위가 거슬려도 남조선 당국자는 오늘의 평양발 경고를 무시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언급한 ‘남조선 당국자’는 문재인 대통령, ‘최신 무기’는 우리 공군이 최근 도입한 F-35A 스텔스 전투기, ‘군사연습’은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을 각각 가리킨다. 작년 4월과 9월엔 판문점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다. 남북 관계가 작년 북한의 파상적 평화 공세와 문재인 정부의 호응 속에 본격적인 대화 무드에 접어든 이후 김정은이 직접 문 대통령을 공개 비난·위협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은 전날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두 발을 동해로 쏜 것에 대해 “첨단 공격형 무기들을 반입하고 군사연습을 강행하려고 열을 올리는 남조선 군부 호전 세력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무력시위”라고 했다. 북한이 군사 도발을 자행하며 스스로 ‘무력시위’란 표현을 쓴 것은 이례적이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무력시위가 대남 경고용임을 대놓고 밝힌 것도 극히 드문 일”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보란 듯이 대남 무력시위를 지휘하고 문 대통령을 위협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제재 장기화로 사기가 떨어진 군부 등 정권 핵심층의 불만을 달래고 체제를 결속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이날 북한의 도발과 김정은의 위협에 대해 항의하지 않았다. 통일부가 “강한 우려”를 언급했을 뿐이다. 문 대통령이 불교계 행사에서 “남북 관계나 북·미 관계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다”며 북한을 언급하긴 했지만 이번 도발과는 무관했다. 오히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9·19) 군사합의에 탄도미사일에 대한 금지 규정이 없다”며 북 도발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북한 관영 매체들이 26일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 경고와 위협에 정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정은이 전날 무력시위를 대남용으로 못 박은 것도 이례적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이중적 행태” “자멸적 행위” 등의 자극적 표현을 쓴 것은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만큼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만만하게 여긴다는 얘기”라며 “북한에 올인하는 대외 정책을 고집해온 대가를 비싸게 치르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작년 김정은의 신년사와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남북 대화 국면이 조성된 이후 한동안 대남 비난을 자제했다. 우리 정부에 ‘충격’을 안긴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지난 4월 12일)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당시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후 강도를 높여가던 북한의 대남 비난은 지난달 30일 전격 성사된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을 계기로 중단된 듯했지만 이달 중순부터 재개됐다. 북한이 문제 삼은 것은 F-35A 스텔스 전투기 도입과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이었다.

김정은이 25일 문 대통령을 겨냥해 “위력(무력)시위 사격 소식과 함께 알린다”고 명시한 것도 첨단 무기 도입과 군사훈련 중단 요구였다. 김정은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 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과 합동 군사연습 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우리 군의 무기 도입과 훈련을 ‘남북 합의 위반’으로 몰아간 것이다. 이를 두고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9·19 남북 군사 합의’가 우리 군에 족쇄로 돼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우리 정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 제안을 거부하고, 식량 지원도 걷어차는 등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지난 23일 신형 3000톤급 탄도미사일 발사 잠수함 공개에 이어 25일 이스칸데르급 신형 미사일을 쏘는 등 군사 도발 수위도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도발의 수위를 높이는 것을 두고 외교가에선 “북한의 도발은 표면적으로 한국을 향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대미 압박 메시지”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비핵화와 제재 문제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도발의 강도를 높여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을 난처하게 할 수 있다는 경고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