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0일 오후 6시 베이징에서 워싱턴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건 대표는 지난 15일부터 5박 6일 간 한·일·중 3국을 방문해 북한과의 협상을 추진했지만 북한이 끝까지 응하지 않으면서 결국 무산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한 ‘연말시한’을 앞두고 미국이 마지막으로 던진 제안을 거절한 북한이 향후 대미강경 노선으로 선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정은이 이르면 이번 주말 열리게 될 당중앙위 7기5차전원회의에서 기존의 비핵화·대미노선을 뒤집는 소위 ‘새로운 길’을 천명할 가능성이 높다.
내년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이를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 3일 ‘크리스마스 선물’을 예고한 북한이 성탄절 전후나 내년 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고강도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북한이 ICBM을 쏠 경우 레드라인을 넘는 것으로 미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도발의 수위와 시기를 조절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이날 미국 외교가에선 “북한이 대화할 뜻을 접고 무력 도발로 나갈 것으로 판단되면 미국도 강경책으로 대응 기조를 바꿀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왔다. 2017년에 있었던 ‘화염과 분노’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연구소 연구원은 이날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북한이 미국이 레드라인(금지선)으로 간주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할 경우 “‘화염과 분노’로 알려졌던 2017년의 강경 노선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이후 한반도에 대한 전략 자산 전개와 한·미 연합 훈련 재개, 대북 제재와 인권 압박 강화 등 전방위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탄핵 기간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려고 ICBM이나 핵실험 도발을 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의) 관심을 탄핵 정치에서 다른 주요 이슈로 돌리려 할 것이며 만약 북한이 극단적 행동을 할 경우 트럼프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미 의회에선 “(대북) 최대 압박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린지 그레이엄, 코리 가드너 등 공화당 상원 의원 6명은 이날 켈리 크래프트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앞으로 보낸 공개서한에서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 정책을 계속 이어갈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또 “‘미·북 정상 간 만남의 외교’가 시작된 이후 미국의 독자적 대북 제재 부과 속도가 현저히 떨어져 유감”이라며 “북한이 국제법을 완전히 준수하고 제재 이유가 된 행동을 중단할 때까지 안보리 대북 제재를 절대 해제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중·러에 분명히 할 것”을 요구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상원 의원 8명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대북 정책이 실패 직전 위기”라며 “너무 늦기 전에 진지한 외교적 계획을 실행하라”고 했다. 이들은 북한에 대한 적절한 제재와 강력한 억지 태세, 동맹 강화 등을 주문하면서도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요구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미 공영 라디오 NPR 인터뷰에서 “북한이 도발 위협을 높이는 것은 엄포나 각본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대북 제재 완화와 관련해 “북한이 대량 살상 무기와 핵·생화학무기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는 20일 “지난 18일 군 관련 전원회의 참가자들에게 ‘평양 인민무력성 장령(장군) 귀빈초대소로 20일 오전까지 도착’ 지시가 하달됐다”며 당중앙위 전원회의가 21일 또는 22일 개최될 가능성을 거론했다. 관심은 이 회의에서 채택될 ‘새로운 길’의 구체적 내용이다. 최근 북한이 고위 관리들 명의로 쏟아낸 대미 담화 20여건 중 상당수가 ‘중대 조치 재고’를 언급한 점을 감안하면 ‘미·북 비핵화 협상 중단’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시험·발사 유예) 약속 파기’ 선언 또는 그에 준하는 중대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북이 말하는 ‘중대 조치’란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뜻한다.
이와 같은 ‘대미 초강경 노선’이 공식화하면 도발은 시간문제가 된다. 앞서 리태성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은 지난 3일 담화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예고했다. 최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등에서 포착된 각종 도발 징후와 북한 스스로 밝힌 두 차례의 ‘중대 시험’ 동향 등을 종합하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카드를 만지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찰스 브라운 미 태평양공군사령관도 지난 17일 “(시점이) 성탄 전야냐, 성탄절이냐, 신년 이후냐의 문제일 뿐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일종이 (북의 성탄절)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변수는 23~24일 베이징과 청두(成都)에서 한·중·일 간의 연쇄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점이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만약 한·중·일 회의 기간 북이 도발하면 주최국인 중국은 이를 커다란 모욕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면 23~24일은 피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1월 1일) 발표 이후 도발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미국이 북한을 자극하는 언행을 자제하고 있어 북한도 이를 감안할 것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