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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김여정 담화 발표와 북일관계 전망


 

 

 

 

이기태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

 


2024년 2월 15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납북자 문제를 의제로 올리지 않는 등의 조건 아래 북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김여정 부부장은 3월 25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한 담화에서 “최근에도 기시다 후미오 수상은 또 다른 경로를 통해 가능한 빠른 시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북일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말 것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주권적 권리 행사로 인정해 줄 것을 일본측에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기시다 총리는 북일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에는 신중한 입장을 나타내면서도 북일 접촉을 포함해서 북한과 관련해서 일련의 움직임이 있음을 인정하였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사진: 조선중앙TV)>

 


이처럼 북한이 김여정 담화를 통해 북일 접촉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일본이 북일 정상회담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부각시키면서 수면 하에서 진행 중인 북일 교섭에서 유리한 협상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압박용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김여정 담화 발표는 반대로 북일 교섭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나타낸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전격적인 평양 방문을 통해 북일 공동선언까지 발표했었는데, 당시 다나카 히토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미스터 X’라 불린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최측근과 비밀 교섭을 진행하였고 결국 이 교섭을 통해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으로 결실을 맺었다. 만일 현재 북일 교섭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이른 시점에서 김여정 담화 발표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이 정상회담으로 가기 그 전 단계인 고위급 협의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의제를 관철하기 위해 협상력 강화라는 의도에서 공개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일 교섭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두말할 것 없이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둘러싼 북일 간 입장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즉 북한과 일본이 교섭 시작의 ‘입구’에서부터 서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2년 북일 정상회담 과정에서 일본측이 납치자로 제시한 17명 중에서 13명의 납치를 인정하면서 8명은 이미 사망하였고, 5명이 생존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들 생존자 5명은 후에 일본으로 귀국하였지만 북한은 이 때부터 납치문제는 이미 북일 간에 해결된 상황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8명의 사망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현재도 이들이 북한 내에 생존해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납치 문제 전반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이들의 송환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끝까지 북한측에 요구한다는 것이며, 이를 북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한편 북일 정상회담 추진은 아베 신조 총리 때인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따라 북미 정상회담, 남북 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되면서 아베 정부도 기존의 대북 압박 정책에서 벗어나 북한과의 대화 노선을 추구하였다. 아베 총리는 2018년 5월 김정은 위원장과의 ‘조건 없는 정상 간 만남’을 제안하였고, 아베 총리의 뒤를 이은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총리 역시 ‘조건 없는 정상 간 만남’을 계속해서 북한측에 제안하였다.

 

2023년 들어 기시다 총리는 북한에 대해 보다 진전된 메시지를 보냈다. 5월 27일 기시다 총리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조기실현을 위해 “총리 직할의 고위급 수준에서 협의를 진행하고 싶다”라고 언급하였다. 이후 일본 아사히 신문은 9월 29일자 기사에서 2024년 3월과 5월, 동남아시아의 주요 도시에서 두 차례 북일 간 비밀접촉이 있었다고 보도하였다. 기시다 총리의 5월 발언은 이와 같은 북일 비밀접촉의 긍정적 결과에 따른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구체적인 북일 접촉의 진전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현재 기시다 총리가 주장하는 ‘총리 직할의 고위급 수준 협의’는 결국 ‘대북 특사 파견’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재 북일 교섭의 진정한 목표는 기시다 총리의 대북 특사를 파견하기 위한 조건에 합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일 정상의 만남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 때문에 여전히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첫째는 앞서 언급했듯이 납치피해자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이 요코타 메구미를 비롯한 납치피해자들이 모두 생존해있다고 믿는 일본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납치피해자 조사결과를 과연 제시할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납치피해자 해결에 대한 반대급부로 일본이 독자적 대북제재를 어디까지 해제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는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이 대북 현안으로 제시하는 3개 해결과제는 북한의 핵, 미사일, 납치자 문제이다. 현재는 납치자 문제가 북일 대화의 가장 큰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김여정 담화에서 나타나듯이 북한은 일본이 북한의 핵·미사일을 주권적 권리로 인정해서 언급하지 않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기시다 총리는 원폭 피해 지역인 히로시마를 지역구로 가진 정치인이고, 평소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장하면서 북한 비핵화 원칙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핵 주권을 주장하는 북한과 북한 비핵화를 주장하는 기시다 정부 사이에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셋째는 강화되고 있는 북러 간 밀착 움직임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북 제재의 장기화에 따라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포탄 제공과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위성 및 미사일 개발 기술 제공 의혹이 부각되는 등 북러 협력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와 같은 북러 밀착은 북한의 대화상대로서 일본을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게 하면서 기시다 총리의 대북 특사 파견 가능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넷째는 국내정치 요인이다. 국내외 대다수 언론은 사상 최저 수준의 내각지지율을 기록 중인 기시다 총리가 2024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승리를 통한 총리 재선을 달성하기 위해 북일 정상회담 실현이 필요하다고 보도한다. 하지만 현재 일본 정치는 자민당 내 불법정치자금으로 촉발된 자민당 파벌 해체와 같은 정치개혁 문제가 일본 국민들에게 더 관심이 많은 상황이다. 게다가 일본 국민들의 납치문제에 대한 관심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점도 북일 정상회담 실현의 효과성에 의문을 나타나게 하고 있다.

 

결국 북일 정상회담 실현을 위한 북일 대화는 일본과 북한의 납치자 문제에 대한 요구사항을 서로 어느 정도 양보해야 실현가능하다. 일본은 납치자 전원 생존 귀환이라는 ‘신화’를 버려야 하고, 북한은 혹시 생존 납치자가 있다면 과감하게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납치자 귀환 결정이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러한 북일 간 양보에 의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기시다 총리의 대북 특사 파견을 통해 북일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멀지 않은 시기에 기시다 총리의 평양 방문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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