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차 한일중 정상회담 평가와 한국의 자세

이기태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
2024년 5월 27일,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 중국의 리창 총리가 참석하는 제9차 한일중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한일중 정상회담은 2019년 중국 청두에서 개최된 이후 코로나 19, 한일 갈등 등의 요인으로 개최가 연기되었다가 4년 5개월 만에 개최되었고, 이번에 향후 정상회담 개최의 정례화를 3국 정상이 약속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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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국 총리, 리창 중화인민공화국 총리가 지난 5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3국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대통령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일관계 개선, 한미일 안보협력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한일중의 협력 논의가 이루어진 것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 동안 윤석열 정부는 너무 한미일 구도에 경도되어 있다는 야당 및 진보 진영의 비판을 받았는데, 이번 한일중 정상회담은 이러한 비판을 어느 정도 약화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먼저 제9차 한일중 정상회담의 성과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한일중 정상은 인적교류, 기후변화 대응 등을 통한 지속가능 발전, 경제통상, 보건 고령화, 과학기술 디지털 전환, 재난 구호 안전 등 국민 일상생활과 밀접한 6대 분야에서 협력하는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공동선언은 문화와 관광, 교육의 교류를 촉진하고, 2018년에 3,054만 명이었던 3개국 간 왕래자 수를 2030년까지 4,000만 명으로 증가시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특히 미래세대 간 교류를 통한 협력의 유대관계 강화를 모색하는 데 3국 정상이 합의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또한 한일중 정상회담의 공동선언에서는 한일중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교섭을 가속해 나가기 위해 논의를 계속한다”라고 명기하였다. 이것은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중국의 요청을 받아들인 합의라고 예측된다. 한일 역시 중국에서 공정한 룰에 기반한 자유무역을 촉진시킨다면 이익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와 같이 한일중 정상회담에서 3국 정상들이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6대 협력 분야에서 합의를 이루고 상호 활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것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경제안보를 포함한 안보 문제에 관한 한일과 중국 사이에는 깊은 틈이 다시 한 번 부각되었다.
한일중 3국은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공동선언에서 “법의 지배와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에 대한 우리들의 관여를 재확인하였다”라고 언급하였다. 핵·미사일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북한을 염두에 두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번영 유지가 우리들의 공통 이익이며 공통의 책임이라는 것을 재확인한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2018년 공동선언에서는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관여하고 있다”, “납치문제가 가능한 한 조기에 해결될 것을 희망한다”라고 표기하였지만, 이번에는 한일중이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하였다”라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는 것은 북한 문제에 대한 한일중의 각기 다른 입장 차이를 명확히 드러냈다. 즉 한반도 비핵화와 납치자 문제를 포함한 북한 관련 안보 문제에서 한일중 3국 협력이 용이하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북한 문제와 관련한 한일중 간의 입장 차이는 한일중 정상회담 개최 직전에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를 예고한 것에 대한 언급에서도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제사회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라고 언급하였고, 기시다 총리도 “만일 발사를 강행한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위반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리창 총리는 발사 예고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세계의 집단화와 진영화에 반대해야 한다”면서 대중 포위망을 경제하는 듯한 발언만을 반복하였다. 3국 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도 한일 정상은 모두 ‘북한 비핵화’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리창 총리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각 당사자들은 자제를 유지하고 사태의 복잡화를 피해야 한다”라고만 언급하였다.
한편 공동선언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중국은 ‘공급망(서플라인 체인)’에 더해 ‘산업 체인(산업망)’의 협력강화를 포함시키려고 요구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중국이 전기자동차(EV), 인공지능(AI) 등의 중요산업분야에서 자국 기업의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것으로 연결하려는 의도라고 판단하고 공동선언에 ‘산업망’의 협력강화를 포함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중국이 사용하는 ‘산업망’은 제조업의 원료, 부품부터 완성품 제조까지 중국기업이 관여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일중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되는 경향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일과의 경제교류를 확대시켜서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계기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 그리고 미중전략경쟁을 배경으로 한미일 협력에 대응하려는 의도도 있다. 현재 미중 대립 구도 하에서 중국은 공산당 일당지배체제를 강화해야 하고, 이러한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무역 확대로 이어지는 한일중 FTA 교섭을 재개하기로 한 것 역시 한국과 일본은 포함시키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배제’의 경제권 구축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미중 대립 구도에서 안보 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한미일의 협력체제를 흔들려는 의도도 있다. 리창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정치적 상호신뢰를 깊게 한다”라고 제안하면서 “상호 간 핵심적 이익과 중대한 관심사에 대한 배려”와 “진정한 다자주의의 견지”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대만에 대한 관여를 강화하고 있는 미국을 경계하였다.
이처럼 향후 경제안보 및 북한 문제를 포함한 안보 분야에서 ‘한일 vs 중국’ 구도가 더욱 명확하게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에 한일중 정상회담은 일본의 역사왜곡으로 한일, 중일 갈등이 발생하고 한국과 중국이 반일 역사 연대를 구성하는 ‘한중 vs 일본’의 구도 하에서 정상회담 개최가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북한 문제, 대만 문제와 같이 정치, 안보 문제를 둘러싸고 자유민주주의, 인권, 법의 지배와 같은 공통의 가치를 가진 한일이 중국과 대립하는 구도가 강화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서 한국이 한일중 3국관계에서 가져야 할 대외정책 관련 자세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로 이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북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를 공고화한다. 하지만 한미일 안보협력이 대만 문제를 비롯해서 ‘중국 견제 의도’로 인식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피하면서 한미일 안보협력의 대상을 북한으로 한정해야 한다. 그리고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에서 한일이 구체적으로 안보협력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향후 본격적인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둘째, 한일중 간 갈등 발생 소지를 줄이면서 ‘갈등 관리’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한일관계가 개선되면서 한일 협력이 진전되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사 및 독도를 둘러싼 양국 간 갈등 소지가 존재한다. 한국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쉽지 않은 이러한 문제들을 장기적 관점에서 해결을 모색하면서 단기적으로는 한일 갈등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갈등을 관리(management)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중국에 대해서도 양국 간 경제분야 협력을 강화하면서 대립 요인이 되고 있는 안보분야에 대해 더욱 활발한 대화와 상호교류를 통해 갈등 요인을 축소시켜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